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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장에서 '스스로 죽을 용기', 혹은 '스스로 죽음에 성공할 용기'가 없었음은 충분히 적은 것 같다. 삶을 살아가며 계속 깨닫게 되는 것은, 삶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사안에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다양한 면이 있다. 그저 밝게만 느껴지는 태양빛도 프리즘에 분사하면 수많은 스펙트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단순해보이는 것조차 최소한의 이면이 있어 양면성을 띈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다.
엄밀히 말하면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죽음의 과정에서 느껴질 고통이 무서운 거지. 그러나 만약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약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먹을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먹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유는 아주 높은 확률로, 자살한 사람의 주변인이 우울증을 겪게 될 확률 + 자살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봤던 내용의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단 링크의 내용과 매우 비슷하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mohw2016&logNo=220970847554
효도, 가족애 같은 단어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 나 같은 사람에게도 가족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굵은 쇠사슬로 서로 묶여있는 관계다. 애정 하나 느껴지 못하며, 오히려 증오하다가도 아프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억장이 무너지는 것이 가족이다.
부모에게 효도는 못해도, 내가 겪고 있는 우울증이라는 지옥을 선물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것 하나도 못해주고 호강 못 시켜드려도 된다. ‘최악의 것만 드리지 말자’ 이런 마음이 올라왔다. 동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 하나, 인간이란 단어의 의미.
사람 인(人) + 사이 간(間). 합쳐 인간(人間)이라 부른다.
사람은 관계의 그물망 안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관계의 그물망이 망가진 사람은 스스로 죽을 수 있다.
우울증을 얻을 당시 나는, 20대를 모두 쏟아부었던 교회 공동체와의 관계를 내 손으로 끊은 지 1년이 지나가는 시점이었다. 내면의 고향인 교회였지만 떠나며 마음에서 지웠다. 인간관계의 95%가 그 안에 있었다. 친구, 선배, 후배, 형 누나 동생들 모두. 그때는 그 모든 것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사실상 '사회적 자살'이었음을 아픈 시절 내내 절감했다.
의지로 끊었지만 뇌에 연결되어 있는 관계를 향한 유대감의 회로는 갈 길을 잃어 혼란했다. 외로웠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 교회를 떠나는 와중에 남은 관계들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세계의 90%를 잃었다.
심리적으로 실향민 같은 상태였다. 깊은 외로움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깊고 풍성한 관계망을 이루던 대부분의 실을 끊어버렸다. 한 번 끊은 관계 두 번 못 끊으랴. 새로운 터전에서 얻은 인연으 더 쉽게 철저히 끊어냈다. 그렇게 사람은 자기 무덤을 판다.
몇몇 친구와 가족뿐이 마지막 남은 몇 가닥 실이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그물망이 있다면? 안 죽는다. 나는 외줄타기를 하는 사람과 같았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계곡을 건너는 사람과 같았다.
끈이 나를 지탱하지 못하고 끊어졌다면, 바로 죽었을 것이다.
깨달음이 하나 더 있다. '가족의 의미'
관계의 그물망 중 가장 굵고 강한 것은 가족이다.
’사람이 태어나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은, 결국 '자신이 살아갈 이유'를 만드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자가 먼저 죽어 살 길이 막막하고 죽고 싶다가도, 남아 있는 아이를 보면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는 식의 이야기. 자녀를 먼저 보내고 늙은 배우자의 병환이 깊지만, 그이를 돌봐줘야 하기에 끝까지 살아낸다는 노부부의 이야기.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스토리다.
(당시 나를 지탱해주던 원래 가족이 없었어도) 내가 꾸린 가정이 있었다면? 그들을 위해 살아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이유에는 여러가지 측면이 있겠지만, '이런 의미도 있겠다.' 싶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생각들이 정리된 후, 나는 삶이 무서웠지만 죽겠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가족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인터넷 속 한심한 인간썰이 내 모습이 되었다. 자괴감이 들고 치욕스러웠지만 살아보기로 했다.
그들에게 내가 겪고 있는 이 지옥을 전달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불은 결코 옆으로 번지게 할 것이 아니었다. 내 안의 모든 것을 태우더라도 여기서 멈춰야 할 종류의 것이었다.
만약 그때 가족들이 내게 보낸 언어적, 비언어적 메시지가 죽으라는 것이었다면 분명 죽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가족은 나를 품어 주었다.
이것이, 죽지 않기로 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