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무력: 죽고 싶은데 등 떠밀지 말아 주세요

추락: 7/8

by Homo Growthcus


이전까지는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힘든 일이 없던 것은 아니다. 구구절절 꺼내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오히려 인생을 활력 있게 산 축에 속했다. 활활 불사르듯 살았다. 그래서 내 인생에 우울증 같은게 찾아올 것은 상상도 못했다.


"HG, 우울증인 것 같아."


'내가 우울증이라고?'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교통규칙을 지키며 운전해도, 반대차선에서 돌진하면 당하는 게 교통사고다.


앞장에서 모든 것을 우울증 탓하고 싶지 않고, 내가 분명 쓰레기처럼 굴었던 면이 있음을 기록했다.




다른 각도로 살펴보고 싶다. 이번 장의 주제인 무력감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항상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졌다.


게임? 시간을 죽이는 것이(Killing time) 목적이었다.


게임도 이기고 싶은 의욕이 있을 때 재밌는 법이다. 이기건 지건 상관없으니 그저 시간을 버릴 뿐이었다. 무력했고, 무기력했다. 의욕이 나지 않았다. 흥미로운 일도 없었고 모든 것이 허무했다. 죽고 싶었다.


죽고 싶었는데 죽을 용기가 없었다. 달리 말하면 죽음에 성공할 자신이 없었다.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이 쓴 <만약은 없다>를 읽어 보니, 응급실에 실려오는 다양한 종류의 자살실패자를 보는 의사의 시선을 빌릴 수 있었다.


손목을 긋거나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해도 생각보다 깔끔하게 죽기 어렵다.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의 몸에 대한 묘사를 읽다보면 괜히 인간이 지구 알파 생물이 된 게 아니구나 싶었다. 생명력은 질리도록 질기다.


의사의 눈으로 본 자살실패자들이 겪는 고통은 끔찍했다.


그들 또한 사는 고통이 싫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도를 했을 것이다. 다만 실패확률이 너무 높았다. 실패한 자살로 인해 고통이 회피되는 것이 아니라 '높은 확률로' 고통이 더해졌다.


책을 읽고 자살시도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다. 죽는 게 두렵지는 않았지만, 죽음에 도달하기까지 겪어야 할 고통은 두려웠다.


그래도 죽고 싶었다.


정확히 진술하면, 살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의 인생을 상상해보면 비참한 결말만 그려졌다. 도통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인생을 가꿔나갈 에너지만 있다면, 맨바닥에서 맨주먹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내 원자로는 고장 난 상태였다. '이렇게 살아서 뭐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일하면서 만났던, 나를 괴롭게 했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특히 마지막 2개월의 힘들었던 기간이 생각났다. 그때 특별히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학대 받은 동물이 인간의 호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사람은 이미 등에 다리가 후들거릴 무게의 짐을 지고 걸어가는 상태다. 이 사람에게 건강할 때는 문제 될 것 없는 작은 스트레스 상황이 생긴다.


그때마다 작은 짚단 하나가 누적값으로 등에 쌓인다. 마지막에는 '지푸라기 하나'를 얹었는데 쓰러질 수도 있다. 지푸라기를 얹은 사람은 "나는 이것밖에 안 얹었는데? 이게 뭐라고? 너무 오버하는거 아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 송장처럼 겨우 버티고 있는 사람에게 마지막 지푸라기는 최후의 일격이 된다. 권투 경기 내내 맞던 선수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솜펀치 맞고 쓰러지는 것과 같다. 얹은 사람 입장에서는 독박 쓰는 셈이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사람들, 순간들이 나를 괴롭혔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면, 애초에 스트레스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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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는 곳 어디나 - 특히 인터넷 댓글란에서 - 사람 죽으라고 등 떠미는 사람들의 악다구니가 보인다. 폭탄 돌리기 같다. 다들 자기가 받은 스트레스를 익명으로 타인에게 풀어내며 견딘다.


구글에서 '오늘도 평화로운 배달의 민족'을 검색해보라. 정신이 이상하고, 왜곡되고, 삐뚤어진 사람이 많구나.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의 혼탁한 정신을 받아내며 온전한 정신을 지켜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모든 자영업자들. 존경한다.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알아야 한다. 소화하고, 정화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해 타인의 독을 받아내면 정신이 체한다. 마음이 병든다. 그걸 못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단단히 빠져 있었다. 받지 말아야 할 것들을 거부하지 못했고, 표현하지 못했다.


인구 절벽이라며 호들갑 떨 게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방치하는 사회를 다같이 봐야 한다. 직면해야 한다.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상황인데, 죽으라고 등 떠미는 사람들을 막아야 한다.

이 시기에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심지어 가족과 접촉할 때도 마음속으로 외친 말이 있다. '제발 죽고 싶은데 등 떠밀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나를 지켜내기 위해 발버둥 쳤기에, 그리고 주변에서 이런 나를 지켜주었기에. 지금의 내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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