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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월, 1월, 2월.
8개월의 폐인 생활 중 전반부 4개월은 지옥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지옥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면에 있었다. 마음 한 꺼풀만 벗기면 썩어있는 것들이 악취를 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도려내는 수술은 기력을 회복하고 나서야 진행할 수 있었다. 환부가 컸기에 당시에는 외면하고 덮어둘 수밖에 없었다.
추운 날씨는 우울증의 부스터다. 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 일조량이 부족한 사람들이 우울감을 더 많이 겪는다고 한다.
원체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기도 했다. 건강할 때도 여름에 팔팔했다 겨울엔 죽어가는 사이클을 반복했다. 몸이 망가져서 보일러를 켜면 상체는 열이 펄펄 끓고 하체는 얼음장 같아 괴로웠다.
누워만 있는 것, 앉아만 있는 것은 담배피는 것보다 몸에 안 좋다고 한다. 그때는 몰랐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몸이 망가지며 비염과 수족냉증에 시달렸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 비염이 발동되면 오전에 두루마리 휴지 한 통씩 썼다. 몸 속의 모든 수분을 콧물로 만드는 공장이 된 것 같았다. 더럽고 추해서 자괴감이 느꼈다. 망가진 내 몸이 싫었다. 자기혐오가 극에 달했다.
그 지경에 이르도록 나를 망가뜨린 주체는 나다. 무슨 사고를 당해서 그런 것도, 유전의 영향도 아니다.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운동 안 하고 나쁜 음식 먹으며 20대의 건강을 허비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지금은 반성할 뿐 남탓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튼튼하게 태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부모를 원망했다. 타고난 건강 체질과 근육질은 아니었어도, 이제껏 병치레 한 적 없다는 사실은 무시했다.
이 겨울, 예상치 못한 사건도 하나 일어났다. 치과에서 대대적 정비를 한게 1년도 안 됐었기에, 한동안은 치과 고생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금니가 아팠다. 이번 것은 경험해보지 못한 강도의 통증이었다. 참으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아파만 하며 몇 밤을 보낸 후에야 치과에 갔다.
잘 정비했다고 생각했던 이가 안에서부터 썩어 있었다. 인생 첫 신경치료를 했다. 신경치료 자체는 마취를 하고 하니 괜찮았지만, 썩어가는 과정에서 느낀 통증은 다시 생각해도 섬뜩하다. 사랑니 빼는 것보다 아픈 게 있을까 싶었는데 그보다 아픈 것이 있었다.
치과 치료는 힘든 일정이다. 입을 벌리고 온몸에 힘을 주다 건물을 나설 때면 진이 빠져 있었다. 가뜩이나 인생 최저 체력인데 죽을 맛이었다. 금전적으로도 뼈아팠다. 일하고 지낼 때도 치과는 지갑을 탈탈 털어간다.
폐인 생활을 시작할 때 수중에 300만원 조금 넘게 있었다. 한 달에 30만원 이하로 쓰면 1년 버틸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신경치료를 마치고, 크라운을 하고, 여타 필요한 치료들을 하고 나니 100만원에 달하는 예상치 못한 비용이 나갔다. 치과는 의료보험이 매우 제한적으로 작동하는 세계다.
가족에게 얹혀사는 신세였다. 그런 상황에서 내 쓸 필요까지 손 벌리고 싶지 않았다. 계산이 달라졌다. 1년을 견딘다면 한 달 예산은 20만원이 되어야 했다. 통신비와 인터넷 비용, 학자금 대출 이자 등을 빼고 나면 12만원 정도 남았던 것 같다. 처지도, 몸 상태도, 지갑도 철저하게 털렸다.
'자살각'이라는 표현이 있다. 무서운 말이다.
놀랍게도 인터넷 곳곳에서, 사람이 사람을 조롱하는데 쓰이고 있다. 비슷한 옛날 표현으로, '나가 뒈져라' 같은 것도 있다. 정말 무서운 것은, 나 스스로 자신에게 이것을 적용해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일어날 생각을 하는 사람? 있을 것이다. 그것이 보통의 사람이다. 내가 '정상인'이라고 표현하는 범위에 있는 사람이다. 회복탄력성이 정상값에 있을땐 얼른 새 일자리 찾아 돈 벌 생각하는게 정상이다.
마음이 꺾인 사람은 그럴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다리를 잃은 사람에게 '왜 노력해서 달리지 못해? 핑계 아니야?'라고 하는 것과 같다. 미친 소리다. 그런 미친 소리를, 내가 나 자신에게 하고 있었다. 매일 눈을 뜨는 순간 지옥의 형벌이 시작되는 것만 같은 끔찍한 겨울이었다.
구원은 내면에서 올 수 없었다. 봄과 함께, 외부에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