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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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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한창 햇살 쬐는 일과가 정착한 상태였다. 천천히 걸어가서 자리에 앉았다가, 천천히 돌아왔다. 호흡을 가쁘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땀을 내는 것이 싫었다. 씻는 것도 에너지니까.
운동량 제로 상태가 이미 오랫동안 이어졌다. 일하는 내내 그랬으니 족히 2년은 넘었다. 최대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버스와 지하철을 애용했다. 음식은 탄수화물 나트륨 단백질 당분만 먹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보냈다.
살찌기 완벽한 조건이었다. 계속 이렇게 가면 고지혈증이 될 수 있다는 검진 결과를 받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똑같이 살다가, 계기가 된 결혼식에 참석한 후에야 달리기 시작했다.
배와 내장에 가득 찬 지방을 빼내기 위함이었다.
햇볕 쬐던 벤치에서 조금 더 가면 개방된 학교 운동장이 있었다. 직장인들은 회사에, 학생들은 하교했을 시간에 가면 아무도 없었다. 거기서 뛰기로 했다.
오랜만에 달린 첫 날이 기억난다. 5분 정도 뛰었을까? 다섯 바퀴도 뛰지 못했다. 몸에 기운이 없어 그 이상은 무리였다. 의지로 극복하지 않았다. 무리하지 않았다.
다섯 바퀴는 땀이 막 나려는, 몸에 열이 좀 올라오려는 수준의 운동량이다. 옆에서 누가 봤으면 그게 무슨 운동이냐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섯 바퀴를 뛴다는 것은 당시의 내 의지력을 전부 소모하는 행동이었다. 더 뛰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하려다, 아예 그만 둬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에서건 군대에서건 체력장 같은 것을 하면 1등은 못해도, 상위 20% 안에는 들어갔다. 축구를 좋아했기에 딱히 운동을 안해도 심폐 능력이 좋았다. 그러던 나는 어디가고 어쩌다 이렇게 허약한 몸뚱아리만 남았을까. 이런 상념? 부질없는 것이다. 예전의 나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나만 있을 뿐이다.
오늘의 나는 다섯 바퀴를 뛰었으니, 내일의 나는 여섯 바퀴를 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욕도 가지지 않았다. 한동안 계속 다섯 바퀴를 뛰었다. 당시 상태를 돌아보면 지속한 것만으로 기적이다.
어느 날 좀 더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뛰었다. 여섯 바퀴? 일곱 바퀴? 아니다. 열 바퀴 정도 뛰었다. 열 바퀴 넘게 세는 것은 지루한 일이었다. 그래서 운동장이 아닌, 다른 코스를 찾아 뛰기로 했다.
멈추지 않고 뛸 수 있는 방해 없는 코스를 찾았다. 횡단보도가 없고, 차량 유동량이 적어야 했다. 새로 개척한 코스는 1km 정도 거리였다. 돌아오는 길도 뛸 수 있다면 총 2km 코스가 나온다. 당연히 처음에는 1km 뛰는 것도 어려웠다.
금방 지쳤다. 지치면 무리하지 않고 바로 걸어 돌아왔다.
그래도, 매일 했다.
점점 거리가 늘어났다. 어느 순간 반환점까지 달릴 수 있었다. 계속 하다 보니 반환점을 지나도 달릴 수 있었다. 결국 집까지 2km를 뛸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은유 작가님의 <쓰기의 말들>이란 책에 이런 말이 있었다.
닫힌 방에서는
생각조차 닫힌 것이 된다.
- E.H.카
헬스장 러닝머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풍경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시선을 러닝머신 속 TV에 고정하고 달리는 것, 별로다.
집에만 처박혀 있어 본 경험, 이전의 내 인생엔 없던 것이었다. 항상 일정을 만들고 사람을 만나러 밖으로 나갔다.
방문을 닫고 지내는 동안 생각은 고였다. 고인 생각은 나를 침식하게 했다. 내가 만든 생각의 지옥에 잠겨 죽어가는 형국이었다. ‘접시물에 코 박고 죽는다’는 옛말처럼 말이다.
흐름을 만들어야 했다. 몸의 흐름, 몸의 움직임.
소주와 먹으면 맛있는 멍게는 원래 뇌가 있다. 인간과 같은 척삭동물이다. 움직일 줄 안다. 그런데 정착을 하고 나면 멍게는 자기 뇌를 먹는다. 움직일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왜 이렇게 클까? 생각을 위함이 아니다. '움직임'을 위함이다.
한 가지 기능만 인간보다 뛰어난 동물은 많다. 치타의 달리기는 인간을 압도한다. 고릴라의 근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타고 있는 말의 안장을 허벅지로 컨트롤하며 활쏘기를 할 수 있는 건 인간뿐이다. 뇌는 고도의 연산을 수행하며 몸을 다스린다.
뇌는 그것을 위해 있는데, 움직임이 없어지니 멍하니 지내게 된다. 즉각적 반응이 있는 게임에만 매달린다. 나머지 시간은 멍하니 생각에 잠겨 괴로워하는 존재가 된다. 악순환이다.
달리기는 닫힌 방이 아닌 변화하는 풍경을 내 안에 집어넣어 주었다. 새로운 물이 들어오는 만큼, 고여있던 썩은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운동장 다섯 바퀴에서 시작한 달리기는, 한강을 찍고 오는 9km 코스로 늘어났다.
9km를 논스톱으로 뛸 수 없다. 가는 길에 수많은 횡단보도가 있기 때문이다. 횡단보도 즈음에서 신호를 파악하며 페이스조절을 한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제자리뛰기를 하거나, 체력 상태를 봐서 심호흡을 고른다. 신호가 바뀌면 다시 뛰어간다.
신호의 파악, 호흡의 가늠과 조절은 달리는 도중 일어난다. 사방을 살피며 연산한다.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켜지는 순서, 지금 차량의 움직임,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뛰어야 할 경로.
풍경도 계속 변한다. 뇌는 구석구석 자극 받으며 활성화된다. 운동신경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만, 그렇게 했는데도 살은 안 빠졌다.
9km 코스가 되면서 매일 뛰지 않았다. 격일로 뛰었다. 준비하고 씻는 시간까지 하면 2시간 30분에 달하는 일정이었다. 오랜 시간 뛰고 돌아와 배를 만져보면 이상하게 차가웠다. 상체랑 머리에선 땀이 뻘뻘 나는데.
고심 끝에 운동 가르쳐준 후배가 헬스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입던 땀복을 떠올렸다. 러시아 군인 겨울 모자처럼 안쪽으로 털이 숭숭 나있는 후드 짚업를 입고 뛰었다. 더우니까 팔은 걷어도, 배는 꽁꽁 싸매고 뛰었다. 뛰다가 열을 식히고 싶어도 지퍼는 가슴팍까지만 내렸다.
그제야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려고 티셔츠를 벗으면 배 부분에 땀이 흥건하게 배어 있었다. 지방이 연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4개월에 걸쳐 정상체중으로 돌아왔다. 배에 붙은 지방 10kg를 모두 빼냈다.
E.H.카의 말과 멍게 뇌 이야기, 기억하는가?
한강까지 뛰던 어느 날. 달리고 있는데 일그러진 큐브가 맞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또렷해지고 의식이 명료하게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단절됐던 뇌 시냅스 사이의 연결이 회복되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정신을 또렷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정신이 흐리멍덩해진 것이 나의 가장 큰 문제였다. 안개 낀 것처럼 생각을 하려고 해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를 브레인 포그(Brain Fog)라고 한다.
그렇게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시는 예전의 상태로 못 돌아갈 것만 같았다. 무섭고, 괴로웠다.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것 하나만 믿고 살던 사람이라 더욱 그랬다.
운동 안해도 코끼리같은 근육 있는 애들도 있다. 내가 그런 과였다면 몸으로 하는 일에 두려움 없이 부딪히며 살 수 있을 텐데. 이쪽은 가능성이 없었다. 강점으로 살아야 했다.
‘두뇌 회전력마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닌데, 내 전부가 망가진 건데.’ 하는 공포가 심했다. 그러던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그것도 살 빼려고 달리는 중에 잠깐이나마 머릿속 안개가 걷히고 시야가 또렷해진 것을 느낀 것이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때부터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달리는 일과가 재밌어졌다.
다들 알다시피, 인생에서 '유익한 것'이 재미있기 시작하면 장땡이다.
최고의 패를 손에 쥐었다.
장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