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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피지컬은 많이 회복된 상태였다. 특히 달리기를 통해 살이 빠질수록 정신이 돌아왔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것이 날아갈수록 글을 써낼 힘도 생겨났다. 글을 쓰려면 정신이 또렷해야 했다.
신기한 경험은 있었다.
소설 마지막 문장을 적고, 마침표를 찍었다. 이른바 탈고의 순간.
다음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8개월 내내 들리지 않던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대단한 말은 아니었다. 정상 궤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매일 하는 말이다.
'오늘 뭐하지? 앞으로 뭐하지?'
우울한 사람은 과거를 곱씹는다. 무기력한 사람은 과거를 곱씹는데 지쳐 다른 활동을 할 에너지가 없는 지경에 도달한 자다.
현재를 그런 식으로 허비하는 사람에게 미래를 그릴 여력은 없다. 줄곧 내 상태였다.
그러던 나에게 미래를 생각하는 능력이 돌아왔다. 신기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 시점부터 구직 모드로 전환했다.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하고, 찾고, 움직였다. 사람을 만나러 집 밖으로 나갔다.
소설 써서 밥벌이하기 작전은 실패했다.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실패였다. 문을 꼭 닫았다.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다른 문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8개월 내내, ‘다시 보통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탈고한 다음날 눈 뜨는 순간에야 알았다. 할 수 있었다.
다시 사회로 발걸음을 내딛은 첫 날이 기억난다. 출근길에 생각했다. ‘내가 이런 풀타임잡의 하루 일과를 버텨낼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다. 괜히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그래서 파트타임 잡을 생각하기도 했다.
새 일터는 야근이 없는 곳이었다. 다행이었다. 다시는 일터를 고를 때 '불공정 거래'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상태였다. 최소한의 근로기준법도 지킬 의지가 없는 곳에서는 일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갈아 넣다 망가지는 경험, 인생에 한 번이면 된다.
한번은 경험이지만 두세번 반복되면 오롯이 내 책임이다.
첫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밥도 먹지 않고 한동안 누워있었다. 기운이 없어서 그랬다. 10분? 30분? 한 시간? 그때그때 달랐다. 두어 달 동안 매일 이런 패턴을 반복했다. 퇴근하자마자 누워야 다음에 뭔가 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매일이 위기였다.
조금만 삐끗하면 겨우 올라온 해변에서 다시 심해로 추락할 것 같았다. 크고 작은 위기가 많았다. 회사도 몇 번 바뀌었다. 그 와중에 또 험한 일도 여러 번 겪었다.
그때마다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문이 닫히면 항상 다른 문이 열렸다. 거짓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