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갈 '자리'가 있어야 한다. 가정, 일터, 그리고 이해관계 없는 사람들 = 친구 사이에서.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삼각 축이다.
밥만 먹는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아파트와 주식과 코인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세 개의 축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위태로워진다.
균형을 잘 맞추면 두개로도 서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안전한 느낌은 받지 못한다. 하나로만 서 있을 수 있는지는..모르겠다.
내 경우, 하강의 시작은 일터의 축이 무너지면서였다. 풀타임 잡을 할 몸상태가 아니라는 게 스스로 내린 판단이었다. 몸이 썩어 있었다. 정신은 붕괴되었다.
여기에 친구들과의 관계 95%를 한 번에 스스로 날렸다. 일터의 축은 완전히 날아갔고, 친구의 축은 위태롭게 되었다.
‘던바의 수’라는 것이 있다. 한 사람이 마음을 내줄 수 있는 타인의 수는 150명이라고 한다. 150명도 층위가 있는데, 가장 가까운 그룹부터 동심원을 그리며 넓어진다.
베스트 프랜드가 30명 있을 순 없다. 모두와 같은 크기의 마음을 나눌 수 없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BF말고 나머지 전부를 ‘허수’로 치부한 것이다. 그때 주소록에 천 명 넘게 있었다. 30명 정도 남기고 다 지웠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깊고 튼실한 관계가 코어근육이라면, 느슨한 연결은 잔 근육이다. 지지해주는 잔근육이 없으면 코어에 무리가 간다.
깊고 튼실한 관계가 자동차 타이어 프레임이라면, 얇고 느슨한 연결은 고무 타이어다. 프레임만으로 굴러갈 수 없다. 끼익끼익 듣기 싫은 소리를 내다가 곧 마모되어 완전히 멈추리라.
환대란 무엇일까. 존재를 반겨주고, 긍정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톨스토이 식으로 말하면 사랑. 우리 시대의 사랑은 온통 남녀간의 에로스 뿐이다.
그것 말고, 신이 인간에게 베푼다는 '아가페' 개념이 내가 생각하는 환대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베풀 수 있는 존재론적 사랑. 누군가 나를 반겨주는 느낌.
깊고 지고한 신적 사랑의 경지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사소한' 환대를 베풀며 산다. 그리고 상대가 베푸는 환대를 먹고 산다.
- 인사하기
- 인사 받아주기
- 미소 짓기
- 웃어주기
- 말 걸기
- 말 들어주기
- 같이 밥 먹기
별 것 아닌 것들이다. 그런데 사람에겐 이 별 것 아닌 것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누구나 이것을 갈망한다. 자산이 200억 2000억이라고 해서 얻을 수 있는게 아니다. 2조 원을 줄 테니 무인도에서 타인과의 접점 없이 살라고 하면 어떨까?
아무리 좋은 집, 차, 옷, 전자제품, 음식, 심지어 로봇 친구들과 수많은 게임과 영화와 책이 있더라도 사람은 살 수 없다.
내가 배운 것은 이것이다. 결국 사람은 환대를 먹고 산다는 것.
심해에서 해변으로 다시 올라와 산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내게 별 것 아닌 환대를 베풀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살다 보면 또 싸우고, 맘에 안 들고, 다신 안 볼 사이가 되는 일도 일어난다. 그럼에도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
사람 인 (人) + 사이 간 (間) = 인간人間 이다.
3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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