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계기: 둘의 결혼이 나를 살린셈

전환점, 반환점.

by Homo Growthcus


우선 '친구'라는 단어의 정의를 내 언어로 해본다.


[친구] :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


그리하여 할아버지와 아이가 친구가 될 수 있다. 부모 자식도 친구가 되어간다. 고양이와 인형, 심지어 나무와 돌멩이가 친구일 수 있다. 돌멩이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 가능하다.


아무 말은 이 정도로 하고,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내어 버린 내게, 남은 사람들은 정말 유의미한 존재들 뿐이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필요 없었던 걸까?


그때는 전부 '허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했지만, 지금은 '느슨한 연결'이 사람이 살아가는 관계망 속 튼튼한 하부구조 역할인 안다. 당시에는 내가 죽으면 울어줄 사람일까? 하는 질문을 했었다.


사실 나도 부고 소식을 들어도 슬프지 않을 것 같은 사람과의 관계는 당연히 있는 법이다. 그것이 전부 허수는 아닐 터이고.




남은 사람들을 다른 말로 바꾸면 BF(Best Friend)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고 불편하지 않은 BF 둘이 결혼하는 날이 다가왔다.


결혼할 줄 안지 오래였다. 다가온 날이 하필 그때였다.


둘이 결혼하는게 아니라 각각 다른 사람과 결혼했으면 모두 안 갔을지도 모른다.


에너지레벨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보통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해서 일과 마치고, 저녁에 사람을 만나거나 운동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한다. 활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당시 나는 하루 2시간짜리 일과 하나도 버거웠다. 슈퍼나 미용실처럼 어쩔 수 없는 외출이 생겨 한 번 나갔다 오면, 뭘 더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몸이 썩게 한 정신이 몸을 썩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집 밖으로 나가려고 마음 먹는 것부터가 '의욕'의 영역이다. 의욕을 잃은 사람에게 외출 준비는 오랫동안 큰 마음을 모아야만 가능한 거창한 일이다. 밥 먹기 싫고, 씻기도 싫은데 외출은 무슨? 사는게 전부 피곤할 뿐이다.


정상인들은 알 수 없을 영역이다. 게으르게 볼 수밖에 없다. 살 가치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사람의 몸에 들어가 살아보지 않는 이상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보통의 인생에선 병에 걸려 쇠약해지거나, 노인이 되어 기력이 쇠했을 때 알게 될 영역이리라.

어쩌다 보니 그것을 빨리 경험하며 깨달았을 뿐이다. 덕분에 건강을 잃어본 일이 없는 사람들보다 건강의 중요성을 훨씬 빨리 인지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몹시 약해서 항상 운동에 힘썼고, 늙어서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라는 말을 했는데, 무슨 말인지 이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시절 내게 온 결혼 소식이 꽤 있었지만 전부 가지 않았다.


그러나 하필, BF 둘이 결혼하니 안 갈수가 없었다. 무리해서라도 가고 싶었다. 생애 마지막 결혼식 참석한다는 마음으로 갔다. 이 지점에서 당시의 나로서는 전혀 인지할 수 없었던 '신의 한 수'가 내 인생 바둑판에 놓이게 된다.


살집이 많아 스트레스인 사람이 있고, 말라서 스트레스인 사람이 있다. 전자는 돼지라는 멸칭으로, 후자는 멸치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나는 후자였지만 딱히 스트레스 받지는 않았다. 마른 사람 콤플렉스 같은 것도 없었다. 마른 내 몸이 좋았다.


운동을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적당히 근육이 붙는 내 몸이 좋았다. 몸을 싫어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좋아했다.


몸이 가벼웠을 땐 가슴 높이까지 오는 벽을 달려가며한 손으로 짚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행동이 가능했다. 파쿠르처럼 몸을 가지고 재밌게 놀았다. 남들이야 어떻게 보건 나는 그런 내 몸이 좋았다.


결혼식에 가려고 거진 1년만에 셔츠를 꺼냈다. 아프기 한참 전부터 배에 낙타 혹마냥 지방의 산이 쌓여 있었다. 폐인 생활을 하며 산의 등고선이 높아졌다. 셔츠를 입어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뭐지?"


TV에서 보던 부장님 핏이 거기 있었다.


마른 사람이라 셔츠를 사도 슬림핏을 주로 샀다. 거울을 보니 슬림핏은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옷이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되어있었다. 가디건을 꺼냈다.


‘폐인 생활 전에는 잘 가리면 가능했으니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불가능했다. 결국 셔츠는 포기했다. 가장 넉넉한 티셔츠를 입고 가디건으로 몸을 둘렀다. 그래도 낙타 혹은 감춰지지 않았다. 배가 올챙이마냥 볼록 튀어나왔다.


바지를 입었다. 단추가 잠기지 않았다. 모든 바지가 그랬다. 어찌어찌 겨우 옷을 입고 결혼식에 갔다 왔다. 진이 빠져 씻으려 옷을 벗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 몸을 직시하게 되었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울 보기를 싫어한다. 오랜만에 거울을 통해 내 몸을 보았다. '몸이 예쁘다'는 말의 의미와, '몸이 못생겼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때 깨달았다.


식생활이 망가진 지 오래였다. 주로 먹는 건 탄수화물과 나트륨 당분 덩어리인 라면/과자/콜라같은 것이었다. 운동량이 없으니 근육은 쪽 빠지고, 배에는 내장지방과 복부지방으로 구성된 지방 벨트가 둘러졌다. 레슬링 선수들이 차는 큰 벨트 위에 삼겹살 20근을 붙여놓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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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사람이 배만 나오면 ET 체형이 된다. 보기가 싫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이 뱃살은 빼고 죽어야겠다 싶은 마음이 한가닥 일렁였다. 이것이 신의 한수가 되어 나를 살렸다.


계기는 이렇게 우연하게 오기도 한다.


둘이 결혼해서 참 다행이다. 니들 덕분이다.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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