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창문: 청소력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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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 Growthcus


인간은 청결에서 안전함을 느낍니다. 청결은 실제로 안전이기 때문입니다. 소독하지 않은 칼, 더러운 손으로 수술하면 상처는 꿰매도 죽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더러운 물을 마시고 더러운 공기를 마시고 더러운 음식을 먹으면 몸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종류의 정보가 오랜 세월 지구에서 살며 축적된 우리 유전자에 쌓여 있습니다.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방에 틀어박히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입니다. 환기도 제대로 안하고 문을 꼭 닫고 지내는 것, 심각한 위험신호입니다. 반대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실외활동을 열심히 하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에도 환기를 잘 하며 지내는 사람이 건강하지 않은 모습, 상상이 가시나요?




사람은 마음의 문이 닫히면 물리적 문도 닫고 지내고 싶어합니다. 그럴 때 억지로 열라고 해봤자 소용없습니다. 그러나, 회복의 시작은 언제나 문을 여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폐인 생활 첫 1주일을 편의점 음식으로 연명했습니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때 <청소력>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제목 그대로 '청소의 힘'을 증언하는 책입니다.


스크랩해놓은 메모를 뒤져보니 이런 흐름이었습니다.


일단 무조건 환기

다음 쓰레기 제거

세번째 오염 제거

마지막 정리정돈입니다


순서대로, 창문부터 열었습니다. 일주일간 고여있던 공기를 밀어내며 바깥 공기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미세먼지가 높아도, 아무리 좋은 공기청정기가 있어도 실내와 실외 공기는 다릅니다. 꽉 막혀있던 공간에 공기가 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쓰레기를 제거할 차례입니다. 편의점에서 사온 비닐 속에서 나온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쓰레기를 밀어내며 누울 공간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방을 뒤덮고 있는 플라스틱, 비닐 등을 함께 사온 편의점 비닐봉지에 넣기 시작합니다.


방문을 잠그기 전에 쌓은 쓰레기도 있었기에, 봉지가 더 필요했습니다. 전부 모아 버리고 보니 이제야 바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세 번째는 오염 제거인데, 아직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바닥을 덮고 있는 잡동사니와 옷가지부터 치워야 했습니다. 벽에 걸 수 있는 건 전부 벽에 걸고, 잡동사니도 일단 책상 위에 전부 올려놓습니다. 바닥 면적이 확보되어야 쓸고 닦을 수 있으니까요.


드디어 바닥을 쓸고 닦습니다. 말해 뭐할까요. 정말 더러운 상태였습니다.




이쯤에서 <청소력>의 내용을 조금 옮겨봅니다.


"간호사 일을 하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정신질환의 프로세스는 방을 청소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옷차림도 차츰 불결하게 된답니다. 목욕도 안 하게 되고, 여성의 경우에는 화장도 안 하게 되고, 마치 더럽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방을 깨끗하게 하면 엄청 화를 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복되어질 때에는 그 반대의 프로세스를 겪는다고 합니다. 우선 자기 스스로 목욕을 하고, 청결해지려고 한답니다.”


한마디로, 자기 스스로 자신을 버린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스스로를 꽤나 심하게 버린 상태에서 '조금' 빠져나온 것일 뿐입니다. 저의 회복 프로세스 첫 단추였습니다.


일단 청소를 해놓고, 오랜만에 넓어진 방에 누웠습니다. 문득 깨달은 것은, '내가 나를 완전히 잃어버렸구나' 하는 감각이었습니다.


저는 심하게 깔끔 떨던 유형의 사람입니다. 물건마다 위치를 정해둡니다. 씻는 것도 그렇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비누칠해서 샤워를 두번씩 했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피부 보호막이 파괴되어 안 좋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의사 선생님께 물로만 씻거나, 좀 덜 씻으라는 말을 듣고 요즘은 그렇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깔끔 좀 그만 떨라고 한 소리, 아니 여러 소리 듣던 사람입니다.


그런 나는 어디로 간 걸까요. 누워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앞서 인용한 <청소력>의 구절처럼 잘 씻지도 않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양치도 잘 안했습니다. 더러운 꼴로 지냈습니다. 내가 나를 놓아버린 상태, 나 자신을 유기한 상태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그래도, 창문을 열어서 다행입니다.



청소력의 다른 부분을 좀 더 인용하며 이번 장을 마칩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고통 속에 빠져 있다면, 우선 청소부터 시작하십시오. 만약 당신 주변에 우울증을청소력의 다른 부분을 좀 더 인용하며 이번 장을 마칩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고통 속에 빠져 있다면, 우선 청소부터 시작하십시오. 만약 당신 주변에 우울증을 겪고 있는 분이 있다면 청소를 권하십시오. 그 사람이 청소를 할 기력이 없다고 하면, 당신이 청소를 대신 해 주세요.

상쾌하게, 확실하게, 선명한 공간을 매일 만드십시오. 조금이라도 좋습니다. 반드시 가장 밑바닥에서도 기어 올라올 수 있습니다. 믿으세요. 청소에는 힘이 있습니다.”




문체에 관하여


모든 글 중에 이 글만 문체가 다릅니다. <청소력>은 일본 저자의 책이고, 일본 책 특유의 번역투가 묻어 있습니다. 이 챕터를 쓰기 전, 참고할 부분을 위해 스크랩해놓은 부분을 다시 읽고 썼습니다.


먹은 대로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쓰고 보니 <청소력>의 문체가 그대로 묻어나온 느낌입니다. ‘고칠까?’ 생각을 몇 번 했습니다. 시도도 했습니다. 그런데 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고치면 전달력이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챕터만 문체가 이렇습니다. 이상하다고 느낄 분이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작업 로그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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