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생명: 집밥 백선생을 삼시세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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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 Growthcus

생명력을 품고 있는 무엇과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 본능에 각인된 갈망이었다. 문제는 여전히 기력이 없다는 것.


도심 속에서 자연을 누리기 위해 사람들은 텃밭을 가꾼다. 화분을 놓고 반려 식물을 들인다. 이런 수준의 적극적 행동,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패배감과 무기력, 우울에 빠져있는 사람에겐 무리다.


스스로를 유기한 마당에 다른 생명을 돌보고 가꾸고 싶을 리가 없다. 좀 더 쉬운 길로 선택한 방법은 신선한 식재료와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매일 편의점 음식과 패스트푸드, 라면과 떡볶이, 콜라와 맥주에 절여 있던 내 몸은 신선한 식재료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때까지의 내게, 샐러드란 결코 돈 주고 사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풀을 왜 돈 주고 사먹지? 그러던 내가 이때 처음으로 채소를 사보았다. 파, 당근, 양파 등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먹고 싶기도 했지만, 그것들과 접촉하고 싶었다.


그것들에 묻어있는 '생명력'을 보고, 맡고, 만지고, 듣고, 맛보고 싶었다. 채소의 살아있는 색감을 보고 싶었다. 그것들의 향을 맡고 싶었다. 신선한 식물을 만지고 싶었다. 손질하고 채 썰 때 나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먹고 싶었다.


그때까지의 나는 조리 기술이 '제로'였다. 할 줄 아는 음식, 자신 있는 음식이라곤 라면뿐이었다. 기껏 하는건 라면에 이것저것 넣어먹는 것 정도.


이제는 '좀 더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몸이 그것을 원했다.




당시는 쿡방의 전성기였다. 신선식품과 친해지기 시작하며 <냉장고를 부탁해>, <집밥 백선생>, <삼시세끼> 세 프로그램을 원없이 봤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재밌어서 봤다. 그런데 가랑비 옷 젖어들 듯, 음식 할 때면 여기서 본 스킬이 생각나곤 했다. 셰프들을 통해 조리의 기본 원리를 배울 수 있었다. 특히 김풍의 야매 스킬은 맛 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집밥 백선생'은 본격 음식 수업이었다. 배우러 나온 패널들이 나와 다를 것 없는 초짜라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삼시세끼'는 내 마인드를 바꿔주었다. 우울증에 빠진 백수. 건조하게 말하면 이것이 당시 나의 정체성이자 실체였다. 다시 일하고 싶지도, 일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도 않는 상태였다. 취업할 의지도 없었다. 시간이 남아돌아 시간을 죽이려 게임을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이걸 다 어떻게 쓰지?


삼시세끼를 보면 알겠지만, 패스트푸드와 배달음식을 먹지 않는 삶은 그 자체로 바쁘다. 직접 음식 해먹고 치우기만 해도 하루가 끝난다.


'시간을 이렇게 써도 되겠구나. 게임하는 것도 지치는데 잘됐다' 싶었다.


세끼까지는 못 만들어 먹었다. 매끼 이렇게 해 먹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도 한끼 정도는 건강한 식재료로 만들어 먹는 시작이 되었다.


그동안 식생활을 돌이켜보면 탄수화물, 나트륨, 단백질, 당분만 몸에 넣어주고 있었다. 비타민, 무기질은 보이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젊으니까 '그나마' 버텼고, '조금' 망가진 것이었다. 몸이 고장 날 수밖에 없는 식생활이었다. 먹던 음식 중 가장 건강한 게 햄버거였으니 말 다했다.


탄수화물 나트륨 단백질 당분. 넷을 조합해 나오는 대부분의 음식은, 내 표현으로 하면 '죽은 음식'이다. '살아있는'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라면 토핑으로 시작했을지언정, 먹기 시작했다.


생리학적으로 일어난 몸의 변화를 비타민, 무기질, 마이크로바이옴(장내세균=몸 안에 사는 세균과 바이러스 등의 미생물) 등의 개념을 동원해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생명'이 담긴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그 안에 들어있던 '생명'이 날 살려내기 시작했다.


'직접 만들어' 먹는 행위 자체도 날 살려냈다.


아무리 맛있는 요리가 배달로 오는 시대여도 대체할 수 없는 충만감이 그 안에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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