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독서: 죽음의 책에서 살아야 할 이유 찾기

상승: 5/8

by Homo Growthcus

언제나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믿는다.


요즘은 유튜브 속에도 길이 있다.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이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넘어가고 있다. 영상이 텍스트보다 효과적인 영역이 있다.


예를 들면 운동 방법에 대해 배우고 싶을 땐 영상이 낫다. 스쿼트 자세를 책으로 배운다고 생각해 보자. 고퀄리티 일러스트, 고화질 컬러 사진 아무리 많아도 책으로는 답답하다. 책값만 비싸진다. 수영이나 서핑을 책으로 배우는 건? 상상도 어렵다.




여기까지 동전의 앞면이다. 동전의 뒷면을 볼까? 영상은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아무리 보고 들으며 학습효과가 있는 것 같아도 끄는 순간 잊어버리기 쉽다.


TV를 괜히 바보상자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뇌가 일하지 않는다. 수동적으로 흘러오는 정보를 잠깐 담았다 망각할 뿐이다.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펜을 잡고 이리저리 적어가며 골똘히 고민하는 상태와, 인강 선생님이 풀이하는 것을 듣고 난 후를 비교해 보자.


영상에서 푸는 모습을 볼 땐, 알게 된 것 같고 이해한 것 같다. 영상이 끝나는 순간? 남아있는 것이 없다.


책을 읽는 건 능동적인 운동이 결합된다. 텍스트 배열을 따라 눈이 계속 움직인다. 영상도 눈이 움직이지 않나? 말하신다면 스마트폰이나 TV보는 사람의 눈동자를 살펴보자. 눈동자가 거의 고정되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책은 아무리 작아도 눈동자가 좌우로 위아래로 끊임없이 움직이게 마련이다. 여기에 책장을 넘기기 위한 손의 움직임이 따른다.


형광펜으로 줄을 치거나, 메모를 하면서 읽는다면? 눈과 손의 운동이 강화된다. 책장을 넘길 때 '사락'하는 소리는 청각에도 효과를 준다.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영상 볼 때와 비교할 수 없는 뇌 활성화가 일어난다.


책의 본질은 지식의 정수다. 한 사람의 평생의 연구 결과가 담겨 있는 경우도 있다. 타인의 삶을 간접 경험할 수도 있다.


텍스트를 따라 읽다 보면, 읽는 순간만큼은 내가 저자가 된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책을 읽으며 의사가 된다. 세계일주를 한 사람의 책을 읽으며 여행가가 된다. 수천년 전 왕이나 장군들이 쓴 책을 읽으며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이 된다. 소설 속 인물이 된다.


영상으로 보면? 관찰자가 된다. 시점이 1인칭이라도 그렇다. 독서할 때 내면을 따라가는 경험과 비교하면 1인칭 관찰자일 뿐이다. 책과 영상의 차이는 '체험'하는 것과 '구경'하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제나 책 속에 길에 있다고 믿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우울증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갈 길도 책에서 찾았다. 갑자기 독서 예찬을 한 이유다.


영상으로 우울증을 다룬 다큐나, 우울증 환자의 인터뷰를 보는 것은 구경이다. 우울증을 겪은 사람이 쓴 책을 읽는 것은 체험이다. 나는 인류 최초, 유일무이한 우울증 환자가 아니다. 분명 누군가는 살아내고, 견뎌내고, 이겨냈을 것이다. 그 중에 누군가 분명 경험과 기록을 글로 남겼을 것이다.


그들의 경험을 듣는 것, 분명 내게 도움이 될 터였다. 그들을 연구한 학자가 낸 책도 도움이 될 것이었다.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다. 살기 위하여.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하여.


우울증 자체를 다룬 책보다는,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책을 많이 읽었다. 결국 우울은 살아야 이유를 잃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내가 계속 살아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은 왜 이렇게 무의미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한 해답이 필요했다.


3주에 한 번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렸다. 정기적인 외출 일정이 있는 것 자체가 정신 건강에도 유익했다. 당시 읽은 책, 그후에 읽은 책 중 권할 만한 목록은 아래와 같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 한낮의 우울

- 좋은 이별

- 아임낫 파인

-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 행복의 기원

- 위대한 멈춤

-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

- 만약은 없다

- 청소력


- 글쓰는 삶을 위한 일년

- 쓰기의 말들

- 글쓰기의 최전선

- 아직도 가야할 길

-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 아들러 삶의 의미

- 끝나지 않은 여행

- 이젠 죽을 있게 해줘

-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

- 그리고 저 너머에


- 거짓의 사람들

- 지혜로운 생활

- 일의 기술

- 단순한 삶

-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 내가 일하는 이유

- 미움받을 용기

- 인생에 지지 않을 용기

-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염증에 걸린 마음

- 최강의 식사

- 지방의 누명

- 인생의 태도


- 배움의 발견

- 죽은 자의 집 청소

- 단단한 삶

- 나란 무엇인가

- 오랫동안 내가 싫었습니다


- 내 마음을 읽는 시간

-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 박막례, 이대로 죽을 없다

12가지 인생의 법칙


- 이것이 인간인가




독서 기록을 확인하며 세어보니 45권이다. 밑줄로 표시한 14권은 즉각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나머지는 한 줄이라도 해설이 필요하다. 해설을 달기 시작하면 종이가 모자랄 것 같아 일단 목록만 정리했다. 구미가 당기는 제목이 있다면 살펴 보라는 정도로 이해해주면 되겠다.


책이 날 살렸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하겠다. 그러나 결코 전부는 아니었다고 하겠다. [2부 : 상승] 파트는 총 8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 비율로 독서는 12.5%의 역할 정도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달리고, 주변 사람들의 선의를 받고, 책을 읽으며 앞서 이 고통을 겪고 고민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 하나하나가 분절된 요소가 아니라 유기적인 상호 영향을 미치며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멸망 직전에 처했던 생태계가 회복되어가는 그림이다.



여기서 책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 책을 정신의 자양분이라고 흔히들 표현한다. 씨앗도 심지 않고 비료만 많이 주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씨앗도 뿌리고 비료도 주고 햇빛도 있고 물도 있고 가꾸는 손길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결실을 볼 수 있다.


책은 비료였다.


책을 읽으며 살아갈 이유를 끊임없이 얻었다. 비료를 뿌려도 밭에 돌이 많아 씨앗이 잘 자라지 못하기도 했다. 물이 없어 비쩍 마르기도 했다. 그래서 돌도 골라내고 물도 대며 계속해서 씨앗을 뿌리고 비료를 줬다.


결국 내 마음밭은 다시 싹을 틔워내기 시작했다. 다시는 농사짓지 못할 것 같던 밭에서 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통과하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통과하고 보니 8개월이었지 사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당시에는 결코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8개월이 걸렸지만 어떤 사람은 8년이 지나도 그 안에 있을 수 있겠다.


책은 부스터였다. 부스터가 없었다면 나도 아직 거기 있을지도 모르겠다.


위에 적은 책을 쓴 모든 사람들, 책의 가치를 알아보고 출판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느낀다. 부디 내가 써 내려가는 것들도 비슷한 종류의 도움이 되길 바란다.


당신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낼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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