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7/8
'요즘 왜 이렇게 깊이 생각하지 못할까?', '나 요즘 너무 멍청해진 것 같은데.’
이런 시기마다 삶을 점검해보면 책과 멀어져 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책은 좀 읽었니?”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멍청해진다. 이 말은 안중근 의사의 말을 내 식으로 바꿔 쓴 것이다.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뜻이 뭘까? 문자적으로 읽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혓바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2021년을 살아가는 나의 생각은 이렇다.
1. 책을 읽지 않으면 자극-반응적인 존재가 된다.
현대사회에서 책을 읽지 않으면 디지털 자극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터넷 환경은 광고 지면을 팔기 위해 공짜로 제공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지불한 돈이 없다면, 이용하고 있는 '나'가 상품인 것이다.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등에서 광고를 집행해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할 것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옥외광고나 신문을 보지 않는다. 손바닥 안에서 끝도 없이 나타나는 재밌는 것을 찾아 헤맨다. 상품을 팔려면 손바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당신이 사용하는 앱, 웹 어디를 둘러봐도 광고가 '발라져' 있다. 당신에게 광고를 '노출'시켜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당신이 광고를 '클릭'하게 해주는 댓가로 돈을 받는다. 그렇게 당신은 거래 대상이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 많은 광고를 당신에게 보여줄수록 플랫폼의 수익은 늘어난다. 당신을 잡아놔야 한다. 더 재밌고 자극적인 것들로 잡으려 애쓴다. 깊은 사유와 맑은 정신을 유지하게 하면 안 된다. 그런 사람은 허투루 광고를 소비하지 않는다.
뇌를 산만하게 만들어야 광고를 판다. 책과 멀어지고 얕은 디지털 세상에서 노닐수록, 인간은 사바나 초원에서 자극과 반응을 쫓아 살던 원시인 수준으로 살게 된다. 오직 소비만 남은 존재가 된다.
2. 자극-반응적 존재가 될수록 자기 사유를 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사람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다들 한번쯤 경험했을 것 같다. 한참을 대화했는데 자기 생각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다. 그게 정말 '너의' 생각인지 묻다 보면, 본인 생각은 하나 없고 대부분 유튜버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읊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럴 때 나는 섬뜩함을 느낀다.
타인의 생각을 듣고 '동의'하는 것과, 자기 사유의 영역으로 가져와 '소화'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3. 자기 사유를 하지 못하고, 타인의 관점을 가지지 못하면 편협해질 수밖에 없다.
여러 유튜버의 얘기를 듣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알고리즘은 당신이 '좋아할만한' 유튜버만을 메뉴판에 계속 올려주기 때문이다. 다른 관점은 보이지도 않는다.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된다. 자신의 유튜브 메인화면만이 세상의 전부가 된다.
다른 관점을 제시하면 당신의 기호에 맞지 않게 된다. 흥미를 잃어 플랫폼을 이탈하면 광고를 더 팔 수 없다. 광고의 대상인 당신을 잡아두기 위해서는 편향적으로 만드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결과적으로, 플랫폼에 갇힌 당신의 생각은 고인다. 문자 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입체적인 관점을 갖기 위해 예전 시대에 권장되던 것은 '다양한 신문'을 읽는 일이었다. 특히 실시간 이슈에 관해서는 책보다 신문이었다.
요즘 누가 다양한 관점을 가진 신문을 펼쳐놓고 읽을까? 시대가 바뀌어 신문은 더이상 다양한 관점을 대변하는 매체도 아니다. 10대는 틱톡, 2~30대는 인스타그램, 3~40대는 페이스북. 이런 식이다. 전 연령이 이용하는 유튜브가 있지만 채널 구독자의 인구통계 편향성은 확연하다.
책은 시간의 검증을 거친 텍스트다. 출판사 관문을 넘으려면 1차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과학도서가 아닌 경우라면 결국 문사철 이야기가 된다.
역사부터 생각해보자. 인터넷 이전 시대의 신문은 ‘거의’ 실시간(어제)의 정보를 담고 있다. 책은 최소한 한 타임 지난 이야기(역사)다.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유익이 있다. 역사를 읽으면 현재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다. 마치 증강현실 안경을 쓰는 것처럼 과거와 현재가 겹쳐 보인다. '현재'만 보이는 사람들이 보지 못할 관점을 갖게 된다. 판단이 달라지고 선택이 달라진다. 결국 미래가 달라진다. '역사'를 읽으면서 획득한 타인의 관점 덕을 보는 것이다.
'문학'은 역사보다 초월적인 타인의 관점을 갖게 해준다. 나는 남성인데 문학을 통해 여성의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나는 한국인인데 문학을 통해 그리스 사람으로 잠시 살 수 있게 된다. 나는 2020년대를 살고 있는데 문학을 통해 1,500년 전 사람의 삶도 느낄 수 있다.
타인의 관점이 많아질수록 다면적, 다층적인 사람이 된다.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끽해야 1인분 인생이지만, 책을 통해 수많은 삶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철학'은 말할 것도 없다. 나와 완전히 다른 가치관,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 논리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문학과 역사에 소프트하게 풀어져 있는 것이 철학책에는 압축본으로 담겨 있다.
나의 세계가 넓어진다.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내 존재가 깊어진다.
'유튜브로도 다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상 매체와 텍스트 매체는 확실히 다르다.
영상은 너무 많은 정보를 전달하고 있어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또한 겉모습 전달은 잘 되지만 '내면'전달은 약하다.
필리핀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봤다. '저렇게 사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관찰자의 시점에서 보게 된다. 중간중간 마음속 얘기가 인터뷰로 나오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TV속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그와 내가 동일시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영상 속 필리핀 어부가 일기를 썼다고 가정하겠다. 그것을 읽을 때는 순간적으로 내가 그가 된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고통이 있는지, 마음이 어땠는지 저자의 내면을 따라가는 행위가 독서다.
읽고 있는 내게 일어나는 일은 '관찰'이라기보다 '경험'인 것이다. 나치즘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관찰이지만, <안네의 일기>를 읽는 도중 우리는 1945년 사망한 15세 소녀가 된다.
4. 편협해질 뿐 아니라, 자기 수준에서만 맴돌게 된다.
사람들은 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스스로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지식적으로 부족하다고 인정하는 것과, '내가 멍청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는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지금까지 내린 판단들을 보면 그렇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현명하다는 것은 뭘까. 지혜롭다는 것은 뭘까. 지식이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위키피디아에 있는 모든 내용을 암기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기보다 편집증 환자다.
생각하는 힘, 생각의 근육이 강한 사람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생각을 자가발전으로만 하는 사람은 한계가 명확하다. 논에 물 대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논에 물대기를 하지 않는다면? 벼가 공급받을 수 있는 물의 총량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전부일 것이다. 이 경우 수확이 가능할지나 모르겠다. 운 좋으면 알갱이 한둘 붙어있는 볏짚 몇개 남을 것이다. 대부분은 말라 죽는다.
논에 물을 대줘야 한다. 그래야 농사가 된다. 풍성한 추수를 할 수 있다. 지혜를 수확할 수 있도록 지식의 물을 대는 행위가 바로 독서다. 독서 없이 생각이 깊어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타고난 대천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만, 일단 내가 그런 천재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다.
지금의 인류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앞선 사람들이 쌓은 기반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거인의 어깨라는 말, 너무 많이 사용되어 아무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이 표현만 한 게 없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야만 볼 수 있는 세상이 있다. 책이 바로 거인의 어깨다.
5. 조종당하기 싫어서, 책을 읽는다.
<책 읽는 뇌>라는 책이 있다. 인간의 뇌는 본래 책을 읽기 적합한 설계가 아니라고 한다. 앞의 다른 장에서도 말했는데, 뇌는 운동능력을 컨트롤하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바나에서 살아남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자극에 반응하여 생존에 유리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것이 인간 뇌의 기본값이다. '읽을 때만' 뇌는 깊어진다.
뇌는 가소성이 있다. 어떤 방향으로 길을 내고 자주 오갈수록 그 길은 넓어진다. 10년 동안 책 읽은 사람의 뇌와 10년 동안 유튜브 클립만 따라다니고 틱톡 스와이프만 한 사람의 뇌는 아주 다르다.
한 줄 요약 세줄 요약에 익숙해질수록 조종당하기 쉬운 사람이 된다.
역사도 문학도 철학도 쓸데없고 가치 없고 복잡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적이다. 논쟁도 토론도 공통의 기반이 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혜가 깊어 자기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대조된다.
그런 사람과 가질 수 있는 공통의 기반은 그 사람의 생각뿐이다. 그나마 자기 생각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다른 사람 생각을 앵무새처럼 읊으면서 자기 생각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조종당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일까?
타인이 조종당하는 삶을 사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다. 다만 나도 저렇게 조종당하지 싶지는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유하는 힘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
무슨 방법으로?
책이다. 책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