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1/8
매주 월요일 아침 진행되는 주간 회의 시간이었다. 나는 회의 내내 할 말이 없었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 이른지 꽤 오래였다. 회의가 끝날 무렵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HG, 우울증인 것 같아."
‘이름’의 힘은 위대하다. 이름과 함께 개념화된 것은 사람의 내면에 자리잡는다. 꽃의 이름을 아는 순간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하지 않았나.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것은 추상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저기 다가오는게 뭐야? 검고, 큰데······."
점점 가까워지며 녀석의 정체가 보인다. 늑대다. 알고 있는 이름과 매칭되는 순간 회색지대는 끝난다. 늑대는 맹수다. 늑대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사람의 다리는 풀린다.
추상의 세계에서 인식의 세계로 넘어오며 일어나는 일이다. ‘우울증’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 내게 일어난 일이기도 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삶이 맛없어지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저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복하지 않았고, 웃을 일이 없었다. 잠을 자도 자도 피로했다. 매일을 견뎌낼 뿐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라는 존재 곳곳에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금갈 곳이 없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 마지막 작은 충격 하나만 더하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이었다.
‘이름’이 붙는 순간 나는 부숴졌다. 마지막 펀치였다.
우울증에 대해 잘 몰랐다. 당시 읽던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이 말대로라면 나는 완벽한 우울 상태였다.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은 행복의 반대말은 우울이라고 말했다. 우울이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몸은 살아 있지만 죽었다고 느끼는 상태다. 아무리 즐거워도 자신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상태가 아닌 한 행복할 수 없다."
_ 내가 일하는 이유 p. 145
자리에 앉아 있노라면 종종 '죽을 것 같다'는 감각이 일렁였다. 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다. 나는 에너지가 넘쳐나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힘든 일도 내가 선택하면 끝까지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시 하던 일은 두 명의 담당자가 있는 프로젝트 사업이었다. 같이 하던 사람은 1년이 지난 뒤, 자기 길이 아닌 것 같다며 떠났다. 내게도 분기점이 왔다. 여기서 그만두면 이 일은 사라질 것이고, 혼자 일궈내면 업적이 될 것이다.
혼자 해보기로 했다. 그때 몰랐던 것은, 둘이 하던 일을 혼자 하는 것은 두배가 아닌 세배의 출력이 든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에너지 레벨이 높아봤자 120% 정도였을 것이다. 보통 사람의 출력을 100으로 잡고, 상태가 안좋은 사람을 60~70으로 잡자. 이때 120은 꽤나 빛나는 수치다.
120짜리가 200, 300의 출력을 내는 것? 잠시는 가능한 일이다. 계속하면엔진이 마모되며 작동 불능에 이른다. 일에 약간의 조정이 있긴 했다. 2인분으로 돌아가던 일이 1.75인분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250의 출력을 내야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나는 완전히 고장났다.
내가 간과한 것은 내 몸을 감가상각 없는 고정값으로 둔 것이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20대의 체력, 젊음이었다. 나를 무한한 자원이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갈아 넣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사회 초년생의 오류이기도 하다.
몸이 갈려 들어가며 너덜너덜해졌다. 체력이 떨어지면 정신력도 떨어진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명제, 참이다.
어느 날 배를 봤는데 임산부처럼 나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