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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Feb 03. 2022

호랑이보다 무서운 이것

호랑이와 곶감

“하여간, 이맘때만 되면 하나 같이 꽁무니도 못 찾겠단 말이지... “

제 아무리 산군이라도 추운 겨울 눈 밖에 보이지 않는 산속에서 배를 채우는 것은 쉽지 않은 법이다. 며칠을 이리저리 쏘다녀도 사슴은커녕 토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자, 하는 수 없이 호랑이는 산을 벗어나 인간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내려갔다.

“호오, 저기 마침 불이 켜져 있구먼! “

   호랑이는 저 멀리 불이 켜진 초가집 하나를 발견했다. 슬쩍 보니 주변에 다른 집도 없는 것이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별 어려움 없이 배를 채울 수 있을 법했다.


   혹여나 소리가 들릴까 꼬르륵 소리 나는 배꼽까지 여러 번 단속하다 보니 어느새 집에서 나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다.

“으아아아앙!!!!”

“이 녀석아, 뚝 그치래도?”


   뭐가 그리 서러운지, 아이의 우는 소리와 달래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앞마당에 가만히 엎드려 때를 기다리는 호랑이의 귀에 깜짝 놀랄만한 말이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너, 자꾸 이렇게 우니까 마당에 호랑이님이 와 계시지 않니! 지금 뚝 그치지 않으면 호랑이님이 너를 콱! 하고 물어가실 거란다. 그러니 얼른 울음을 그치려무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미 호랑이가 마당에 와 있는 걸 알뿐더러,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호랑이가 콱! 물어갈 거라니. 가만히 두면 넝쿨 째 굴러오는 호박처럼 곧 배가 부를 것을 상상하니 호랑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호랑이는 가만히 엎드려 문이 벌컥 열리고, ‘호랑이님, 여기 우는 아이가 있으니 콱 물어가세요!’하는 소리가 들리길 손꼽아 기다렸다.


   시간문제였다. 아이는 호랑이가 왔다는 소리에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또다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그래. 자 여기 곶감이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귓전을 때리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멎었다. 순간 호랑이는 알 수 없는 공포가 자신을 휘감는 걸 느꼈다.


   ‘도대체 곶감이 뭐지? 얼마나 무서운 짐승이길래 호랑이가 온다고 말할 때는 계속 울던 녀석이 ‘곶감이다!’라는 소리에 울음을 뚝 그친단 말인가?’


“으아아아악!!!”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곶감이라는 놈이 주는 혼란에 머리가 띵 하던 바로 그때, 별안간 고함과 함께 누군가가 호랑이를 덮쳤다.


   소도둑이었다. 날이 어두워 호랑이를 소로 착각하고 훔칠 요량으로 지붕에서 올라탄 거였다. 호랑이는 ‘그 무서운 곶감이란 놈이 나를 덮쳤구나’ 싶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고서는 온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소도둑은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한참을 호랑이 등에 매달려 가던 그의 눈앞에 소나무가 보였다. 소도둑은 사력을 다해  굵게 뻗은 가지를 잡아채고는 뛰어내렸다.


   그제야 호랑이는 곶감이 떨어져 나간 줄 알고 산으로 다시 달아났다. 소도둑도 한숨을 크게 쉬며 ‘다시는 이런 일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 날 이후 호랑이와 소도둑이 그 마을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 한국 전래 동화 중 ‘호랑이와 곶감’  -


“아니, 그러면 안 되죠!”

“도대체 몇 번을 말합니까?”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르는 누군가를 바로잡기 위해 야단을 치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동화 속 어머니는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지금 당장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호랑이가 콱 물어갈 거야.’라는 무서운 말을 했다. 나 역시 동료의 실수를 고치기 위해 거침없이 직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호랑이가 물어간다.’는 말로 진정되지 않았고, 동료들은 거침없는 말 몇 마디로 바뀌지 않았다. 상황은 그대로였다. 실수가 잦아드는 것도 아니었다. 말하는 나도, 듣는 그들도 지쳐갈 뿐이었다.


   아무리 소리 지르고, 심지어 억지를 쓰더라도 동료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라!’고 윽박지른다고 해서 일 머리 없는 그 사람이 하루아침에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으로 거듭날 리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곶감이 아이의 울음을 뚝 그치게 했던 것을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물론, 잘못을 꾸짖고 바로잡는 일을 통해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머니가 태도를 바꾸어 아이가 좋아하는 곶감을 주었을 때 울음소리가 멈춘 것처럼, 인간 관계도 다르지 않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의 입장에서 행동하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을 바꾸고, 더 나아가 마음까지 열어준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때로는 정말 곶감이 호랑이보다 무서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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