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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Jun 02. 2022

보이면 보이지 않는다

불쌍한 여우 흉내

“어, 저게 뭐지?”


옛날 어느 나그네가 숲 속을 걷고 있었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뭔가 보였다. 나무 그늘 아래 주저앉아 있는 건 주황색 털을 가진 여우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나그네가 다가오는 소리를 멀리서 들었을 텐데, 왜 진즉 도망가지 못했을까?


“아, 저런...”


   나그네는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찼다. 가만 보니 저 여우는 덫에 걸리기라도 한 듯 오른쪽 뒷다리가 아예 없었다. 그래서 달아나지 못하고 우두커니 나무 그늘 아래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다.


   안타까움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도대체 저 여우는 다리 하나 없이 어떻게 먹고살 수 있었단 말인가? 나무 뒤에서 숨죽이고 있던 나그네의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집채만 한 사자가 사슴을 물고 오더니 여우 앞에 주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날 나그네는 가야 할 길도 잊은 채 같은 시간 다시 그 숲으로 들어갔다. 놀랍게도 사자가 다시 여우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그 모습을 본 나그네는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아, 그렇구나! 신께서는 자비하셔서 한쪽 다리를 잃어버린 저 여우에게도 사자를 통해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구나. 그래, 나도 신을 믿고 기다리면 여우를 보살피시듯 나에게도 필요한 것들을 내려주실 거야!”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아무리 기다려도 바라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야위어 가던 그가 거의 죽어갈 때쯤,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다. 그건 바로 나그네가 그토록 도움받기를 원했던 신의 목소리였다.


   자기를 부르는 그 소리에 나그네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한쪽 다리를 잃은 여우를 사자를 통해 돌보신 자비하신 신께서 왜 하루하루 비쩍 말라가는 가련한 나는 왜 돌보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그러자, 신은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어리석은 나그네여. 이제 외다리 여우 흉내는 그만 집어치워라. 나는 네가 사자를 본받았으면 해서 그 모습을 보여주었건만, 왜 깨닫지 못했느냐? 네 주변에 외다리 여우와 같은 가련한 자들이 보이지 않았느냐?”


- 수피 우화 중 ‘불쌍한 여우 흉내’ -



“자, 다들 준비해 왔지요?”


   초등학생 시절, 떡꼬치를 먹거나, 오락실에 가는 것보다 훨씬 즐겁고 마음을 뿌듯하게 하는 일이 있었다.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낸다거나, 알록달록 크리스마스실을 몇 장 구매하는 순간이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코 묻은 돈 모아봤자, 얼마 안 되었겠지만, 내가 모은 그 몇 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좋았다.


“아이 씨, 돕긴 누굴 도와. 내가 불우이웃인데!”


   하지만, 모두가 늘 같은 마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더 어렵다’며 말 그대로 10원 한 장 꺼낼 줄 몰랐던 그 아이의 얼굴과 이름은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 그 애는 크리스마스실 하나 사지 못할 만큼 가난했을까? 반장 선거 후 그 녀석이 돌렸던 롯데리아 불고기버거와 캔 콜라의 맛은 아직도 생생한데 말이다.


   이름 모를 나그네는 왜 하염없이 굶으며 신의 도움을 기다렸을까? 얼굴을 떠올릴 수 없는 그 아이는 왜 불우이웃 돕기 모금함에 한 푼도 넣지 않았을까? 자기 입장만 고수하며 내 필요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적 인물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다리 하나 잃은 여우를 보고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주기를 바랐던 나그네처럼, 불우이웃 돕기 성금은커녕, ‘내가 불우이웃이다!’ 말하며 크리스마스실 한 장 살 줄 몰랐던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처럼, 내 입장만 생각하고, 나만 본다면, 정작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는 잊히고,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미국의 배우였던 John Ray의 말처럼, 이기주의는 모든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끌과도 같아서 내 주변에 있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똑바로 볼 수 없게 한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라. 나의 필요만 보이면, 남의 눈물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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