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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Oct 02. 2020

‘던질까 말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떠들썩떠들썩 들썩들썩 떠들썩!'



 "와 씨, 큰일 났다. 지각이다!"



 ‘코앞에서 보면 눈 나빠진다’는 엄마의 말에 ‘이미 나는 뭐 충분히 나쁜 걸요’ 말대꾸하고 텔레비전과 프리허그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야 거의 텔레비전을 꺼놓고 살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생각처럼 리모컨에서 ‘전원’을 누르기가 아쉬운 때였다.



 ‘전 국민 지각송’이라는 게 있었다. ‘이 곡을 들으면 100% 지각’이라는 거다. ‘TV 유치원 하나둘 셋’에서 나오는 엔딩 송(?)이 나에겐 그런 곡이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텔레비전에 집중하다 보면 걸어서 가도 한참 걸리는 그 거리를 땀 한 바가지 흘리며 뛰어도 늦는 그런 상황이 일어나곤 했다.




그때의 전국민 지각송.




 “던질까 말까 던질까 말까”



 어른이 된 나는 ‘또 다른 텔레비전’의 애청자다. ‘너튜브’ ‘우리튜브’라고 바꾸어 우스갯소리로 부르는 앱, ‘유튜브’를 자주 본다. 취향에 따라서 구독해두고 보는 채널도 있는데, '이게 뭐야?' 생각하며 '유튜브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지?'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던질 지 말 지' 고민하는 영상이었다. 2015년에 나오는 동요로 트니트니의 오뚝이 다트 교구를 갖고 노는 모습을 표현한 노래라는데, 이 노래와 함께 나온 율동을 1시간 동안 반복하는 이른 바 ‘한 시간 챌린지’가 유행을 타서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나 또한 보게 된 것이다. '왜 이런 영상이 유행했을까?' 조금 과몰입해서 상상해보면, 우리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던질까 말까 던질까 말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었다’



 코미디언 박명수씨가 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그래서 어쩌면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는 정말 ‘늦은 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 호통치는 박명수씨가 무섭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어쩌면 불확실함 때문에 ‘던질까 말까’ 한 시간을 넘어 며칠, 혹은 몇 년 고민하는 우리에게 '아 그냥 던져, 던져!'를 외치는 어떤 남자가 여기 있거든.



진짜?





아테나, 텔레마코스를 격려하다






 "아, 아버지 도대체 왜 돌아오시지 않는 건가요..."



 그러니까 그게 장장 10년 동안 질질 끌었던 트로이 전쟁이 끝난 이후였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트로이는 헥토르의 죽음 이후 함락 당했다. 그리스 인들은 모두 함선을 타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위대한 왕중왕 아가멤논 역시 무사히 자기 집에 도착했다.



 "여보, 고생 많으셨어요."



 아르고스의 왕궁으로 돌아온 그를 왕비 클뤼타임네스트라가 환대한다. 그녀는 보랏빛 주단을 깔았다. 하지만, 왕은 그것을 보고 질색한다. ‘어찌 신의 색인 보라색을 한 주단을 내가 걸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왕비는 ‘공훈을 세운 신과 같은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이 주단을 감히 지르밟을 수 있냐’며 그의 공을 치켜세운다. 그제야 안심한 와낙스는 신발을 벗고 보랏빛 주단 위를 걸어온다.



 "아, 좋구나. 참으로 좋아."



 아가멤논은 오랜 여정의 피곤함을 목욕으로 풀고 있었다. 노곤함이 그를 살며시 감싸고, 이제 막 잠이 들던 참이었다. 무언가 그를 덮친다.



 “아니, 이게 뭐야?”



 여름날 단잠을 자다 무너진 모기장은 분명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자유롭게 대양을 헤엄치는 물고기 떼를 사로잡는 그물에 가까웠다. 그래, 모험을 마치고 온 왕중왕을 그물이 덮친 것이다. 집을 비운 사이 왕비는 아이기스토스와 정분이 났다. 이후 돌아온 왕을 죽이기로 작당한 두 사람은 그가 돌아온 바로 그 날에 작전을 실행했다.


아가멤논의 최후.


 "죽어라!"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이 남편에게 칼을 꽂아 넣는다. 그것도 연거푸 두 번이나! 전쟁터에서 용맹함을 뽐냈던 와낙스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쓰러진다. 미끄러운 목욕탕 바닥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이미 흥건한 피 때문이었는지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그때 다시 왕비는 한 번 더 칼을 꽂았다. 이렇게 개선하여 돌아온 바로 그 날, 아가멤논은 목욕탕에서 살해당했다.



 살해당한 왕의 동생, 메넬라오스는 아이귑토스로 떠내려갔다. 거기에서 재산을 모아 8년 후 그리스 땅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이미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살해자에게 복수를 마친 뒤었다.



  

 트로이가 불타고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훌쩍 넘어가는데도 오직 한 사람, 오딧세우스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얼굴도 모르는(오딧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위해 떠났을 때 그는 아직 갓난아이였다.) 아버지를 한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아, 혹시나 우리 아버지는 이미 백골이 되어서 어디에 처박혀 썩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바다의 너울에 맞춰 이리저리 춤을 추며 물고기에게 뜯기고 계신 건 아니려나?”



 끔찍한 상상을 했던 아들은 잠시 그가 한 상상이 불효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뺨을 후려쳤다. 하지만, 아들에게 기약 없이 얼굴도 가물가물한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이미 어머니와 정혼을 하고 싶다며 구혼자들이 나타나 집안에 널브러져 흥청망청 자기들 멋대로 이것이며 저것까지 재산들을 탕진하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아들 텔레마코스의 생각과는 달리 오딧세우스는 동료들을 모두 잃긴 했지만, 살아남는 것에는 성공했다. 다만 오귀기에 섬에서 아틀라스의 딸 칼립소에게 붙들려 있는 것이 문제였다. 이 일을 신들도 모를 리 없었기에 오딧세우스를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




 아, 거기 빠진 신이 한명 있었다. 포세이돈이었다. 아들 폴뤼페모스의 하나 밖에 없는 눈을 찔러 멀게 한 오딧세우스에게 화가 난 그가 오디세우스의 고생에 한몫 했으니 그를 빼놓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아무래도 더 지체해선 안 되겠구나. 내 딸 아테나여, 지금 바로 텔레마코스에게 가라. 배를 구해 아버지를 찾아 떠나라고 이야기해주거라."




아버지의 친구로 변한 아테나의 이야기를 듣는 텔레마코스.



 "자, 오딧세우스의 아들아. 너는 스무 명이 탈 만한 배를 준비해라. 오랫동안 떠나 계시지 않는 너의 아버지를 찾아 떠날 때가 되었구나. 너는 퓔로스로 가서 고귀한 네스토르에게 아버지에 관해 묻고, 금발의 메넬라오스를 찾아가라. 네 아버지가 살아서 귀향길에 올랐다는 말을 듣거든 1년만 더 참고 견디거라. 하지만, 그가 돌아가셔서 더는 계시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주저 없이 고향으로 돌아오거라. 아버지를 위해 무덤을 만들고 장례를 치르거라. 어머니를 새남편에게 보내드리는 것이 좋겠지. 하지만, 여기에서 마치면 안된다. 어린애 같은 생각은 집어 치고, 이제 구혼자들을 어떻게 해치울지 고민해라. 교활한 아이기스토스에게 복수한 오레스테스의 고귀한 이야기를 너도 들었겠지."



 자기를 아버지의 옛 친구인 타포스 출신 멘테스라고 소개하며 텔레마코스에게 이렇게 당부한 아테나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텔레마코스는 용기로 무장했다. 그리고 여전히 널브러져 남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는 구혼자들에게 ‘집에서 나가달라’고 정중히 말한 뒤 회의를 소집했다.






텔레마코스, 용감하게 출항하기로 하다





"아니 이게 몇 년 만이지요?"



 "그러게 말이오. 한 20년만이지요?"



 텔레마소스는 모든 아카이오이 족을 회의에 모이도록 했다. 이타케의 왕, 오딧세우스가 배를 타고 떠난 뒤에 전혀 모일 일이 없었던 원로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 앞에서 텔레마코스는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원로들이여, 제 이야기를 좀 들어보십시오. 모두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어디에 살아계신 지, 아니 혹시 이미 돌아가셨는지 행방조차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를 잃은 저에게는 더 큰 시련이 있습니다. 그게 무얼까요? 혹시 아십니까? 네, 바로 어머니의 구혼자들이 날마다 우리 집에 들락날락하며 멋대로 재산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원로들은 허공을 바라보며 헛기침을 했다. 구혼자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들에게 해를 가한 일이 없다면, 제발 이제는 물러나 달라고 호소하는 그의 말은 구혼자 중 한 사람, 안티노오스가 일어나서 소리치는 일 때문에 막혀 버렸다.



 "흥, 네 어머니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런 일이 끝나지 않을 거다!"



 하지만, 텔레마코스 역시 완고했다. 계속해서 만행을 저지른다면 제우스에게 호소하여 보복하기라도 하겠다며 응수했다. 그때, 노장 할리테르세스가 조용히 말했다.



 "이보시오, 그가 트로이 인들의 땅으로 떠날 때 내가 한 말을 다들 잊었소? 오딧세우스가 20년 만에 귀환할 것이라고 말했었지. 이 말이 진짜 이뤄진다면, 혹여나 그의 귀환의 날이 재앙의 날이 되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있소."



 "하, 재앙이요? 오딧세우스는 아마 이미 죽었을 거요!"



 에우뤼마코스의 비아냥에 텔레마코스는 칼이라도 가져와 찌를 것처럼 분노했다.



 "닥치시오! 아버지가 죽다니. 자, 원로들이여. 나는 이제 아버지의 소식을 수소문하려 합니다. 스파르테와 퓔로스로 가려고 하니 배를 좀 준비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어휴, 전부 개판이다.




 당황한 원로들이 수군거렸다. 그러나, 이내 그 소리는 아테나, 아니 멘테스(로 변신한 아테나)의 열정적인 호소 때문에 이내 잠잠해졌다.



 "아타케 인들이여, 내 말을 잠시 들어보시오. 우리의 왕이었던 오딧세우스가 얼마나 상냥하고 훌륭한 아버지이자, 군주였는지 잊었소? 그를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구려. 아, 나는 절대 저 거만한 구혼자들이 나쁘게 마음먹고 행패 부리는 것이 미워 말하는 것이 아니오. 다만 다른 백성들 때문에 나는 분을 참을 수 없다오. 저 얼마 안 되는 구혼자들을 말로 다잡아 제지하려는 자가 단 한명도 없단 말이오?"



 그 말을 들은 레오크리토스는 더욱 기세등등해져서 말했다.



 "오딧세우스가 돌아오면 무엇하나? 그는 그저 구혼자들인 우리에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할 뿐이오. 자, 회의는 이쯤하면 됐지. 모두, 해산하시오!"



 모두가 눈치를 보며 나가는데 텔레마코스가 모험을 떠날 배짱이 전혀 없다며 오만한 레오크리토스는 ‘떠나든지 말든지 네 맘대로 하라’며 침을 뱉고 돌아섰다.




 분했지만, 행동으로 뭔가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한 텔레마코스는 아무도 모르게 포도주 열두 항아리, 보릿가루 스무 말을 유모를 통해 준비했다.




 한편, 아테네는 멘테스의 모습을 하고 노에몬에게 부탁해 배를 구하고 출항할 사람들을 모았다.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왔다. 모두가 잠이 들었는데, 텔레마코스는 아무도 격려하지 않는 가운데 그의 항해를 시작한다. 신과 함께.




노장 네스토르와 텔레마코스.





퓔로스에 도착하다







 "장관이네요, 절경이고요!"



 텔레마코스와 멘테스는 밤새 항해하여 퓔로스에 도착했다. 마침 네스토르는 4500명의 백성들을 모아놓고 포세이돈을 위해 81마리의 황소를 제물로 바치는 중이었다.



 "보기만 할 건가? 우리도 가세."



 멘테스는 주저하는 젊은이를 데리고 네스토르와 아들들이 고기를 굽는 곳으로 갔다. 배에서 고동소리를 내는 텔레마코스에게 고기를 권한 네스토르는 정중하게 그들이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를 물었다. 젊은이는 정신없이 고기를 먹던 입으로 ‘아버지의 소식이 궁금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자네가 바로 그 오딧세우스의 아들이로군! 자네 아버지가 얼마나 자네가 보고싶다고 노래를 부르던지 말이야!”



 노장은 웃음을 터뜨리며 동지의 아들을 쳐다보더니 어깨를 두들겼다. 그리고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자세히 말해주었다.


그냥 ‘한입만 주세요’ 하면 되는데...




 "그래서 나와 메넬라오스, 그리고 자네 아버지는 아가멤논을 남겨두고 먼저 트로이에서 떠났지. 테네도스 섬에 도착했을 때였어. 마음을 바꿨는지 ‘아가멤논에게 가겠다’고 하더군. 그런데 그 이후에 우리는 자네 아버지가 아가멤논에게 잘 도착했는지 소식을 도무지 모른다네..."



 하지만, 아들은 이미 아버지에 대한 기대를 없앤 지 오래였다. 그만큼 아버지는 오랫동안 모습은 커녕 소식조차 없었으니까. 하지만, 네스토르는 젊은이의 등짝을 세게 치며 말했다.



 "아직 포기하긴 일러! 자네, 메넬라오스에게 가보게. 아무도 그가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표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왕은 아들을 시켜 텔레마코스가 라케다이몬으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하라고 말했다.



 텔레마코스는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하룻밤 머물라’는 네스토르의 권유를 따라 궁전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거친 바다를 헤치고 밤새 항해한 피곤이 그제야 파도처럼 밀려왔다.  다음날 왕자 페이시스트라토스와 함께 라케다이몬(스파르테)으로 향하기 전까지 그는 세상모르고 잠에 빠졌다.






라케다이몬에서 실마리를 찾다






 "와, 여긴 잔치가 벌어졌군!"



 마침 메넬라오스의 집에서는 딸과 아들의 성대한 결혼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메넬라오스는 이방인들을 기꺼이 환대했다. 궁전으로 안내하여 목욕을 하게 했고, 저녁 대접을 망설이지 않았다.



 "아, 나는 사실 오딧세우스. 그 친구의 가련한 운명을 생각하면 마음이 괴롭다네..."



 무거워진 공기만큼 분위기가 쳐진 것은 아버지의 이름을 듣고 텔레마코스가 눈물을 쏟았기 때문이다. 메넬라오스는 금방 이 젊은 친구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 수 있었다.




 그들 모두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가엾은 사내를 생각하며 울었다. 그때 눈치 없이 대화에 끼어든 헬레네는 갑자기 그리스 군에게 큰 도움을 준 사실을 맥락 없이 풀어놓았다.



 그녀는 아테나의 신상을 오딧세우스가 훔칠 수 있도록 도왔었다. 그것을 자랑스레 눈물 흘리는 사내들 앞에서 다시 꺼낸 것이다. '오딧세우스가 그 소원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메넬라오스는 생각했다.




 트로이를 멸망시키는데 한몫한 그 목마 안에서 오딧세우스는 메넬라오스에게 '헬레네를 죽이지 않는 것이 그의 소원'이라며 신신당부 했던 것이다. 사실 메넬라오스는 그때부터 헬레네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목마 속에 그들이 숨어 있었을 때, 헥토르의 동생 데이포보스는 헬레네에게 그리스의 장수들을 불러보라고 뜬금없이 요구했고, 그녀의 목소리에 하마터면 메넬라오스는 대답을 할 뻔했던 것이다. (물론, 헬레네는 거기에 그리스 장수들이 있었는지 몰랐겠지만) 한 마디로 그녀 때문에 다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였다.


꼭 그 말을 지금 했어야 했냐고 헬레네에게 묻고싶다.



 "내가 그때 프로테우스라는 노인을 만났지. 그 영감이 그런 말을 하더군. ‘오딧세우스가 칼립소의 궁전에 갇혀 있어.’ 라고."



 다음날 메넬라오스는 자신이 어떻게 집에 돌아올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파로스 섬에서 만난 노인이 오딧세우스 이야기를 했다며 귀띔을 해주었다. 하지만, 철없는 텔레마코스는 그저 메넬라오스가 주기로 약속한 선물에 대해서만 말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한편, 이렇게 아들이 동분서주하는 것을 몰랐던 이타케의 구혼자들은 노에몬이 사실을 말해주자 분노했다. 한편으로 그들은 진짜 떠난 애송이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이제 교활한 안티노오스는 그를 없애기 위해 이타케와 사모스 사이의 해협에 숨어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대일밴드’ ‘포크레인’ ‘딱풀’ ‘스카치테이프’



 공통점을 아는가? ‘보통명사가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경우’다. 무슨 말이냐고? 쉽게 말해서 저것들 모두는 특정 회사의 ‘제품명’이었는데, 워낙 유명해져 버려서 반창고 하면 대일밴드, 굴삭기 하면 포크레인. 뭐 이런 식으로 일정 제품의 이름이 전체를 설명해주는 이름이 되었다는 거다.



 ‘오디세이’ 혹은 ‘오딧세이’라는 말을 검색하면 본글에서 시작한 그리스의 고전이 아니라 여행기, 혹은 여정에 대한 글이나 책이 나올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리아드와 쌍벽을 이루는 이 고전은 ‘여행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람들에게 많이 인용되거든.



 하지만 오뒷세이아, ‘오딧세우스의 노래’라는 제목처럼 오딧세우스가 처음부터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붕어가 없는 붕어빵 같고, 폭탄이 보이지 않는 폭탄세일 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늘 서사 속에 의도를 집어넣곤 한다. 오딧세우스의 노래 서두에 그가 등장하는 대신 아들이 떡하니 나오는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다.



어른이 아이의 미래의 모습이라면, 혹시 우리는 앞으로 될 무언가를, 미래를 꿈꾸며 달려간다. 굳이 아버지나 혹은 어머니라고 말하지 않아도 앞으로 되고 싶은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모두가 텔레마코스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 마음속의 늙은이. 원로들은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늦었다.' '그 일을 하기엔 너무 늦어버렸어.' 라고.



 인생에는 때가 있다고 했다. 봄이 있고, 여름이 있다. 가을이 있고, 겨울이 있어서 씨를 뿌릴 때가 있고, 버텨야 할 때가 있다고 했다. 열매를 거둬서 기뻐할 시간이 있는가 하면, 아무 것도 없이 조용히 물러서야 할 때가 있다고 했다.



 지금 내 때는 과연 무슨 계절일까? 아무도 모른다. 나와 같은 날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나와 울음을 터뜨린 저 사람이 가을을 맞아 열매를 거둔 것을 보며 ‘난 왜 아무 것도 없지’ 고개를 푹 숙이며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해보자' 하고 말이다.


배를 띄워라. 지금 시작해라.




'벌써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네?' '아, 2021년이 이제 2달 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며 후회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쩌면, 가을이 코앞일지도 모르는데, 당신은 열매를 거두지도 못하고 돌아서려는가? 그러기에는 아깝다. 인생은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당신보다 더 산 그 사람도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슨 계절인지 우리는 모두 모른다.



 하지만, 인생이 불확실하다고 해서 그만두기에는 당신이 너무나 눈부시다는 사실을 혹시 그대는 아는지? 20년이나 지나 '아버지는 죽었을 거야' 이야기하며 조롱하는 노인들의 핀잔을 조용히 뒤로하고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에 배를 띄웠던 애송이의 뒷모습을 안다면, 당신도 바로 지금, 조금씩 움직여보는 것이 어떨까 나는 생각한다.



 물론, 우리는 아직 모른다. 오디세우스가 정말 죽었는지, 아니면 가죽이라도 남아 비참하게 어디 목숨이라도 간신히 부지하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텔레마코스의 모습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을 지금껏 살아온 우리와 닮았는지 모른다.



 그래, 어쩌면 이미 배는 띄워졌는지도 모른다. 당신과 나의 인생. 그것은 불확실성 자체이니까.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뭔가를 시작할 때, 무엇인가 일어난다는 사실 말이다.



 여행이 끝나고 텔레마코스가 조용히 아버지의 묘를 만든다고 해서 그의 여행이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을 얻지 못해도 괜찮다. 누군가는 실패했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시도했다는 것 자체로 당신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저 겁쟁이들보다 낫다. 불확실성의 바다를 뚫고 과감히 배를 띄운 당신은 그 자체로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러니 '아, 이제 늦었어.' 생각하며 애꿎은 혀만 차지 말고 지금 바로 가슴 속에 담았던 그 일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제 ‘던질까 말까’ 충분히 반복했으니, '던져, 던져!' 외치며 저질러보자. 혹시 모르지. 부끄러워서 아무도 몰래 배를 띄운 당신의 새벽, 신이 그대의 어깨를 두드리며 좋은 친구가 되어 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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