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오, 5분 전이다."
직장인의 시곗바늘이 가장 무거워지는 순간, 5시 55분이 되었다. 어쩌면 그때가 아닐지도 모른다. 굳이 6시에 퇴근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 똑같다. ‘퇴근 시간 5분 전’은 우리의 시간이 가장 느리게 가는 때다.
"야, 오늘 몇 교시야?"
"아, 집에 가고 싶다."
‘잔반 없는 날’인 수요일에도 똑같았다. 등교와 동시에 우리는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해가 자기 얼굴을 감추고 나서 훨씬 더 지나 집에 들어가야 했던 고등학생 시절, ‘어떻게 하면 야자를 빼고 집에 갈지’ 고민했던 것이 나와 당신의 모습이 아니었는지.
"느이 집에 꿀 발라 놨냐?"
‘저는 우리 집의 기둥 같은 사람이라 제가 없으면 집이 무너집니다’라고 말은 못해도, 정말 꿀을 발라놓은 것처럼 우리는 참 집이 그립다. 요즘 같으면 재택근무에, 온라인 수업 때문에 그것도 아닐지 모른다.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은' 감정을 느끼는 날까지 오다니. 이쯤 되면 우리는 물어봐야 할지도 모른다. 대체 우리는 왜 그렇게 집에 집착하는지. 정말 꿀을 발라놓은 것은 아닌데 말이다.
혹시 이렇게 생각해봤다면, 늘어놓은 긴 글은 읽을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온갖 개고생에, 유혹까지 펼쳐 놓았는데도 ‘나는 내 집이 가장 좋소’ 말하며 어떻게든 집에 가려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이제 나오니까.
신들 중에 제일 바쁘고 고된 신은 누구일까? 아마 새벽의 여신일 것이다. 제우스조차 잠든 그 시간 모든 신들과 인간들에게 새날의 빛을 주기 위해 가장 이른 시간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녀만큼 피곤해 보이는 여신이 1명 더 있었다. 텔레마코스의 여행의 조력자로 나선 뒤 급하게 올림포스로 돌아온 아테나였다. 그녀는 요정(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요정이란 계급이 낮은 신을 말한다.) 칼립소의 집에 갇힌 가련한 오딧세우스가 염려스러웠다.
“아버지 제우스여, 그리고 영생하고 축복받은 모든 신들이여! 오딧세우스는 백성들에게 온화한 아버지였지만, 지금 그는 모두의 머리 속에서 잊혀졌어요. 요정 칼립소의 집에 억지로 붙들려 있지요. 그는 고향에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노를 갖춘 배도 없고, 전우들도 모두 죽었지요. 그의 아들은 소식조차 없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신성한 퓔로스와 고귀한 라케다이몬에 갔어요.“
구름을 모으는 제우스는 급히 헤르메스에게 말했다.
"헤르메스야, 너는 다른 일에서도 우리의 전령이지. 그러니 참을성 많은 오딧세우스의 귀향이라는 우리의 이 결정을 머리를 곱게 땋은 요정에게 전해주거라. 오딧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있겠지만, 그에게 신들, 혹은 필멸하는 인간들의 호송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는 그저 뗏목을 타고 고생을 하다가 스무날 만에 스케리아 땅에 도착할 것이다. 그 땅 사람들은 오딧세우스를 고향 땅까지 갈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그래, 이것이 그의 운명이다."
"아, 황금 지팡이의 헤르메스, 정말 오랜만에 우리 집으로 찾아오셨군요. 무슨 일로 오셨는지 다 말씀해주세요. 내가 이룰 수 있고, 또 이뤄진 적이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이뤄드릴 수 있습니다. 자, 여기 앉으세요. 음식을 대접해드릴게요."
고귀한 요정 칼립소는 자기 거처에 방문한 헤르메스를 보고 반색했다. 그녀는 손님을 번쩍이는 안락의자에 앉히고 말했다. 암브로시아가 그득히 차려졌고, 불그레한 넥타르가 나왔다. 배가 고팠던 전령은 마음껏 먹고 마셨다. 음식으로 마음이 충분히 즐겁게 되자, 그녀에게 말했다.
"그대가 여신으로서 남신인 나에게 여기까지 온 이유를 물으시니 나는 거짓 없이 사실대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나는 제우스의 명령을 따라 여기 왔어요. 그분은 그대 곁에 남자 중에서 가장 비참한 자가 있다고 하셨지요. 구 년 동안 프리아모스의 도시를 둘러싸고 싸우다가 삼 년 만에 그 도시를 함락하는 것에 성공하여 귀향길에 올랐는데, 아테나에게 죄를 지어 바람과 긴 파도가 일어나 전우들이 다 죽고 바람과 파도가 그를 여기까지 실어 보냈지요. 이제 제우스는 어서 그를 돌려보내라고 하십니다. 가족과 만나 지붕이 높다란 집, 고향에 가는 것이 그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칼립소는 몸서리치며 말했다.
"아, 그대들 남신들은 어떻게 그리 무정하십니까? 어떤 여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남편으로 삼아 공공연히 인간과 동침하면 일일이 질투를 하시니 말이에요. 그를 구한 것은 나입니다. 배의 용골에 혼자 걸터앉아 있었을 때, 제우스께서 바다 한가운데서 벼락으로 그의 배를 쪼개고 부쉈을 때 내가 그 남자를 구했단 말입니다.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에게 영원히 죽지도 늙지도 않게 해주겠다고 했지요. 하지만, 제우스의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지요. 이제 그는 추수할 것이 하나도 없는 바다로 떠나야 하겠군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말이죠."
신들의 전령은 다시 올림포스로 떠나고, 요정은 오딧세우스에게 갔다. 그는 바닷가에 앉아 있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중에 시간이 흐르는 것을 마음 아프게 여겼다. 고귀한 여신 칼립소는 고통에 빠진 사내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불운한 이여. 이제 더 슬퍼하며 세월을 허송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당신을 보내드릴 테니 말이죠. 그러니 어서 키 큰 나무들을 베어 뗏목 하나를 만드세요. 내가 그대를 바다 위로 실어다 주도록 하겠어요. 빵과 물, 포도주도 가득 넣어줄게요. 그대의 항해를 위해 순풍을 보내줄게요. 그러면 무사히 당신 고향으로, 그리운 집에 도착하게 될 거예요. 그것이 넓은 하늘의 신들이 가진 계획이니 말이죠."
그러자, 오딧세우스는 의심이 가득 찬 눈동자로 요정에게 말했다.
"여신이여! 그대는 분명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대가 나를 해치려는 다른 재앙을 보내지 않겠다고 엄숙하게 맹세하기 전까지는 나는 배에 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여신은 미소를 머금고 한 손으로 남자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니오, 그대야말로 교활하며 영리한 이 입니다. 자, 스튁스 강물이 내 증인이 되게 하세요. 나는 그대를 해치려고 다른 재앙을 생각하지 않겠어요. 오히려 나에게 그럴 필요가 있을 때 그대를 위해 생각하고 궁리할 작정인걸요."
여신이 서둘러 앞장서자 그는 발자국을 따라갔다. 여신과 남자가 빈 동굴에 도착하자, 그는 신들의 전령이 앉았다가 일어난 그 안락의자에 앉았다. 요정은 그 앞에 인간들이 먹는 온갖 음식물을 내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시종들은 그녀 앞에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갖다 놓았다. 그들이 실컷 먹고 마셨을 때, 먼저 입을 뗀 것은 여신이었다.
"자, 제우스의 후손 라에르테스의 아들. 지략이 뛰어난 오딧세우스여.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그대가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할지를 안다면, 이곳에서 나와 살며 불사의 몸이 되고 싶어 할 것이 분명해요. 나는 몸매와 체격에서 그녀 못지않다고 자부해요. 하지만 사실이지 않습니까? 필멸의 인간이 몸매나 생김새에서 불사의 여신과 겨룬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오딧세우스가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 때문이라면 화내지 마시오, 사려 깊은 내 아내 페넬로페가 그대만 못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으니 말이오. 그녀는 언젠가 죽지만, 그대는 늙지도, 죽지도 않지요.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귀향의 날을 날마다 바라고 있소. 혹시 신들 중에 누가 나를 다시 바다에서 난파시킨다고 해도 나는 참을 것입니다. 어떤 고난이 혹시 나에게 추가된다면, 그렇게 되라지요."
다음날 칼립소가 오딧세우스를 뗏목 만들기에 적당한 나무들이 있는 숲으로 안내 할 그 시간까지 둘은 석별의 정을 나누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
"자, 이제 다 되었습니다."
오딧세우스는 스무 그루의 나무를 베어 나흘에 걸쳐 뗏목을 완성했다. 칼립소는 약속대로 포도주와 물, 양식과 진미를 넉넉히 주었다. 그녀가 보내 준 순풍을 타고 열여드레간 항해한 끝에 무엇인가 보이기 시작했다. 파이아케스족이 사는 나라의 언덕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다른 신의 격노하는 눈동자가 그를 잡아냈다. 포세이돈이었다.
"아,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중에 신들이 저 오딧세우스에 대한 결정을 번복했구나! 하지만, 내 눈에 저 놈이 띄어버렸으니 어쩌겠는가? 나는 수많은 재앙을 그의 길 앞에 준비해두었다!"
오딧세우스가 상륙하여 귀향하는 것을 얌전히 보지 못하는 포세이돈은 무시무시한 폭풍을 보내 그를 괴롭혔다. 오딧세우스는 순풍이 가시고 갑자기 몰려오는 폭풍우에 당황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참으로 비참하다! 여신이 한 말이 사실이 아닐까 두렵구나. 고향 땅에 바다에서 온갖 고생을 할 것이라더니 이제 그것이 이루어지는가? 차라리 죽은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를 둘러싸고 많은 트로이 인들이 나를 향해 청동 날이 박힌 창을 내던지던 그 날에 나도 죽었었다면 좋았을 텐데, 차라리 그랬다면 나를 위한 장례가 치러지고, 그리스 인들은 나를 칭송했을 텐데, 이렇게 나는 죽음의 포로가 되는가!"
큰 파도가 무섭게 돌진해 와 그를 내리 덮쳤다. 뗏목은 갈 길을 잃어버리고 빙글빙글 돌았다. 돛과 활대는 멀리 바다 위에 떨어졌다. 남풍은 북풍에게 뗏목을 나르라는 듯 내던지고 동풍은 서풍에게 뗏목을 따라가라고 양보했다.
"불운한 사내여. 대지를 흔드시는 포세이돈이 그대에게 격노하는군요. 하지만, 그분이 그대를 없애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자,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옷들 모두를 벗어버리세요. 바람에 떠밀려 가도록 뗏목은 그냥 둬버리세요. 두 손으로 헤엄쳐서 파이아케스족의 땅으로 가도록 하세요. 그대의 운명은 거기에 닿아 목숨을 이어갈 것입니다."
모든 항해자를 돕는 여신 레우코테아였다. 그녀는 머릿수건을 건네주며 가슴에 두르면 고통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다에서 나온 뒤에는 도로 풀어 바다 위로 던져버리고 갈 길로 망설임 없이 돌아서라고도 전했다. 오딧세우스는 이틀 동안 파도와 싸움하며 흘러가는 일을 마치고 겨우 땅에 오를 수 있었다.
두 무릎과 억센 두 손은 축 늘어졌다. 바다와 싸운 탓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몸은 퉁퉁 불었고, 입과 두 콧구멍에서는 바닷물이 쏟아졌다. 말은 둘째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기진맥진하여 누워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숨을 쉴 여유가 생기고 정신이 돌아왔다. 이제 자기 몸에 용케 메어있는 머릿수건을 풀어 바다에 떨어뜨렸다. 레우코테아는 단박에 그것을 잘 잡았다.
오딧세우스는 눈앞에 보이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나무들 사이 덤불이 보았다. 그는 덤불들 밑으로 기어들어가 잠자리를 쌓아 올렸다. 마침 가을이었는지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 밑에 몸을 감추고 눈을 감았다. 아테나는 그의 눈에 잠을 쏟아부었다. 바다 위에서의 긴 싸움을 끝낸 사내에게 여신이 줄 수 있는 가장 고마운 선물은 단잠을 자고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 잘 들어라. 너와 동갑인 친구가 갑자기 나타날 거야. 너는 혼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르니까 가족들이 입을 옷을 깨끗하게 빨아 놓는 것이 좋겠지."
오딧세우스가 낙엽을 덮고 잠든 그 밤에 파이아케스족을 다스리는 알키노오스의 딸 나우시카아는 궁전에서 잠을 자다 꿈을 꾸었다. 아테나가 나타나 곧 운명의 짝을 만날 테니 준비하라고 말한 것이다.
"아버지, 짐수레에 고운 옷들과 먹을 것을 챙겨주세요. 시녀들과 빨래터로 가겠어요."
공주는 아버지에게 말하고 시녀들과 함께 빨래터가 있는 바닷가 기슭의 강으로 떠났다. 오딧세우스가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자리가 멀지 않은 그곳이었다.
소녀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높은 목소리를 깔깔대며 깨끗하게 빨아놓은 옷들을 널어놓았다. 일을 마친 후 목욕을 하고 점심을 먹었다. 공놀이를 하며 노래를 부르며 여유를 즐겼다.
"꺅!"
그 모든 소란에 잠이 깬 오딧세우스는 덤불에서 기어 나왔다. 바다에서 만난 여신 레우코테이아의 조언대로 옷을 모두 버려두고 이틀간 파도 속에 떠 있다가 겨우 뭍으로 밀려와 잠들었으니 얼마나 고됐을까?
그의 피곤조차도 흔들어 깨울 만큼 소녀들의 파티는 시끄러웠던 것이다. 잎이 많이 달린 가지로 겨우 아랫도리만 가리고 나왔는데, 소금물에 온통 절여져 튀어나온 남자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나우시카아만 빼놓고 모두 달아났다.
"아, 여왕이여! 그대에게 간청합니다. 그대는 도대체 여신입니까, 아니면 여인입니까? 아, 용서하세요. 나는 지금 큰 혼란과 두려움 속에 갇혀 있었거든요. 어제, 스무 날 만에 나는 바다에서 겨우 벗어났어요. 이제 어떤 신이 나를 여기 던져놓았는데, 이곳에서 나를 더 골탕 먹일 심산인 것 같아요. 그러니, 나를 좀 불쌍히 여겨주시길 청합니다. 도시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시고, 몸을 가릴 헌 옷 한 벌만 나에게 주시면 어떨까요?"
그에게 흰 팔의 나우시카아는 대답했다.
"나그네여, 아무리 봐도 당신은 어리석지도, 나쁜 사람 같지도 않군요, 그대가 우리 도시에 왔으니 옷은 물론이고, 불운한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나는 파이아케스족의 지도자 고귀한 알키노오스의 딸입니다."
나우시카아는 오딧세우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어떻게 올 수 있을지 말해주었다. 집으로 들어오면 반드시 ‘어머니의 무릎’을 꽉 잡아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여신이여, 나를 인도해 주셔서 내 집으로 무사히 향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어느덧 해는 얼굴을 감추었다. 오딧세우스는 아테나의 신전으로 들어가 기도를 올렸다. 그 사이 나우시카아는 궁전에 도착해 침실로 조용히 들어갔다. 오딧세우스가 일어나 도시로 들어선 바로 그때 한 소녀가 그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처음 뵙는 분이군요? 무엇을 찾으십니까?"
사실 그 소녀는 모습을 바꾼 아테나였다. 그녀는 알키노오스의 집으로 오딧세우스를 이끌었다. 안개로 그의 몸을 감싸니 아무도 보지 못하고 조용히 궁전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안개가 걷히고 그의 모습이 드러나자 왕의 집에서 시끄럽게 먹고 마신 자들이 매우 놀랐다. 그때 오딧세우스는 당황하지 않고 공주의 어머니의 무릎을 꽉 붙잡더니 간결하고 필요한 말을 뱉어냈다.
“아, 아레테여, 신과 같은 렉세노르의 따님께 나는 간청합니다. 신들께서 모든 분들께 복을 내리셔서 명예의 선물을 자기 자식들에게 또한 백성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아, 그리고 나를 위해 호송을 서둘러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눈물을 쏟고 있습니다.”
제우스의 엄한 법은 나그네의 청원을 반드시 들어줄 것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딧세우스의 눈물 젖은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탄원자를 돕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통치자 알키노오스는 ‘내일 나그네를 집으로 보낼 방법을 논의해보자’고 말했다. 모두 찬성하며 나그네를 집으로 어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윽고 모두가 떠나고 왕과 왕비, 오딧세우스만 남았다. 나그네는 자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긴 표류와 고난, 그리고 구원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고난과 표류를 이기고 여기까지 온 사나이에게 매료되었는지, 왕은 속마음을 오딧세우스에게 전달했다.
"나그네여, 그대같이 훌륭한 사람이 나와 생각이 같아 이곳에서 머물며 내 딸을 아내로 삼아 내 사위라고 불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대에게 집과 재산을 줄 것이오, 아, 그대가 자진해서 이 곳에 머문다면 말이지! 나는 그대를 붙들지 않을 것이오, 그것은 제우스의 마음에 들지 않을 테니 말이야. 내일 그대를 호송하도록 돕겠소."
사실 왕은 이렇게까지 말하면 그가 ‘남겠다’고 말하겠지 생각했겠지만, 나우시카아가 오딧세우스의 두 번째 부인이 되는 일은 없었다. 나그네는 그저 입을 열어 ‘지체 없이 저를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뿐이었거든. ‘집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오딧세우스의 가슴에 다시금 피어오르고 그는 기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오딧세우스, 이야기를 시작하다
다음 날이 되자 알키노오스는 오딧세우스와 회의장으로 갔다. 그는 사람들에게 ‘오딧세우스를 호송하기 위해 배를 한 척 준비하고, 젊은이 52명을 뽑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을 마친 뒤 다시 모여서 나그네를 환송하는 잔치를 벌일 테니 꼭 오라고도 했다.
"아아... 아...!"
잔치가 벌어지고, 시인은 노래하는데 오딧세우스는 즐거운 자리인 것을 잊었는지 겉옷까지 뒤집어쓰고 눈물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인은 트로이 원정의 한 장면을 노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오딧세우스가 방랑을 한지 오래되었으며, 트로이 전쟁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로 불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 가련한 나그네는 자신이 이룬 과거의 승리를 기억하며 오열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자! 우리 나가서 경기를 좀 하는 것이 어떻겠소?"
이 모습을 본 알키노오스는 적잖게 당황하며 모두 나가 시합에 참여하자고 권유했다. 수많은 고귀한 청년들이 앞다투어 시합에 참여했다. 달리기, 레슬링, 그리고 권투에서 승부가 겨루어졌다.
많은 사람들의 함성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는데, 알키노오스의 아들은 오딧세우스 역시 시합에 참여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오딧세우스는 슬픈 낯을 하고 ‘내 마음에 근심이 있으니 도저히 참여할 수가 없다’고 말하자 다른 청년이 나서며 그를 비난한다.
"하, 나그네여, 내가 보니 그대는 이 경기들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군. 그대는 오히려 장사치들의 우두머리로서 노 젓는 배를 타고 고향에서 싣고 가는 짐들에 정신이 팔렸거나, 아니면 그것으로 얻는 이득만 생각하는 그런 사람 같아 보이는구먼. 결코 당신은 이런 경기에 익숙하게 보이진 않아."
그 이야기에 오딧세우스는 말을 하는 대신 벌떡 일어나 원반을 던지는 것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었다. 그의 손에서 떠난 원반은 다른 누구의 것보다 더 멀리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 그것을 본 모두는 함성조차 지르지 못하고 입이 떡 벌어졌다. 이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알키노오스는 다시 나서 무용수들과 시인들을 불러 춤추고 노래하도록 했다.
시인들이 트로이 인들이 목마를 둘러싸고 회의를 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오딧세우스가 메날라오스와 함께 데이포보스의 집으로 가서 승리를 거두는 장면을 노래했다. 그 장면에 이르자 오딧세우스는 이제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더 서럽게 통곡했다.
마침내 알키노오스는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사람들은 이제 왜 그가 이토록 통곡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노래의 주인공, 오딧세우스는 자신이 트로이를 출발하며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오딧세우스와 일행들이 트로이 인들의 땅을 떠나 맨 처음 도착한 곳은 이스마로스였다. 그들은 트로이 연합군에 가담했던 키코네스족의 도시를 정복했고, 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달아났던 키코네스족은 다른 동료들을 데리고 다시 공격을 했다. 오딧세우스와 다른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도망을 쳤다. 이때 몇 명의 동료들을 잃어버렸다.
슬픈 마음으로 항해를 시작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세찬 사람이 불어와 돛대가 부러졌다. 어쩔 숲 없이 그들은 근처 해안에서 2일을 더 보냈다. 새 돛을 달고서야 그들은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쪽에 위치한 말레아 곶에 도착했다.
“아, 이제 곧 우리 집에 도착할 수 있겠지!“
곧 고향에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때 북풍이 불었다. 9일 동안 거센 바람 때문에 그저 떠내려갈 수 밖에 없었던 일행은 로토파고이족의 해안에 상륙했다. 세 사람을 뽑아 그곳을 정찰할 목적으로 보냈는데, 돌아온 그들이 좀 이상했다.
“아 싫어, 다 싫어요! 나는 여기 남을 거요!“
알고 보니 그들은 로토파고이족에게 로토스 열매를 얻어 먹은 것이다. 그 열매는 모두 잊고 그곳에 남아있고 싶은 나태한 마음을 주는 것이었다. ‘계속 이 나라에 머물겠다’며 버티는 동료들을 억지로 배까지 끌고 와서야 그들은 다시 출항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매우 비옥한 땅이었다. 저절로 곡식과 과일이 잘 자라는 그 땅은 바로 외눈 거인 키클롭스들의 땅이었다. 조금 떨어진 섬에서 오딧세우스와 일행들은 염소를 잡아 고기를 구워 먹고 키코네스족에게서 빼앗은 포도주를 마셨다. 술기운이 올라오자 오딧세우스는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자, 우리 다시 저 땅으로 돌아가 봅시다."
거대한 동굴 안에 들어가자 온갖 먹을 것으로 가득한 광경이 보였다. 광주리마다 치즈가 가득했고, 우리마다 새끼 양과 염소들의 소리가 들렸다. 전우들은 ‘이제 치즈와 가축들을 챙겨서 다시 배로 돌아갑시다’라며 간곡히 부탁했지만, 오딧세우스는 이 동굴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조금 지나자 그의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쿵쾅쿵쾅’
산이 울리는 듯한 거대한 소리와 함께 외눈 거인이 나타났다. 암양과 암염소 동굴로 데리고 들어온 거인은 이방인들을 발견하고 누구인지 물었다. 오딧세우스는 대답했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트로이를 함락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용사들이오. 신을 두려워하는 자라면 마땅히 우리를 보호해야 하겠지요."
그 이야기를 무시한 거인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전우 둘을 잡아 내동댕이쳤다.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그들은 거인의 입으로 들어갔다. ‘우적우적’ 고기가 되어 씹는 소리가 동굴 속에 가득했다. 피가 흐르는 입가를 대충 닦고 거인은 잠자리에 들었다.
“아아... 이게 무슨!”
오딧세우스는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저녁이 되자 키클롭스는 또 두 명을 잡아먹었다. 오딧세우스는 꾀를 내었다. 거인에게 독주를 권한 것이다.
"키클롭스(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외눈 거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제 이 포도주를 마셔보시오. 혹시나 나를 불쌍히 여겨 그대가 나를 고향으로 보내줄까 해서 가져온 것이지."
그것을 연거푸 들이킨 거인은 취기에 사로잡힌 듯 크게 웃었다. 그리고 한잔을 더 달라고 말하며 그의 이름을 물었다.
"어서 그것을 나에게 한 잔 더 따라 주어라. 그리고 네 이름을 밝혀라. 너에게 큰 선물을 주도록 할 테니까."
오딧세우스는 키클롭스에게 세 번이나 더 술을 권했다. 그렇지 않아도 독한 술을 마신 거인이 완전히 취해버리자, 그는 말했다.
"그대가 나의 이름을 물으니 나는 말하겠소. 나는 ‘아무도아니’입니다. 사람들 모두는 나를 그렇게 부르지요."
그러자 히죽히죽 웃으며 거인은 말했다.
" 맨 나중에 ‘아무도아니’를 먹겠다. 그것이 내가 줄 선물이다!"
그렇게 말하고 벌렁 나자빠진 거인은 굵은 목을 돌리고 누웠다. 아침이 오자 오딧세우스는 말뚝을 잿더미 속에 집어 넣었다. 아무도 몰라서지 않도록 전우들을 독려했다.
말뚝은 금세 불이 붙어 무섭게 달아올랐고, 남자와 전우들은 끝이 날카로운 말뚝을 움켜쥐고 하나 밖에 없는 거인의 눈에 밀어 넣었다. 말뚝 주위에서는 피가 흘러나왔고, 큰 소리로 끔찍하게 비명을 질렀다.
누가 뭐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오딧세우스와 일행은 짠 듯이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친구의 비명을 듣고 사방에서 모인 키클롭스들은 동굴 주위에 둘러서서 물었다.
"폴뤼페모스, 무엇이 그대를 괴롭히길래 이 밤에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지른단 말입니까?"
그러자 그는 대꾸했다.
"아, ‘아무도아니’요."
‘아무도 아니’라 니. 그 섬의 키클롭스들은 헛웃음을 치며 각자의 동굴로 다시 돌아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이 멀어버린 거인의 귀에 술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무도아니’의 목소리였다. 오딧세우스는 동료들과 거인의 동굴에서 약탈할 것들을 다 꺼낸 뒤 크게 소리쳤다.
"키클롭스여, 누가 그대의 눈이 먼 것에 관해 물어본다면, 말씀하시오. 그대의 눈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무도아니’가 아니라 이타케의 집에서 사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딧세우스라는 것을!"
차라리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폴뤼페모스는 사실 포세이돈의 아들이었거든. 그는 아버지에게 ‘오딧세우스의 귀향이 비참한 것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포세이돈이 집요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이 남자를 괴롭힌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그들은 아이올리에 섬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열두 자녀와 함께 아이올로스라는 남자가 살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오딧세우스를 돌보았고, 서풍을 보내 배가 이타케 쪽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라이스트뤼고네스의 땅을 지나 여신 키르케가 사는 아이아이 섬에 닿았다. 그녀는 메데이아의 아버지 아이에테스의 친누이였다.
"자, 한번 둘러볼까?"
셋째 날이 되어서야 오딧세우스는 동료들과 섬을 살피기 위해 배를 나섰다. 저기 멀리 키르케의 궁전에서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았다. 왠지 망설여졌다. 직접 가야 할지, 아니면 동료들을 보내서 알아보게 할 것인지 고민되었던 것이다.
"잘 다녀오시오. 그대들의 무사귀환을 빌겠소."
오딧세우스는 후자를 택했다. 동료들은 궁전까지 도착했고, 키르케는 문을 열어 주었다. 모두가 다 들어갔지만, 에우륄리코스는 뒤에 있던 탓에 몰래 지켜보기로 했다. ‘맘껏 드시라’는 그녀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 먹을 것에 약을 섞었거든.
음식을 먹고 고향 땅을 잊어버렸다. 키르케의 지팡이가 그들의 머리를 때리자, 사내들은 돼지가 되었다. 우리에 그들을 가두는 마녀를 보고 뒤에 남은 에우륄리코스는 대장에게 ‘동료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오딧세우스는 뭔가 이상했다. ‘같이 나서자’고 말했다. 부들부들 떨며 무서워하는 자를 남겨두고 오딧세우스는 혼자 궁전으로 갔다. 헤르메스가 그에게 나타났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다 말해주고, ‘몰뤼’라는 약을 주었다. 이 약을 먹으면 돼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왜 너는 돼지로 변하지 않는 거냐?"
음식을 모두 먹었지만, 변하지 않는 오딧세우스를 보고 키르케는 깜짝 놀랐다. 오딧세우스는 헤르메스가 일러준 대로 칼을 빼 들었다. 키르케는 결국 오딧세우스를 어떻게 하는데 실패했다.
"동료들을 다시 사람으로 되돌리고, 풀어주시오."
키르케는 바로 돼지우리로 가서 약을 발라 오딧세우스의 동료들을 다시 사람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1년 동안 잔치를 벌이고는 기력이 회복되자 그제야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나왔다.
‘이제 우리는 다시 떠나겠소’ 말하자 그녀는 얼마든지 떠나도 좋지만, 먼저 저승으로 가야 한다고 권유했다. 눈먼 예언자 테이레이시아스의 혼백에게 집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고 그대로 해야 무사히 귀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 정말 쉽지 않은 일이로구나..."
오딧세우스는 밀려오는 설움에 한참을 울고 나서야 진정하고 어떻게 하면 저승에 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 자 그리고 명심하세요. 테이레시아스의 말을 듣기 전에는 죽은 자들의 힘없는 머리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언자가 다가와 귀향에 대해 말해줄 거예요."
새벽의 여신이 새날을 가져다주자 오딧세우스는 키르케가 정해 준 다른 항로에 대해 말해주었다. 하데스와 무서운 페르세포네의 집으로 가서 테바이의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에게 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길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주저앉아 울며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숫양 한 마리와 검은 암양 한 마리씩을 실었다. 마녀가 알려준 대로 오케아노스의 경계로 향했다. 도착한 뒤 배를 두고 오케아노스의 경계까지 걸었다.
고대 그리스 인들의 세계에서 저승은 그리 넓지 않은 그 사람들의 세계 바깥에 바로 맞닿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데스는 마음만 먹는다면 산 자도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아내 에우리다케를 찾으러 갔던 오르페우스, 케르베로스를 끌고 가려던 헤라클레스는 그래서 저승에 내려갈 수 있었다.
어쨌든, 키르케가 알려준 것이 사실이라면, 오딧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테이레시아스를 만나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 사내는 동료들과 함께 아케론강의 첫 시작 지점에 이르렀다. 제물을 바치고 서약을 했다.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마침 제물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진다.
"앗, 저기...!"
키르케가 말했던 것처럼 죽은 자들의 혼백이 피 냄새를 맡고 좀비 떼처럼 몰려온다. 오늘 아침 죽은 엘페노르가 맨 먼저 나타나 자신의 장례를 부탁한다. 그리고 뒤 이어 테이레시아스가 오딧세우스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영광스러운 오딧세우스. 당신은 귀향을 바라고 있겠지만, 어떤 신은 당신에게 고된 길을 마련해두셨소. 그대는 포세이돈의 눈길에서 벗어나지 못 할 거요. 당신이 그분의 아들의 눈을 멀게 했으니 말이지. 그러나, 그대는 고생을 해도 고향으로 반드시 돌아갈 거요. 그대가 그대 자신과 전우들의 마음을 억제하고 참으면 말이지."
그리고 예언자는 이 방랑자가 집으로 귀향하는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을 것인지 소상하게 말해주었다. 저승에서 그는 많은 익숙한 얼굴들을 만나 이야기했다. 하지만, 긴 시간 그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반가웠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어느새 몰려온 죽은 자들이 고함을 치며 성을 냈기 때문이다.
"아, 이러다 고르곤 메두사의 머리라도 튀어나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겠다!"
오딧세우스는 동료들을 황급히 불러 다시 배에 올랐다. 여정은 오케아노스 강을 따라 계속되었다. 우선 다시 바다를 지나 아이아이에 섬에 가야 했다. 엘페노르와 한 약속 때문이었다. 시신을 가져와 바닷가에 묻었다.
"자, 잘 들으세요."
이제 한껏 부드러워진 키르케는 다시 돌아온 일행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거기를 지나가면 두 길이 있어요. 하나는 플랑크타이 바위들인데, 그곳을 무사히 지난 자들은 아르고 호에 탔던 사람들 밖엔 없었어요. 다른 쪽에도 물론 바위가 있어요. 한쪽 바위는 하늘에 닿아 있고, 중간에 동굴이 있어요. 거기 괴물 스퀼라가 살고 있죠. 또 다른 바위에는 카륍디스가 있어요. 이 괴물은 하루 세 번씩 물을 내뱉고 또 빨아들이죠."
"아니, 스퀼라를 피해 갈 방법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묻는 오딧세우스의 질문에 매몰차게 느껴질 만큼 급히 대답한다.
"아뇨, 그런 것은 없어요. 혹시 어물쩍 대다간 한 번 더 공격 받을 수 있으니 차라리 힘을 다해 빨리 지나가세요. 그곳을 지나가면, 명심해요. 헬리오스의 가축들이 풀을 뜯고 있을텐데, 그 녀석들에게 손을 대면 남은 것은 파멸 뿐입니다."
새벽이 오자 그들은 배를 타고 노를 저었다. 아르고 호가 지나온 바로 그 섬이 보였다. 세이렌들이 노래를 하기 전 선원들은 밀랍으로 귀를 막았다. 오딧세우스는 그렇게 하지 않고 손발을 묶은 뒤 돛대에 몸을 고정했다.
노랫소리가 들리자 오딧세우스는 자신을 풀어달라며 소리쳤지만, 귓구멍이 막힌 일행들은 그저 묵묵히 그를 더 굵은 밧줄로 묶었다. 드디어 세이렌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오딧세우스가 그 노래를 들은 마지막 남자가 되었는데, 자신들의 노래를 듣고도 꼼짝하지 않은 남자들을 보고 모욕감을 느낀 세이렌들이 그 길로 목숨을 다 끊었기 때문이다.
"자, 멈춰선 안된다! 더 빨리 노를 저어야 해!"
오딧세우스는 스퀼라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혹시 괴물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도 된다는 것을 알면 겁에 질려 노 젓는 것을 포기할까 싶어서였다. 그는 그저 바위 옆으로 바싹 붙어 파도를 통과하자고 말했다.
카륍디스의 무서운 소용돌이를 보며 지나가는데 스퀼라가 여섯 명의 사내를 낚아 허공에서 먹어 치웠다. 바로 그때 헬리오스의 소 떼와 양 떼들의 소리가 들렸다.
“예언자와 마녀가 이야기해준 것을 잊어선 안된다! 그냥 지나치자.”
하지만 에우륄리코스는 그를 반대하며 대꾸했다.
"아니, 그렇게 하기 싫소. 우리가 얼마나 지치고 피곤한지 모른단 말이오? 이대로 계속 항해를 하는 것은 미친 짓이야. 차라리 저 섬에서 저녁을 보내고 아침에 다시 항해를 시작합시다!"
오딧세우스는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고 있었지만, 모두의 찬성에 어쩔 수 없이 배를 멈추어야 했다. 다만, 한 가지만 약속하자고 말했다.
"자, 좋소. 그렇다면 한 가지만 약속해주길 부탁하겠소. 여러분은 어떤 소나 양도 죽이면 안됩니다. 키르케가 우리에게 준 음식이면 충분하지 않소? 모두 이 약속을 꼭 지켜주길..."
모두가 그 말에 동의했다. 아무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튿 날 그들은 떠날 수 없었다. 야속한 신이 폭풍을 보냈기 때문에 출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한 달 동안 시간을 보냈다. 키르케가 준 양식은 모두 떨어졌고, 물고기와 새를 잡아 허기를 면했다. 그때 너무 피곤한 오딧세우스는 신에게 기도하기 위해 산에 올랐는데, 깜빡 잠이 들었다.
"굶어 죽는 것보단 그게 낫지 않겠소?"
"옳습니다!"
그가 잠든 사이 에우륄리코스와 나머지 일행들은 헬리오스의 소들 중 가장 좋아 보이는 것들을 망설임 없이 잡았다. 굶어 죽느니 차라리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다. 오딧세우스는 고기 굽는 냄새에 잠을 깼다. ‘맛있겠다’는 생각보다는 아차 싶었으리라.
"뭐야, 아무 일도 없잖아?"
6일 동안 잔치를 벌였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신들을 조롱하며 하루가 더 지나고 바람이 멈추자 다시 바다로 나섰다. 그런데, 그때 마침 돌풍이 불고 벼락이 몰아쳤다. 마녀와 예언자가 거듭 말한대로였다.
모두 바다에서 죽고 오직 한 사람, 오딧세우스만 겨우 살아남았다. 바다에서 이리저리 떠다닌 지 10일째 되던 날 그는 오귀기에 섬에 도착했다. 거기서 그는 칼립소를 만났다.
당신이 알키노오스라면 혹시 ‘아, 이름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했을까? 그만큼 본 글의 이야기는 길고 길다. 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나 집에 갈 거야. 꼭 갈 거야’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는 궁금해진다. 정말 그의 집에는 발라놓은 꿀 냄새가 진동하는 것일까?
아니, 사실 꿀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는 끊임없이 ‘집으로, 집으로!’를 외쳤다. 왜 그랬을까? 사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우리 역시 똑같지 않나?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혹시 내가 없어 집이 무너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더라도. 우리 집에 달콤한 맛을 자랑하는 귀한 꿀이 없어도. 그곳을 떠나 온 우리는 끊임없이 집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오딧세우스다.
물론, 우리에게 키클롭스와 같은 괴물을 맞닥뜨리는 일은 없다. 하지만, 마치 한 개의 눈 밖에 없어 사물을 물론 벌어지는 일들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현실 감각이 지독하게 떨어지고, 판단력이 떨어지는 외눈박이 같은 사람들, 나를 몰라주고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다. 학창 시절 씨뿌리는 농부를 자처하던 교수일 수도 있고, 내가 밤새 작성한 기안서를 ‘이걸 일이라고 해왔냐’며 내동댕이치는 직장 상사일 수도 있다.
‘내 직장 동료들은 돼지로 변하지 않는데요?’ 이야기하는 당신에게 ‘언제나 그 사람들이 당신 마음 같던가요?’라고 물으면 뭐라고 답하실까? ‘우리는 한 몸이다’ 강조하며 공동체 정신을 되뇌지만, 모두가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은 동감할 것 같다. 그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별일이 다 일어난다.
결정을 내리는 권한이 있다면 고뇌는 더 심해진다. 마치 스퀼라와 카륍디스 사이에서 동료들을 잃을 것을 감수하고 그 사이를 뚫고 갈 결정을 내린 오딧세우스처럼 때로 우리는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삶은 고되고, 아프며, 피곤한 것이다. 살아있으면 그 모든 것을 오롯이 느끼며 뚫고 지나가야 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것.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죽어 왕이 된 아킬레우스가 살아서 하데스로 와 자신을 만난 오딧세우스에게 말하는 것을 잠시 읽어보자.
"세상을 떠난 모든 죽은 자들을 다스리느니 나는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뱅이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에게 ‘살아 있는 동안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죽어서는 죽은 자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통치자이니 그대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오딧세우스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대체 그는 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호메로스는 장렬히 죽은 전사의 입에서 왜 이런 말이 나오게 한 것일까?
호메로스의 두 작품,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서로 다른 것을 말해준다. 앞선 작품이 ‘죽을 운명조차 사랑하며 장렬히 죽음을 맞이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이 작품에서 말하는 것은 ‘일상으로의 복귀’ 즉,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온갖 고생을 하면서, 심지어는 여신의 ‘같이 살자’는 제안까지 뿌리치며 오딧세우스가 여정을 이어간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에게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 이 사람 뿐이겠는가? 우리에게는 각자 돌아갈 곳이 있다.
직장이나 학교, 동료들이나 상사에게 온갖 이야기를 듣고도 좌절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돌아갈 ‘나의 집’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구름 위의 황금 집이 아닐지도 모른다. 번쩍이는 송아지는 커녕, 달콤한 꿀 냄새조차 맡을 수 없는. 그런 작고 허름한 곳일지도 모른다.
상관없다. 집이 있다는 것,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인간은 여행을 해 왔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오뒷세이아‘는 이어질 것이다. 집, 결국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그곳에 꿀을 발라놓지 않았더라도 삶은, 일상으로의 복귀는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