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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Oct 09. 2020

‘냉장고에 넣어 충분히 차갑게 한 뒤 드십시오’

신중해서 나쁠 것 없잖아요



"와, 아니 우리나라는 4계절 아니었어? 이러다가 금방 겨울 되겠네!"



 반팔도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린 것이 며칠 전인 것 같은데, 추석이 지나더니 이제 반팔은 ‘내년까지 안녕’을 고해야 할 날씨다. 한낮에 덥지 않은 것은 둘째 치고, 아침과 밤에 나가려고 치면 입에서 입김까지 나오는 것을 보고 새삼 '우리나라는 이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니라 봄 여어어어어어어름 갈! 겨어어어어어어어어울'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말하자면, 이제 퇴근길 3000원 정도는 주머니 속에 찔러 넣고 다녀봄 직한 계절이 온 것이다.



 "찹쌀떠억! 메밀묵!" 말하는 그 아저씨는 없어도 이제 길가에는 늦은 퇴근길 볼 수 있는 붕어빵 가게가 줄 설 때가 곧 온다. '천 원에 몇 마리에요?' 물어보면서 아저씨와 밀당을 해야 한다. 팥이든, 슈크림이든, 아니면 뭐 다른 것이 들어가든 ‘얼마나 들어가나’ 슬쩍 보고 눈치게임을 한 뒤에 ‘2천 원어치 주세요’ 말하고 ‘갈색’이라고 표현하기에 조금 애매한 그 갈색 대봉투에 담긴 퍼덕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따뜻한 녀석들을 집어 들면, 그때부터가 진짜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아이 씨, 다 식었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곧장 집으로 가야 한다. 뭐, 이것도 취향이라면 취향이겠지만, 나는 식은 붕어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막 구워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꼬리든 머리든 아니면 몸통이든 내 맘대로 베어 물면 ‘아 뜨뜨!‘ 입으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소리를 뱉을 수밖에 없는 그런, 붕어빵의 따스함과 뜨거움 그 어딘가의 온도를 참 좋아한다. 글쎄, 다 식어서 말라붙은 붕어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커피랑 사랑의 공통점이 뭔지 아냐?"



 과외를 못 구해서 어쩔 수 없이 ‘커피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지원한 카페 알바를 하던 시절, 내 사수는 처음 본 날 그렇게 물었다. 별생각 없이 ‘모르겠는데요’ 말하자 그는 생각할 시간을 더 주지 않고 정답을 말해버렸다. ‘식으면 버려진다’는 것.



 스무 번은 교체할 수 있을 것처럼 우리는 입천장을 혹사시켰다. 그만큼 따뜻한 것을 넘어 뜨거운 것들을 많이 베어 물고, 또 후루룩 목 너머로 넘겼다. 그런데, 당신은 아는지? 사실 뜨거운 음식만큼 차가운 것들도 우리 입에 많이 담기고, 씹혔다는 사실을.




콜라가 따뜻하다면?




 사시사철 우리 목을 시원하게, 아니 따갑게 해주는 그 청량한 탄산음료가 시리도록 차가운 대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음료라면 어떨까? 조상님들 때부터 겨울에 덜덜 떨면서 먹었다던 냉면이 라면처럼 호호 불어서 먹어야 할 음식이라면?



 그러고 보면 생각보다 차게 먹는 일, 뜨거운 것을 식혀 먹는 일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일이다. 그래, 계속해서 소개할 오딧세우스의 이야기 안에서 ‘차게 식혀서 먹어야 할 무언가’가 등장하기 때문에 꺼낸 말이다.





이로스와 주먹다짐을 하다





 이튿날이 되자 텔레마코스는 돼지치기에게 나그네를 시내로 데려다주라고 말했다.



 "자, 나는 이제 어머니를 뵈러 시내로 갈 것이오. 부탁하건대, 그대는 이 불운한 나그네를 시내로 데려다주시오. 거기에서 먹을 것을 구걸할 수 있도록 말이죠. 누구나 마음이 내키는 자가 그에게 빵 한 조각과 물 한 잔을 주겠죠. 나는 마음이 너무나 힘들어 찾아오는 이들을 모두 맞이 할 수 없습니다."



 그때 오딧세우스는 이런 말로 대꾸했다.



 "이보시오! 나라고 여기 머물고 싶은 줄 아시오? 차라리 시내에서 구걸하는 편이 나을 거요."



 텔레마코스는 농장을 지나 걸어갔다. 뱃길에 동행했던 페이라이오스와 예언자 테오클뤼메노스를 집으로 데려가 함께 목욕하고 식사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퓔로스와 스파르테에서 무엇을 들었는지에 대해 말하자, 페넬로페의 마음은 크게 요동쳤다. 특히 요정 칼립소의 궁전에 붙들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듣자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아아, 걱정 마시오 여인이여. 그는 벌써 고향 땅을 밟았습니다. 악행들 모두를 그가 곧 응징할 것이니 말이오!"



 테오클뤼메노스의 예언을 듣자 페넬로페는 안심할 수 있었다. 곧 남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가슴이 뛰었다. 한편, 오딧세우스와 돼지치기는 점심때가 가까워지자 시내로 나섰다. 일꾼들의 우두머리인 돼지치기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그네여, 보아하니 그대는 정말 오늘 중으로 시내에 들어가기를 열망하는 것 같군요. 사실 나는 그대가 여기 남아있으면 좋겠지만, 주인님이 나를 야단칠까 두렵군요. 자, 어서 내려갑시다."



 오딧세우스가 답했다.



 "자, 갑시다. 끝까지 길을 잘 안내해주시오. 혹시 다듬어놓은 몽둥이가 있다면 내가 의지할 수 있도록 하나 부탁해도 되겠소? 길이 미끄럽다고 하니 말이오."




저기 염소를 치는 멜란티오스가 보이는데...



 그들은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 도시 가까이 다가갔다. 거기 아름답게 흐르는 샘물가가 있었는데, 거기서 염소치기를 만났다. 구혼자들의 잔치에 쓸 염소를 돌보는 중이었다. 그는 둘을 보더니 험하고 수치스러운 말들로 욕설을 했다.



 "이 재수 없는 돼지치기야, 자네는 이 성가신 거지를 어디로 데려가는 중인가? 이자는 수많은 기둥에 기대서서는 어깨를 문지르며 칼이나 가마솥이 아니라 음식 찌꺼기나 구걸하겠지. 이자가 신과 같은 오딧세우스의 집에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나리들이 이자를 집안에서 몰아낼 때 나리들의 손아귀에서 수많은 발판들이 이자의 머리 주위로 날아가 이자의 갈빗대를 짓이겨놓을 거야."



 그러고 나서 그는 오딧세우스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다. 물론, 길에서 밀어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오딧세우스는 꿈쩍 않고 버티고 선 채 그자를 뒤쫓아가 몽둥이로 목숨을 빼앗을지, 아니면 그자를 번쩍 들어 올려 땅바닥에 메다꽂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딧세우스는 잘 참고 절제했다. 물론, 돼지치기는 그자를 노려보며 꾸짖고 두 손을 들어 큰 소리로 기도했다.



 "샘의 요정들이여, 내 소원을 들어주시어 주인님께서 돌아오시고 어떤 신이 그분을 데려다주시길! 그러면 사악한 목자들이 작은 가축들을 도륙하고 있는데도 언제나 도시를 어슬렁 거리며 오만하게 거드름을 피우는 자네의 그 잘난 척하는 짓거리를 그분께서 중단시키실 텐데!"



 그러자 염소치기 멜란티오스가 그에게 대꾸했다.



 "아아, 저 개 같은 자가 또 뭐라고 하는 것인가? 저자가 내게 많은 살림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나는 언젠가 저자를 검은 배에 실어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려갈 거야. 텔레마코스가 혹시 궁전에서 아폴론의 화살에 죽거나 구혼자들에게 흠씬 맞으면 좋을 텐데!"



 그 이야기를 들은 오딧세우스는 마음으로 살생부를 기록하고 있었다. 어젯밤 그는 아들에게 말했다. '누가 우리 두 사람을 맘으로 존중하고 두려워하는지, 누가 우리를 무시하고 너 같이 고귀한 자를 업신여기는지 시험해 볼 수 있겠구나.'



어휴 진짜 힘들다.



 둘은 오딧세우스의 집 앞까지 도착했다. 그때 오딧세우스의 개 아르고스가 그를 알아보고 꼬리 치며 두 귀를 내렸다. 지금 이 개는 주인이 와 있음을 알아차리고 꼬리를 쳤지만, 주인에게 더 가까이 갈 힘이 없었다. 그만큼 늙었던 것이다.



 "에우마이오스여, 이런 개가 여기 이렇게 누워 있다니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아, 정말 잘생긴 개로군요."



 그 말을 마치고 돼지치기가 오딧세우스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자 주인을 정말 오랜만에 본 개는 힘차게 꼬리를 흔드는 일을 마치고 죽음을 맞이했다.



 "저리 꺼져, 이 거지새끼야!"




 오딧세우스는 집안으로 들어가 누가 있는지를 살폈다. 누가 올바르고, 누가 무례한 자인지 알기 위해 일일이 구걸했는데, 모두가 별말 없이 그에게 빵을 주었다. 하지만, 한 사람 안티노오스는 예외였다.




 그는 거침없이 오딧세우스를 모욕하고, 발판을 집어던졌다. 구혼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그렇게까지 해야겠냐'며 말했고, 그 소리를 다 들은 페넬로페 역시 신의 재앙이 안티노오스에게 내리길 빌었다.



 페넬로페는 아까부터 나그네에게 남편의 소식을 물어보고 싶었다. 돼지치기는 그것을 눈치채고, 그가 말하기 전에 먼저 ‘오딧세우스는 가까운 곳에 살아 있고, 곧 집에 돌아올 채비를 끝내고 나타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돼지치기는 그 말을 다 믿지는 않았다. 한편, 오딧세우스는 돼지치기가 데리러 오자 구혼자들이 두렵다며 핑계를 댔다.



 "내일 올 때 제물로 바칠 훌륭한 짐승을 몰고 오는 것을 있지 말게."



 텔레마코스는 돼지치기에게 제물로 쓸 짐승을 부탁하고는 그를 돌려보냈다.

 

 "야, 넌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이냐?"



 오딧세우스가 구혼자들 사이에서 복수의 순간을 노리며 감정을 삭이고 있는 그 순간 이타케를 걸어 다니며 구걸하던 거지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이로스였는데, 갑자기 나타난 사업 경쟁 상대를 심하게 경쟁하는 듯 오딧세우스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그것을 보고서는 구혼자들도 싸움을 부추겼다. 박수를 치고 ‘어서 싸우라’며 소리를 쳤다. 오딧세우스는 아주 교묘했다. 그를 그저 가볍게 쳤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거지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도 구혼자들의 흥을 돋웠다. 복수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행동을 잘 통제할 수 있었다.


그래,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긴 하지...




페넬로페,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다




 한편, 남편의 행방을 모르던 페넬로페는 짐작도 하지 못하고 불쑥 구혼자들 앞에 나섰다. ‘신부의 친척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마땅한 것 아니겠냐’며 그들의 구혼을 받아줄 것처럼 말했다.




 구혼자들은 앞 다투어 선물을 가져왔다. 거기까지는 뭐 그럴 수 있었다. 선물을 잔뜩 가져와서는 오딧세우스를 조롱하는 것을 그치지 않는 구혼자들을 본 텔레마코스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닥치시오!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는 것 모르시오?"



 그는 굵은 몽둥이를 가져오더니 크게 휘두르며 구혼자들을 모두 내쫓았다. 너무 심하다 싶었을 수도 있지만, 아버지와 조용히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꽁무니를 빼고 사라지자 오딧세우스는 그제야 전날 밤 계획한 대로 홀에 있던 무기들 모두를 치워버렸다.



 "아들아. 내가 무슨 모욕을 당하더라도 최대한 참고 상냥한 말로 타이르거라. 홀에 있는 무기들 모두를 모두 집 맨 안쪽으로 치워두거라, 마지막으로, 누구에게도 내가 돌아왔다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이 세 가지를 미리 부탁한 것은 구혼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텔레마코스가 방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는 한참 동안 홀에 머물렀다. 하녀들과 페넬로페를 좀 더 떠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때 방 안에서 페넬로페가 하녀들과 나왔다. 그녀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고 의자를 권하여 마주 앉아 ‘어디에서 온 누구냐’고 물었다.



남편과 마주 앉았지만 노인으로 변한 오딧세우스를 알아보지 못하는 페넬로페.




 "그것만큼은 묻지 말아 주시오. 그것은 나에게 고통만 더해줄 뿐이오."



 차마 부인에게까지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오딧세우스는 대답을 거부했다. 그러자 페넬로페는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 나는 시아버지 라에르테스를 위해 수의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만 3년 동안이나 결혼을 미뤄왔어요. 낮에 짠 수의는 밤새 풀어놓았으니 지금껏 수의는 다 만들어지지 않았죠. 하지만, 4년째 되던 해 하녀 중 한 사람이 이 사실을 구혼자들에게 일러바쳤어요. 이제 결혼은 피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러니 말해주세요. 당신은 어디서 온 사람인가요?"



 그러자 그는 마지못해 자신은 크레테 사람 아이톤이며, 트로이 인들의 땅으로 향하던 오딧세우스를 크레테에서 만났다고 이야기를 꾸며댔다. 페넬로페는 남편의 옷, 그리고 그의 동료들에 대한 증언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그리운 마음이 복받쳤다. 또 슬프게 울었다.



 "남편은 무사해요. 곧 보물들을 싣고 집에 도착할 겁니다."



 “아뇨, 그럴 일은 없어요.“



 아내는 남편이 오지 않을 거라 단언하고 나그네를 잘 돌보아주라고 명령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노파 에우뤼클레이아는 오딧세우스의 발을 씻어주기 위해 가까이 갔다.




 그의 무릎에 있는 흉터를 보자 노파는 흠칫했다. 오딧세우스가 어렸을 적 멧돼지 때문에 다쳤던 일로 생긴 흉터였다. 그녀는 오딧세우스의 유모였고, 그녀는 흉터를 보자 이 노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에우뤼클레이아는 흉터를 보고 노인의 정체를 알아챘다.




 “말하지 마시오. 절대.“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자기에게 속삭이는 이 거지가 사실은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페넬로페는 아무것도 모르고 오딧세우스에게 ‘내가 집을 지켜야 할지 아니면 구혼자들 중 가장 훌륭한 이를 따라 떠나야 할지’를 물었다.



 “사실 얼마 전에 꿈을 꾸었어요. 독수리가 날아와 집에서 키우는 거위 스무 마리를 죽이더군요!“



 오딧세우스는 독수리가 자신임을 눈치챘지만, ‘구혼자들이 곧 죽을 운명인가 봅니다’라고만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조언해주었다. ‘날이 밝으면 구혼자들에게 화살로 열두 개의 도끼를 꿰뚫게 하라‘고.




 성공하는 사람을 따라 이 집을 떠나면 되지 않겠느냐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침실로 돌아갔지만, 남편의 소식이 자꾸 귀에 맴돌아 울면서 늦게 잠이 들었다.



 잠이 들오지 않는 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구혼자들과 어울리던 여인들의 소리, 페넬로페가 잠 못 들고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이 오자 잔치에 쓸 가축을 몰고 일꾼들이 마당으로 들어왔다.




 에우뤼클레이아도 서둘러 하녀들에게 잔치를 준비시켰다. 그녀는 이미 오딧세우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잘 이뤄지기를 내심 바랐다.




 “야, 이 거지새끼야. 아직도 여기 있냐? 꺼져, 꺼지라고!“



 구혼자들은 자신들에게 곧 닥칠 운명을 알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오딧세우스를 모욕했다. 테오클뤼메노스는 ‘현관과 안마당이 저승으로 들어갈 죽은 자들의 그림자로 가득 찼다’며 이야기했지만, ‘죽을 자는 여기 이 거지 아니냐’며 비웃었다. 그렇게 사악한 자들을 위해 준비된 만찬은 점점 무르익어 갔다.




 급한 성격이라면 오딧세우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을 몇 번 치거나, 혹은 책상에 주먹을 날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어딘가 모르게 오딧세우스는 ‘과한 침착’을 보여준다.



 ‘뭐 하는 거야?‘ ‘빨리 본때를 보여줘야지!‘ ‘날려, 날리라고!‘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은 ‘고구마 백개를 먹었다’며 사이다를 찾으실까? 글쎄, 어딘가에서 그랬다지. ‘복수는 차갑게 식혀서 먹을 때가 가장 맛있는 음식과도 같다’고.


ㅎ... 흔들진 마시고...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한 뒤 드십시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이타케에 도착했다. 아들을 부둥켜안고, 사랑스러운 아내를 만나야 한다. 하지만, 오딧세우스의 이야기는 그렇게 바로 전개되지 않는다.




 적어도 아버지를 몰라보는 아들과 만나는 장면은 빠르게 제시되지만, 남편은 아내를 만나고도 고된 기다림을 녹여주는 키스는 둘째치고 ‘얼마나 고생 많았소’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한다. 왜 그럴까?



 물론, 다른 옛날이야기들처럼 오딧세우스의 노래 역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날지 모르겠지만, ‘행복한 결말’을 맺기 위해 그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아군과 적을 제대로 구별해야 한다. 어쩌면 이 일을 위해서 여신은 왕을 거지로 바꾸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이타케의 왕 오딧세우스’가 아니라 그저 ‘인간’으로서 그를 환대하고 따뜻한 음식 하나 내어줄 사람이 누구인지 제대로 볼 수 있도록 그는 가장 먼저 왕의 옷을 벗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고 나니 사랑하는 이들만큼 분노의 화살이 향해야 할 자들이 또렷하게 보인다. 욕지거리는 물론, 엉덩이를 걷어 찬 저 염소치기는 물론, 사랑하는 아내에게 껄떡댔을 뿐 아니라, 거지 이로스와 불필요한 주먹다짐을 하게 만든 구혼자들, 그리고 그중에 모욕을 서슴지 않았던 안티노오스는 ‘해피엔딩’을 위해 반드시 치워야 할 대상이었다.



 왜 천불이 나지 않았으랴? 왜 단순에 칼을 뽑고 활을 들어 그들을 꿰뚫어버리고 싶지 않았으랴. 그러나, 그는 인내했다. 그의 불타오르는 복수를 냉장고에 넣고 식혔다. 먹기 좋게 잘 식어 시원해질 때까지 그것을 조용히 그냥 두었다.




 뭐 어디 복수심뿐이겠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무언가 시작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위해 가만히 지켜보고, 식혀두어야 하는 때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진정하고 침착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가 있다.



 일을 시작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것을 잘 마치기는 쉽지않다. 좋은 마무리를 위해 활화산 뿜듯 바로 실행하는 것 말고, 가만히 두어 식히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순간의 감정이나 결단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그것을 가만히 식히며 재고하는 일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아는 누군가가 ‘저녁에는 의자를 사지 말아라’는 말을 퍼뜨린 것이 아닐까? 아, 의자 판매를 하시는 분들에게 악감정은 없다. 다만, 무엇이든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복수를 열망하며 충분히 그것을 식히고 식혀 단숨에 해낸 어떤 남자처럼 말이다.



 그러니 혹시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한다면, 무엇을 결단하고 움직여야 한다면 조금만 더 늦춰라. 아직 뜨겁다. 충분히 식혀야 한다. 냉장고에 당장 그것을 넣고 5분만, 5분만 더 기다려봐라.




 더 생각하고, 고민해라. 그리고 충분히 그것을 식혔다 싶으면 바로 그때 후루룩 마셔도 맛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래, 모든 것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어떤 것은 ‘냉장고에 넣어 충분히 식힌 뒤 차게 해서 드십시오’라는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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