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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Oct 15. 2020

‘캡틴을 자유롭게 해주세요’

영웅이 체제 선전의 간판이 될 때

 



 “그래서 흥부와 놀부는요..."



 한참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할 때였는데, 갑자기 뚝 끊겼다. 유치원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때 선생님들은 한 달에 한 번쯤 무엇이든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여주시거나, 들려주셨다. 한번은 전혀 보지 못한 것들을 잔뜩 들고 오셨다.



 꼭두각시 인형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보이지 않는 줄을 이용해서 인형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로봇이 합체하고 변신하는 그런 비디오보다 그 인형극은 아이들을 홀렸다. 그때까진 그랬다. 줄이 뚝 끊기고 흥부 인형이 고꾸라졌을 때 몰입은 깨졌다.



 "그래 뭐, 인형이 다 그렇지. 무슨 토이 스토리도 아니고."



 한참 뒤 버즈와 우디가 나오는 그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다시 인형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어쩌면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읽는 영웅 이야기는 가끔 소름 돋는다.




 어쩌면 이 이야기들이 다 누구의 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들의 동화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 어쩌면 영웅의 이야기 밑에 누군가의 분명한 의도가 깔린 것은 아닐까?



영웅 이야기는 가끔 소름이 돋는다. 꼭두각시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샤라타가 아들을 구하다




 인도 북동쪽 코살라 왕국의 수도 아요디아에는 다샤라타 왕이 살았다. 남 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에게도 근심거리가 있었으니, 바로 뒤를 이을 자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근심하는 왕에게 신하 수만트라는 성인 리쉬야슈링가를 모셔 신에게 제사를 지낼 것을 권했다. 3-5월 즉 봄에 해당하는 바산타의 계절이 되자 왕은 리쉬야슈링가로 하여금 희생제인 이슈바메다를 진행하라고 말했다.



 "오, 신들이시여. 여기 정성껏 희생제물을 바치는 왕에게 아들을 주소서!"



리쉬야슈링가는 마지막에 아들을 구하는 제사, 푸트라카마 야즈나를 잊지 않았다. 한편, 데바(인도 신화에서 천신들을 부르는 호칭)들은 ‘라바나 때문에 못 살겠다’며 창조주 브라흐마를 찾아갔다.




 라바나는 마왕이었지만, 용기와 힘이 뛰어났고, 지극한 고행을 했기 때문에 브라흐마는 그에게 은총을 내렸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제외한 존재에게는 절대 죽지 않는 권능을 창조주로부터 받았다. 때문에 데바들은 그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골머리만 썩고 있었던 차였다.



고행을 하며 자기 머리를 브라흐마에게 바치는 라바나.



 "나도 한번 내린 권능은 취소할 수가 없네..."



 브라흐마도 라바나가 락샤샤(악신들)과 함께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리 창조주라도 한번 한 것은 취소할 수 없었기에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는데 최고신 나라야나(비슈누의 다른 이름)가 나타났다.



 "아, 위대하신 나라야나! 당신이 인간으로 가셔서 라바나를 없애주십시오!"



 브라흐마와 나머지 데바들이 간청했다. 그러자 나라야나는 이미 스스로 인간이 되어 라바나를 벌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여러 신들은 원숭이로 태어났다가 때가 되면 자기를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제야 데바들은 라바나가 받은 권능이 데바의 손이 아니라면 소용 없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



 "자, 이 영약을 왕비님들이 드시면 아들을 낳게 되실 겁니다."



 아들을 간절히 바라는 제사가 거의 끝나갈 때 쯤이었다. 갑자기 어떤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브라흐마의 심부름꾼이었는데, 다샤라타 왕에게 영약을 주고는 사라졌다.




 왕에게는 카우살리야, 수미트라, 카이케이라는 세 왕비가 있었다. 가장 연장자인 카우살리야에게 약의 절반을, 나머지 절반을 수미트라와 카이케이에게 주었는데, 그렇게 하고도 남은 것이 있어 다시 수미트라에게 주었다.




 "응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모두가 아들을 낳았다. 카우살리야가 낳은 아이를 라마, 카이케이의 아들을 바라타, 그리고 수미트라가 낳은 쌍둥이를 락슈마나와 사트루그나라고 이름 지었다.


 라마, 여행을 떠나다


 어느 날이었다. 고행 성자 비슈바미트가 왕궁을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제사를 할 때마다 방해하는 두 락샤샤(악귀)가 있는데, 그것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한다. 그러자 왕은 흔쾌히 협조한다. 하지만, 금세 왕의 마음은 바뀐다.



 "이 일을 위해 첫째 왕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장남인 라마를 데려가려고 하자 왕은 표정부터 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성자를 방해하는 두 락샤샤는 바로 마왕 라바나의 부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왕은 떼를 쓰며 번복했다.



 "아니, 차라리 내가 가겠소! 왕자는 절대 안 돼!"



 그러자 비슈바미트는 딴 소리를 하는 왕에게 노하여 꾸짖었다. ‘어떻게 감히 왕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인도의 신분제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사제계급인 브라만은 통치계급인 크샤트리아보다 위에 있다. 인도 특유의 신분제가 잘 반영된 장면이다.



 “고행자를 돕는 것은 크샤트리아의 다르마(의무)입니다! 왕이시여, 고행 성자의 부탁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궁정 신하 중 한 사람이었던 바시슈타가 왕을 설득하자 그는 비슈바미트에게 용서를 빌고 라마와 락슈마나까지 고행 성자를 따라 길을 나선다.




 그는 자신을 따라온 왕자들에게 여러 주문과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새 그들은 카마슈라마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환대를 받으며 하루를 묵었다.

산처럼 거대한 마귀 타타카도 물리치고...



 다음날 그들은 산처럼 거대한 마귀 타타카를 물리쳤다. 비슈바미트는 두 왕자에게 아스트라, 곧 신들의 힘이 실린 무기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어느덧 이웃 나라 비데하 왕국까지 도착했는데, 거기서 아름다운 공주 시타를 만나게 된다. 라마는 자기도 모르게 시타를 보고 넋이 나갔는데, 그 광경을 본 저잣거리의 상인 한명이 말했다.



 "어이, 자네. 우리 공주님의 미모에 완전히 반한 모양이야? 하긴, 시타 공주님이라면 그럴 만 하지. 하지만, 시바의 화살에 시위를 거는 자가 아니라면 그녀와 혼인할 수 없지. 이웃 나라의 왕자들이 벌써 많이들 시도했다가 다들 실패해서 돌아갔지."



 모두가 놀랐다. 그 누구도 성공할 수 없었던 활시위를 거는 것을 라마가 성공했기 때문이다. 워낙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제 공주를 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실망감 때문이었을까? 아무도 어떤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시타는 라마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숲으로의 추방




 "부부의 다르마를 지키십시오."



 고행 성자의 말에 따라 둘은 함께 코살라 왕국의 수도 아요디아로 다시 돌아갔다. 비로소 짝을 만난 왕자에게 세자 책봉이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시녀 만타라는 둘째 왕비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라마가 왕이 되면 안됩니다. 그러면 왕비님의 친아들 바라타가 위험해질지 몰라요!"



 그 말을 들은 카이케이 왕비는 이전에 왕의 목숨을 구한 대가를 들어서 라마의 추방을 요구한다.



 "왕이여, 당신께서 전에 인드라의 초청으로 싸움에 나가셨다가 중상을 입으셨지요. 그때 제가 지극히 당신을 돌보신 것을 아직 기억하시지요?"



 그 말을 듣자 왕은 두 가지 소원을 말하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카이케이 왕비는 두 가지 소원을 그 자리에서 다 말했는데, 하나는 바라타를 왕위에 앉히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라마를 숲으로 추방하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다샤라타 왕은 뱀에게 물린 개구리처럼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약속한 것을 어찌하랴? 결국 일은 카이케이 왕비의 뜻대로 되었다. 카이케이가 라마에게 냉정한 말투로 자초지종을 말하자 그 이야기를 다 들은 라마가 말했다.



 "제 사랑하는 동생 바라타가 세자로 책봉된다는 사실은 반가운 소식입니다. 아, 그리고 제가 숲으로 가야 한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동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참 다행이지요."



 카이케이는 당장 저주받은 단다카 숲으로 떠나라며 매정하게 독촉을 했다. 다르마가 무엇인지를 잘 아는 라마는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의 뜻대로 따르겠다’고. 한편, 그 소식을 들은 락슈마나는 분노를 터뜨리며 카이케이 왕비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형은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들의 다르마다."



 어머니의 눈물로도, 동생의 분노에도 라마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따르는 것이 도리였기에 한번 정한 것을 돌이킬 순 없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운명이란다. 락슈마나야, 분노에 지면 안된다.. 폭력은 악이다. 네가 진짜 나를 따른다면 나를 숲으로 가도록 두어라. 그리고, 어머니. 나를 축복해주십시오. 내 결심과 순종이 좋은 결과를 얻도록 도와주십시오."



 결국 카우살리야는 라마의 이마에 틸리카(이마에 그리는 표식)를 놓고 라크샤(부적)을 묶어주고 포옹을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따듯한 한마디를 건넸다.



이 남자의 이마에 찍힌 붉은 표식이 틸리카. 갑작스런 위험에서 지켜준다고 믿었다.




 “가거라, 그리고 다시 나에게 돌아오너라. 네가 다시 아요드하의 거리를 걷게 될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마.”



 그리고 라마는 자신의 거처로 갔다. 시타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시타는 남편을 따르는 것이 아내의 다르마이니, 자신도 라마를 따라 숲으로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아무리 화려한 궁정에서 잘 먹고 잘살아도 당신이 없으면 지옥입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어디를 가더라도 그곳이 나의 낙원입니다."



 그 말에 라마도 진심을 털어놓는다. 자신도 내심 시타가 함께 해주길 바라고 있었다고. 그리고 라마와 시타는 자신들이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과 시녀와 하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락슈마나는 고심한 끝에 자신도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뜻을 굽히지 않자, 결국 라마는 락슈마나와 함께 하기로 했다.



 "저희는 이제 물러갑니다. 부디 건강히 지내십시오."



 라마와 시타, 락슈마나가 다샤라타 왕에게 인사를 올렸다. 왕에게 마지막으로 삽 한 자루와 바구니 하나만 달라고 청했지만, 그때 카이케이는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며 떼를 썼다. 거기에 그녀는 세 벌의 누더기를 입게 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왕은 그 약속은 라마에게만 해당한다며 시타에게 고운 옷을 입히고 많은 보물을 챙겨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샤라타 왕은 어느 한 아들도 곁에 없을 때 홀로 숨을 거두었다. 온 왕국이 슬픔에 빠지고, 결국 카이케이 왕비의 뜻대로 삼남 바라타가 왕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니, 어머니! 왜 다르마를 지키지 않으셨습니까?"



 바라타는 황급히 숲속에 사는 형 라마를 찾아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그의 결심이 누그러든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완고한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큰 형은 셋째에게 ‘왕의 다르마를 잘 지키고 있으면 14년 후에 돌아가 네가 권하는 대로 왕위에 오르겠다’고 약속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바라타는 말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형님의 신발을 주십시오."



 그거야 별로 어렵지 않다는 듯 쉽게 발에서 신발을 벗어 동생에게 쥐여주었다. 환하게 웃으며 형에게 인사를 한 셋째 동생은 머리에 받은 신발을 이고는 아요디아로 돌아왔다.



  이후 바라타는 왕이 되었지만, 절대 왕좌에 앉지 않았다. 다만 왕좌 아래에 형의 신발을 두었을 뿐이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묻는 신하들의 질문에 "이것이 동생의 다르마다." 말할 뿐이었다.


다르마 밖에 모르는 바보...




마왕의 여동생이 라마를 유혹하다




 한편, 라마 일행은 악귀를 물리치며 여행을 계속해나갔다. 어느 날 우연히 라마의 모습을 한 락샤시(여자 악귀)가 보고 늠름한 모습에 반했다. 그 락샤시는 마왕 라바나의 여동생 카마발리였다. 그녀는 라마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말을 걸었다. 라마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정중하게 그녀가 누구인지 물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내가 당신을 받아들이기로 하겠어요. 당신을 나의 남편으로 모시겠다는 겁니다. 라마, 당신처럼 멋진 남자에게는 나처럼 가문 좋고 용감한 여자가 딱이랍니다. 시타는 생긴 것도 별로고..."



 그 이야기를 듣던 라마는 그만 웃고 말았다.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한 카마발리는 결론을 내려버린다.



 "좋아요, 내게 오지 못하는 것이 그 잘난 마누라나 동생 때문이라면 내가 간단히 도와드릴 수 있어요. 시타와 당신의 동생을 내가 잡아먹으면 그만이죠!"



 그리고 달려드는 카마발리를 보고 화가 난 락슈마나는 그녀의 코와 귀를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 울며 피투성이가 되어 달려온 여동생을 본 카라는 열 넷의 락샤샤들을 보냈지만, 라마의 화살에 모두 쓰러져 버렸다. 겨우 생명을 구한 아캄파나라는 악귀가 멀리 랑카까지 가서 라바나를 만나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보고했다.

카마발리의 코와 귀를 자르는 락슈마나.




 이야기를 들은 라바나는 노란 색 탁발승의 모습을 하고 라마의 거처로 향했다. 라마를 슬픔에 빠지게 하기 위해 시타를 납치할 생각이었다. 일단 시타의 미모를 본 그는 깜짝 놀라 당장 시타를 어떻게 해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점잖게 물었다.



 "이리 위험한 숲속에서 여인 혼자 있다니,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까?"



 시타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며 라마와 함께 있기 때문에 조금의 불만이나 불평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라바나는 자기가 라마보다 얼마나 위대한지를 말한다.



 "자, 삼계에 이름 높은 라바나를 들어보았지요? 그게 바로 나요! 하찮은 인간 라마는 버리고 나에게 오시오.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궁이 있소. 거기에 있는 후궁들 모두가 당신의 시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시타는 크게 노하며 그를 꾸짖었다. 그 모습을 본 라바나는 말로 회유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강제로 시타를 잡아 랑카까지 도착했다. 랑카에 도착한 라바나는 계속해서 시타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녀는 완고했다. 라바나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래, 이제 내가 1년을 줄 터이니 내 아내가 되던지, 아니면 잡아 먹히던지 둘 중의 하나 알아서 고르시오!"



원숭이 장군의 활약



 한편 잠시 거처에서 떠났던 라마와 락슈마나는 다시 돌아왔을 때 시타가 없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특히 라마는 거의 반미치광이가 되어 소리를 질렀다. 바로 이때 원숭이 나라의 장군 하누만이 등장한다. 그는 구름을 타고 다니는 원숭이였는데, 구름을 불러 라마와 락슈마나를 태워서 원숭이의 왕 수그리바에게 데리고 갔다.



 "왕이여, 마왕 라바나가 나의 아내를 납치해 랑카로 갔다고 합니다! 내가 아내를 되찾아 올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눈물까지 흘리는 라마의 모습을 보고 수그리바는 흔쾌히 그를 돕기로 한다. 한편, 하누만은 시타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랑카까지 날아갔는데, 거기 시타가 다행히도 잘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한다.



 "네 이놈! 너는 누구냐?"



 침입자를 발견한 마왕 라바나는 벼락같은 소리를 내며 원숭이 장군에게 덤벼들었다. 놀랍게도 노련한 원숭이 장군은 라바나의 공격을 받아치는 것을 넘어 거의 이길 기세였는데, 더욱이 일갈 때문에 마왕은 더욱 밀리는 것이었다.



 "라바나! 당신은 왜 다르마를 지키지 않는 것이오? 남의 아내를 탐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마왕을 뒤로 하고 하누만은 다시 라마에게 돌아와 ‘아내가 살아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었다. 라마는 마왕의 거처까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다녀온 하누만이 너무나 고마웠지만, 그에겐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었다.


 


 하누만은 “그저 나를 진심으로 안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꼭 포옹을 한 라마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장군은 신에게 ‘내가 자만하지 않게 해 달라’며 기도를 올렸다.



원숭이 장군 하누만. 구름 타고 다니는 원숭이 하니까 누가 떠오르지 않으셨는지?



최후의 결전




 "아니, 그럴 일은 없소!"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라마에게 자신을 라바나의 동생 비비슈나라고 소개하는 한 악귀가 찾아왔다. 그는 화해를 하자며 말을 꺼냈지만, 라마와 락슈마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이렇게 마왕 라마나와 라마의 대결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원숭이 나라의 기술자 날라는 부하 원숭이들과 돌들을 운반해서 인도 남부 타밀나두에서 랑카까지를 잇는 다리를 완성한다.



 '땡그랑!'



 전투 중에 마왕이 칼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를 상대했던 하누만과 라마는 틈을 노려 공격을 하기는 커녕 가만히 지켜본다. 이것이 크샤트리아의 다르마였기 때문이었다. 무기가 없는 적을 공격하는 것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갑자기 화살이 날아와 라마와 락슈마나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상처는 마치 마른 가지에 붙은 불처럼 점점 커졌고, 결국 전투를 계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마왕 락슈마나의 아들 인드라지트의 소행이었다. 하누만은 이 사단이 어떤 몹쓸 악귀 때문에 일어났는지 대번에 알았다. 히말라야에서만 자라는 약초 ‘상지바니’가 아니라면 둘은 회복될 수 없었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너무 멀었고, 전투는 한시가 급했다.



 "아, 어쩔 수 없군. 이 몸이 날아가서 가져오는 수 밖에."



 구름을 부르는 원숭이 하누만에게는 아무리 먼 거리도 한달음에 갈 수 있는 코앞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가 마음이 너무나 급한 나머지 ‘상지바니’를 일일이 찾는 것을 포기하고 산 자체를 뽑아 날아왔다는 것이다.



이걸 들어?!



 어찌 되었든, 원숭이 하누만에게 형제는 목숨을 빚지게 되었다. 빠르게 반격을 준비하는 라마와 락슈마나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는데, 인드라지트가 그만 시타를 죽이고 만 것이었다.




 "이제 전부 끝이다!"



 마왕의 성에서는 날뛰며 환호하는 악귀들의 소리가 들렸고, 라마의 진영에서는 한숨과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인드라지트의 흉계였다. 그는 가짜 시타를 만들어 진짜 시타를 죽이는 것 마냥 쇼를 한 것이다.



 문제는 이것 때문에 엄청나게 분노한 락슈마나가 인드라에게 간절한 기도를 했고, 그 기도를 들은 인드라가 힘을 빌려주어 인드라지트는 단숨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마왕의 아들은 최후를 맞이했다.




 이어서 라마도 인드라의 전차를 빌려 타고 라바나와 최후의 전투를 벌인다. 이때 무기를 떨어뜨리지 않았는지, 결판이 났다. 라마는 라바나를 쓰러트리고 시타를 구했다.



그리고 그 후에




 "글쎄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모를 일이니까요..."



 사람들 중에 시타가 라바나에게 갇혀 있는 동안 정절을 잃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소리가 커졌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라마는 “그럴 리 없다.”며 소문을 일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문이 사그라지지는 않았다.



 "좋아요, 그러면 제가 아내의 다르마를 지켰다는 사실을 보여드리기 위해 불 속에 뛰어들겠어요. 아그니님께서 제 결백을 보여주실 겁니다."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불을 붙이게 한 시타는 거침없이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뻔하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불에 실오라기 하나도 타지 않은 모습으로 불 밖으로 다시 나온 시타를 보고서야 사람들은 "시타가 다르마를 지켰다!"며 소리를 쳤다. 그리고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냐고?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다.



 라마는 아요디아로 귀환하여 왕위에 오른다. 앞서 말한 것처럼 동생 바라타는 그가 올 때까지 왕좌 밑에 큰형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 두었고, 그것을 신은 라마는 환하게 웃으며 아요디아 왕국의 다음 왕이 되어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오래오래 훌륭한 통치를 이어갔다.




캡틴 인디아를 자유롭게 해줄 순 없을까




 이상의 이야기는 마하바라타와 더불어 인도신화의 두 대서사시인 라마야나의 줄거리를 짧게 그려본 것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다르마’란 인도 사회를 지탱하는, 사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각자의 의무 같은 요소이다.




 그런데 왜 유독 각자의 다르마를 지키는 것을 강조하는 등장인물들의 태도가 노골적으로 반복되는 것일까? 다르마라는 개념은 고대 아리안족이 인도로 가지고 온 브라만교 경전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 고유의 사상과 문화를 보존하려는 아리안의 욕구가 다르마를 강조하는 모습을 만들었다. 평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들의 체제를 본 글에서 소개한 라마야나 뿐만 마하바라타와 같은 서사시로 풀어 설명했다.



 물론 어떤 사회에서든지 규율을 지키고, 복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을 통해 개인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으며 사회 자체가 유지되며 지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급을 정당화하며 그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무조건적인 순응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또 다른 불평등과 차별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 ‘다르마’를 가르치고 순응하게 만드는 일에 앞장 선 이 영웅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다. 그는 미풍양속을 잘 지킨 훌륭한 인물일까?


혹시 냉전 시대 캡틴 아메리카처럼 라마도?




 혹시 냉전 시대 캡틴 아메리카처럼 선전과 체제 홍보의 쇼윈도에 갇혀 혹세무민에 사용된 캡틴 인디아가 라마의 본 모습은 아닐까?



 그래, 어쩌면 영웅의 또 다른 얼굴은 씁쓸하다. 그의 멋진 모습은 늘 빛나지 않는다. 무엇인가의 도구로 사용될 때 더욱 더 그런 것 같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또 영웅의 몸에 실을 매달고 자기 욕심대로 꼭두각시놀음을 해도 그것을 과감히 끊을 줄 알아야 한다. 그 가위는 당신 머리 속에 있다.




 제대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사유의 가위로 체제 선전이라는 잘 보이지도 않는 피아노 줄을 끊을 때 캡틴 인디아는 비로소 자유롭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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