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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Oct 14. 2020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다시, 일상으로

 


‘빠바밤 빠바바바밤!'



 주말이 끝나는 소리다. 게으른 하품, 상사의 잔소리, 짜증 나는 회식, 그리고 신나는 퇴근. 그 모든 것들 사이로 다시 헤집고 들어가야 한다는 일종의 알람이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말을 책임졌고, 주말의 끝을 알렸던 그 프로그램, 개그콘서트를 말하는 것이다.



 "아, 훌륭한 양반인 줄 아나 본데, 제갈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반’자 쓰는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다!"



 누구는 우리가 ‘배달의 민족’이라고 말했지만, 적어도 문학 시간에 배운 바 대로 말하면 ‘풍자와 해학의 민족’ 아니, 요즘의 말로 표현하자면 어쩌면 ‘드립의 민족’이 아닐까 생각한다.




  풍자와 해학을 통해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하나다. 상황을 우습게 만들어 버리는 것,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준 저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는 없으니 ‘돌려까기’를 시도하거나, 혹은 화나고 슬프고 안타까운 상황을 아예 웃음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이런 시도들은 옛날의 것이 아니다. 탈춤이나 판소리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거다. "사장님 나빠요" 분장은 커녕 빈손으로 나와 스리랑카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온 회사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를 풍자한 개그맨 정철규 씨, 시간을 더 돌려 겉으로는 ‘로마 제국’을 배경으로 했지만, 사실 현실의 정치를 풍자했던 '네로 25시'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 그럼 소는 누가 키워, 소는!"



 이후 아예 풍자와 해학이 조심스러워진 요즘, '소는 누가 키우냐'며 목소리를 높였던 한 개그맨이 있었다. 박영진 씨는 개그콘서트의 코너 중 ‘두 분 토론’에서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자신의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전근대적 남성 우월주의를 희화화한 캐릭터를 맡았다.




 가만보면 ‘소는 누가 키우냐’는 그의 외침은 웃음을 유발하는 '철 지난 소리'였지만, 어쩌면 그의 말이 다르게 들릴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제 마무리 되는 이 긴 여행담, 오뒷세이아의 끝을 읽고 나서는 말이다.




구혼자들이 활시위를 매기지 못하다





 페넬로페는 시합을 위해 구혼자들에게 활과 화살들을 갖다 놓아 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높은 계단을 올라가 청동 열쇠를 돌렸다. 거기 가장 외진 창고에는 통치자들의 보물들, 청동과 황금과 공들여 만든 무쇠가 보관되어 있었다.



 "여러분 중 누구든지 활에 시위를 얹어 화살로 열두 개의 도끼를 모두 꿰뚫는 사람이 있다면 이 집을 떠나 그 사람을 따라가겠어요."



 안티노오스는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오딧세우스를 업신여기며 모든 구혼자들을 부추겼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텔레마코스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 크로노스의 아드님께서 나를 바보로 만든 것이 틀림 없소. 지혜로운 내 어머니가 다른 남자를 따라가겠다고 말씀하시는데도 나는 어리석은 마음에 기뻐하고 있으니 말이지. 자, 이러한 여인은 아카이오이족 땅 어느 곳에도 없소. 신성한 퓔로스에도 아르고스에도 뮈케네에도 없고 이타케 자체에도 없고 검은 본토는 말할 것도 없지요. 자, 그대들은 더 활에 시위 얹기를 회피하지 마시오. 아, 나도 이 활을 시험해 볼 것이오. 내가 시위를 얹어 무쇠를 꿰뚫게 된다면 어머니가 다른 남자를 따라가더라도 나는 슬퍼하지 않을 것이오. 이제 아버지의 무기를 들 수 있는 사람으로 남을 테니 말이지."




 그는 세 번이나 활을 구부리기를 갈망하며 흔들었지만, 세 번 다 실패했다. 분명 네 번째에는 힘껏 당겨 시위를 얹는데 성공했을테지만, 오딧세우스가 머리를 흔들어 그를 제지했다. 아들은 가만히 포기하고 말을 이었다.



 "아, 나는 여전히 약골입니다. 아니면 내가 아직 어려 내게 행패 부리는 사람을 물리칠 만큼 내 힘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자, 그러니 그대들이 활을 시험해보시죠. 이 시합을 어서 마칩시다."



 "자, 오른쪽부터 돌아가며 차례대로 시작하시오."



  안티노오스의 말에 따라 먼저 오이놉스의 아들 레오데스가 일어났다. 안타깝지만, 그는 활에 시위를 얹을 수 없었다. 단련되지 않은 두 손이 부들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친구들이여, 나는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이 활을 쥐게 하시오."



 금방 포기 해버린 레오데스는 활을 내려놓고 활은 반들반들한 문짝에, 날랜 화살은 구부러진 활 끝에 기대놓았다. 그렇게 해놓고서는 다시 안락의자에 도로 앉았다.



 구혼자들은 활을 데우고 활에 기름칠을 한 다음 나름대로 노력해보았지만, 활에 시위를 얹지 못했다. 그만큼 그들의 힘이 충분치 못했던 것이다. 한편, 오딧세우스의 소치기와 돼지치기는 밖으로 나갔는데, 그 뒤를 오딧세우스가 따라가 말했다.



 "소치기여, 그리고 그대 돼지치기여, 만약 오딧세우스가 어디선가 갑자기 돌아오고, 어떤 신이 그를 갑자기 데려다주신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주인 양반을 도울 생각이오? 그대는 누굴 도울 거요? 그대들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해보시오."



 먼저 소치기가 그에게 대답했다.



 "아버지 제우스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시길, 그러면 그대는 내 손과 힘이 어떻게 나에게 복종하는지를 분명히 보게 될 것이오."



 마찬가지로 에우마이오스도 같은 기도를 신에게 올렸다. 둘의 마음을 확실히 알게 된 오딧세우스는 말했다.



 "자, 그대들은 들으시게.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나는 천신만고 끝에 20년이 지나 드디어 고향 땅에 돌아왔다. 나는 모든 하인들 중에서 그대들만이 나의 귀향을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네. 다른 종들은 그런 기도를 올리지 않았으니 말이야. 자, 앞으로 일어날 일을 들어보게. 이제 신이 저 구혼자들을 내게 다 굴복시키시면 나는 자네들 두 사람에게 아내와 재산을 주고 내 집 가까이에 집도 지어줄 생각이네. 앞으로 자네들은 텔레마코스의 훌륭한 전우이자 형제가 될 것이야. 아직도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멧돼지의 흰 엄니에 다친 이 흉터를 똑똑히 보아라."



 그리고 오딧세우스는 큰 흉터를 가린 누더기를 치웠다. 그것을 본 둘은 오딧세우스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물론, 오딧세우스도 함께 울었지만 이내 그는 말했다.


나그네의 정체는?!



 "자, 누가 나오다가 우리를 보고 일러바치지 않도록 이제 울음과 비탄은 멈추는 게 좋겠다.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 그대들은 그 뒤에 들어와라. 자, 에우마이오스여, 자네가 활을 들고 홀 안을 돌다가 그것을 내 손에 놓아라. 그리고 자네는 여인들에게 방문을 모두 잠그라고 전해야 한다. 혹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밖으로 나오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고 말해라. 그리고 필로이티오스여, 자네는 안마당의 바깥 대문에 빗장을 지르고 그것을 빨리 줄로 묶어라."



 그때 에우뤼마코스는 활을 만지작거리며 불빛에 이곳저곳을 데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활시위를 얹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침통하게 말했다.



 "아, 나는 나 자신뿐 아니라 그대들 모두를 위해 슬퍼합니다. 결혼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라오. 여기 모인 우리가 이 활에 시위를 얹을 수 없을 만큼 힘에서 오딧세우스보다 한참 뒤처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라오."



 에우페이테스의 아들 안티노오스가 말했다.



 "아니, 이것들 모두는 이제 치워버리는 것이 좋겠군. 이제 이것들을 가져갈 남자는 아무도 없으니 말이오. 내일 명궁 아폴론에게 염소를 바치고 나서 이 시합을 끝내버립시다."



 모두가 동의하며 술을 마시는데, 좌중에서 오딧세우스가 외쳤다.



 "자, 모두 들으시오. 나 역시 활을 쉬게 하고 내일 신들에게 맡기자는 안티노오스의 말씀에 동의하오. 내일 아침 신은 원하는 자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오. 그러니 그 활은 이제 내게 주시오. 그대들 앞에서 나도 한번 시험해보고 싶소. 전에 내 사지에 들어있던 힘이 내게 여전히 남아 있는지 말이오."



 그때 혹시 그가 활에 시위를 얹지 않을까 걱정하며 수군대는데, 다시 안티노오스가 말했다.



 “너는 분별이라고는 눈곱만큼이라도 없구나. 술에 취해서 지금 분수를 모르고 지껄이는 모양인데, 헛소리 집어 치고 너보다 젊은 사람과 다툴 생각하지 말고 조용히 먹던 술이나 얌전히 마시는 편이 좋을 게다.”



 모두가 큰 소리를 내며 각자의 말을 하는데 텔레마코스가 말했다.



 "자, 이 활을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든 아니면 거절하든 이 활에 대해 아카이오이 족 중에 나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진 사람은 없지요. 자, 어머니 집안으로 가셔서 어머니의 일을 하시고 하녀들에게도 자기 일을 하라고 시키세요. 활은 남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제 일이니 말입니다."



 그때 돼지치기가 활을 들고 가자 모든 구혼자들이 소리쳤다.



 "너는 어디로 그것을 가져가는가? 네가 기른 개들이 머지않아 돼지 떼 곁에 있는 너를 잡아 먹을 것이다!"



 하지만, 질세라 텔레마코스가 외쳤다.



 "계속 활을 들고 가시오. 모두에게 복종하는 것은 그대에게 이롭지 못할 것이오. 아, 내가 저들보다 힘이 더 좋았다면 몇 명을 혼내주고 자기 집에 돌려보낼 텐데!"



 그 소리를 들은 구혼자들은 비웃었다. 그 사이 돼지치기는 활을 가지고 오딧세우스에게 다가가서 그것을 그의 손에 두었다. 그리고는 유모 에우뤼클레이아에게 ‘방문을 모두 잠그고 무슨 소리가 나도 하던 일을 계속하여라’고 말했다. 유모는 그 말을 알아듣고 곧바로 그렇게 했다.





오딧세우스가 활을 잡다





 필로이티오스도 곧장 나가 주인이 시킨대로 하는데, 집 안에서는 오딧세우스가 활을 이리저리 돌리며 만지작거린다. 그것을 보는 어떤 사람들은 서로 "저 사람은 정말인지 활에 정통한 사람 같구나." "혹시 저 자는 불행에 정통한 것이 아니라 활을 누구보다 잘 쏘는 사내가 아닐까?"라며 수군거렸다.



 마치 현악기에 능통한 누군가가 새 줄감개에 현을 메우고 잘 꼰 양의 내장의 양 끝을 고정할 때처럼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활에 시위를 얹었다. 오른손으로 시위를 시험해보자 거기서는 제비 소리 같은 소리가 났다. 구혼자들은 ‘당연히 될 리 없을 텐데’ 생각하다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 광경에 나자빠졌다. 그리고 그때, 마침 천둥이 울렸다.



 제우스가 던진 것이었다. 신이 보낸 전조에 기뻐하며 활의 주인은 날랜 화살을 집어 들었다. 앉아있던 의자에 그대로 앉아 똑바로 겨누고 쏘았는데, 화살은 날아가 도끼를 모두 뚫고 지나갔다.



 "텔레마코스야, 네 손님이 너에게 치욕을 주지는 않았구나. 나는 표적을 놓치기는 커녕 활에 시위를 얹느라 지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아직도 기운이 팔팔하니 저들이 나를 조롱한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은 만찬의 시간이다. 자, 밝고 나면 춤과 현악기들로 놀이를 즐기자. 그것이 모든 잔치의 절정이니까."



 이렇게 말하고 눈썹으로 신호를 보낸 아버지를 본 텔레마코스는 날카로운 칼을 메고 손에 창을 움켜쥐고서는 번쩍이는 청동으로 무장한 채로 옆에 버티고 섰다. 이제 오딧세우스는 누더기를 벗어 던지고 활과 화살통을 든 채 문턱 위로 뛰어 올라갔다.



 "자, 쓸데없는 시합은 이제 끝났다. 이제 나는 다른 표적을 찾아낼 것이다. 혹시 그것을 맞추면 아폴론이 내게 명성을 주실지도 모를 일이지!"



 화살은 안티노오스에게 향했다. 그때 막 손잡이가 둘 달린 황금 잔을 들어 올리려 했는데, 그 순간 화살이 그의 식도를 꿰뚫었다. 안티노오스는 한쪽으로 쓰러졌고, 그의 손에서 술잔은 떨어졌다. 그가 쓰러지는 것을 본 구혼자들은 고함을 치며 일어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들이 쥘 만한 방패나 창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 주겄써!


 "뭐 하는 거요! 나그네여, 화살로 사람을 쏘다니. 그대는 이제 더 다른 시합에 참가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독수리의 밥이 될 것이오!"



 그들은 오딧세우스가 의도를 가지고 쏜 것이 아니라, 그저 실수로 죽였겠거니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 모두는 어리석게도 자기 머리 위에 파멸의 밧줄이 놓여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오딧세우스는 이제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리며 말했다.



 "이 개 같은 자들아! 너희는 내가 저 먼 나라 트로이 인들의 땅에서 돌아올 줄 몰랐겠지. 그랬으니 내 살림을 탕진하고 강제로 하녀들과 동침하며 내가 아직 이렇게 살아 있는데도 내 아내에게 구혼했다. 너희는 신들도, 인간들의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 이제 보아라. 너희 머리 위에 파멸의 밧줄이 매여 있다!"



 모두가 새파랗게 질려 어디로 가야 할지 주위를 둘러보는데 에우뤼마코스가 오딧세우스에게 말했다.



 "그대가 격분하는 것은 당연하오. 하지만, 그 모든 일을 꾸민 자는 여기 누워있는 안티노오스였소. 이제 그가 죽었으니 그대는 자신의 백성들을 살려주시오. 우리는 백성들 사이에서 거둬들여 우리가 먹고 마신 것을 보상하겠소."



 하지만 오딧세우스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모든 것을 전부 되돌리고 거기에 많은 것을 얹어준다고 해도 나는 내 손을 쉬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와 맞서 싸우느냐, 아니면 도망치느냐 하는 것은 너희에게 달렸다. 혹시 죽음과 죽음의 운명을 피할 수 있다면 말이지."



 그 말에 모두의 무릎과 심장이 떨렸다. 에우뤼마스는 구혼자들에게 ‘칼을 빼 들고 방패 대신 식탁을 집어 들어 덤벼들자’고 말했다. 청동으로 빛나는 쌍칼날을 들고 오딧세우스에게 덤벼들며 앞장섰지만, 오딧세우스의 화살이 더 빨랐다. 이내 그는 칼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식탁 위에 고꾸라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암피노모스가 칼을 뺴어들고 오딧세우스에게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텔레마코스가 청동 날이 박힌 창으로 그의 어깨를 맞히고 가슴을 꿰뚫었다. 필로이티오스와 에우마이오스도 무장하고 싸웠다. 아테나의 도움으로 모든 구혼자들은 곧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제 오딧세우스는 유모 에우뤼클레아를 불러 ‘누가 하녀들 중 가장 나쁜 해악을 끼쳤는지’를 물었다. 주인이 돌아올 것을 모르고 어리석은 선택을 한 열둘의 여인들은 그렇게 염소치기 멜란티오스와 더불어서 죽게 되었다. 그제야 오딧세우스는 이 모든 복수를 마쳤다.




페넬로페가 오딧세우스를 알아보다




 한편 페넬로페는 방에 들어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니 고함이며 사람들이 죽는 소리 하나 듣지 못했다. 유모가 이층방으로 올라와 문을 세차게 두들기는 그때가 돼서야 정신을 차렸다.




 ‘오딧세우스가 돌아와 구혼자들을 모두 해치웠다’는 말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던 안주인은 유모의 말을 믿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남편이 정말 돌아왔다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입이라도 맞추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했던 것이다.



 막상 내려가자 더 답답한 상황이 벌어졌다. 도무지 남편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번에도 나그네를 아주 늦은 밤에 만났는데, 지금도 아주 늦은 밤이니 도무지 알아볼 수 없었다. 너무나 답답했던 아들은 어머니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오딧세우스는 웃으며 말했다.



 "아들아, 그냥 네 어머니가 나를 시험 해볼 수 있도록 두어라."



 밖에서 사람들이 이 난리를 알아채면 안되니 하인들에게 화려한 의상을 입히고 시인들의 노래에 맞춰 춤추게 했다. 오딧세우스가 목욕을 하고 좋은 옷을 입자 훨씬 나은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내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오딧세우스를 시험해볼 생각으로 유모에게 ‘신방의 침상을 밖으로 내어 오딧세우스가 그 위에서 잘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오딧세우스는 차분한 태도를 집어 던지고 소리를 높이고야 말았다.

페넬로페는 어떻게 남편을 알아보았을까?



 "아니, 누가 나의 침상을 옮긴단 말입니까? 인간 중에는 아무리 힘이 세다 해도 그 침상을 쉽게 들어 올릴 자는 얼마 없을 거요. 우리 안마당에는 올리브 나무 한 그루가 하나 있었는데, 마침 그 줄기가 기둥처럼 굵었소. 그래서 그 둘레로 돌들을 촘촘히 쌓아 올려 방을 들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방을 완성했지. 그러고 나서 나무 밑동을 뿌리 쪽부터 위로 대충 다듬고 청동을 두른 다음 먹줄을 치고 침대 기둥으로 만들었죠. 그것을 옮기라니 누가 분명 나무 밑동을 베었던 것이 틀림없군요!"



 그 말을 듣자 페넬로페는 무릎과 심장이 풀렸다. 모두가 알지 못하는 것, 오직 오딧세우스와 페넬로페만이 알고 있는 것을 저 남자가 말하다니! 이제 그녀는 울며 오딧세우스에게 곧장 달려갔다.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 머리에 입 맞추며 말했다.



 "아, 오딧세우스 내게 화내지 마세요. 내가 이렇게 진즉 당신을 반기지 않았다고 화내거나 노여워하지 마세요. 누가 내게 와서 거짓말로 나를 속일까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인제야 둘은 부부답게 서로를 끌어안고 아침이 올 때까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오딧세우스는 ‘페넬로페에게 이층에 머물며 아무도 만나지 말라’고 말한 뒤 텔레마코스와 소치기, 돼지치기를 깨워 무장하고 농장으로 갔다.




여정의 끝, 일상의 회복




 한편 헤르메스는 떼로 죽은 구혼자들 모두를 데리고 저승으로 들어갔다. 마침 거기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킬레우스에게 아가멤논이 먼저 말했다.



 "아, 우리는 그대가 모든 영웅들 중에 제우스께 가장 사랑받는 줄 알았소. 하지만 위대한 통치자인 그대에게도 죽음의 운명이 그것도 일찌감치 찾아왔구려!"



 그러자 아킬레우스에게 그 역시 대꾸했다.



 "펠레우스의 아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여! 그대야말로 행복한 자요. 그대의 장례식은 참으로 장엄하고, 아름다웠지. 내가 죽었을 때와는 다르게 그대의 죽음을 모두가 슬퍼했다오."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아가멤논이 이제 막 저승으로 들어온 남자들을 알아보았다. 그는 암피메돈에게 물었다.



 "암피메돈, 그대들은 무슨 사고를 당했길래 이렇게 내려오는 것이오? 혹시 포세이돈이 역풍과 긴 파도를 일으켜서 그대들을 제압했소? 아니면 혹시 그대들이 소 떼나 아름다운 양 떼들 탐한 것이오?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이오?"



 "우리는 오랫동안 없고, 떠난 오딧세우스의 아내에게 구혼했지요. 그러나 그녀는 온갖 핑계를 대며 시간을 미루었죠. 그리고 어떤 신이 오딧세우스를 고향으로 이끌었습니다. 안티노오스와 다른 자들 모두 화살에 쓰러졌소. 분명 어떤 신이 그와 종들을 돕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소."



 이야기를 들은 아가멤논은 탄복했다.



 "아, 오딧세우스는 아주 복 받은 사람이오. 아주 뛰어난 아내를 얻었으니 말이지. 페넬로페가 얼마나 그 남편을 진심으로 사모했던가! 그러니 그녀의 명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요. 하지만 그와 달리 튄다레오스의 딸(클뤼타임네스트라)은 악행으로 그의 남편을 죽였으니 그 일은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가증스러운 노래가 될 것이오."



헤르메스와 죽은 자들.



 한편, 오딧세우스 일행은 시골의 라에르테스 농원에 도착했다. 그는 하인들에게 점심을 준비하라고 시키고 조용히 앉아있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의 아버지였다. 오딧세우스는 아버지가 자신을 알아보는지 궁금했다. 아버지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동산에서 혼자 흙을 파며 일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오딧세우스를 찾아온 손님으로 소개한 아들은 어디서 오딧세우스를 만났고, 어떻게 헤어졌는지 이야기했다. 그때 아버지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렀다. 20년이 넘게 타향에서 고생하며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아들 생각에 눈물 흘리지 않을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 모습을 보고 아들은 더 이상 말을 지어낼 수 없었다.



 "아버지, 아들입니다. 내가 오딧세우스라고요. 제가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유모가 보고 알아챈 것처럼, 아버지 역시 흉터를 보고 나서야 나그네가 오딧세우스라는 것을 알아챘다. 노인은 아들, 그리고 함께 온 사람들을 집으로 데려가 식사했다. 한편, 돌아오지 않는 아들들의 소식을 들은 구혼자들의 가족들은 회의장에 모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습니다."



 "옳소, 원수를 갚아야 해요!"





 사람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큰 소리를 내며 오딧세우스를 찾아갔다. 맨 앞에서 기세등등하게 달려오는 안티노오스의 아버지를 본 오딧세우스는 망설임도 없이 창을 들어 던졌다. 이어서 모두가 다시 돌아가지 못하도록 살육의 현장이 벌어질 찰나, 제우스의 딸 아테나가 목청껏 소리쳐 모두를 제지했다.



 "자, 이타케 인들아, 그대들은 전투를 멈춰라. 더는 피를 볼 생각 말고 당장 갈라서라!"



 여신의 목소리를 들은 모두는 깜짝 놀랐다. 무기들이 모두 그들의 손에서 떨어졌다. 살기를 바라며 모두가 도시로 발걸음을 돌리는데, 오딧세우스는 무시무시하게 고함을 치며 그들에게 덤볐다. 그때 크로노스의 아들이 번개를 던져 여신 앞에 떨어뜨렸다. 아테나가 오딧세우스에게 말했다.



 "자, 제우스의 후손 라에르테스의 아들아. 제우스께서 그대에게 더 노하시지 않도록 인제 그만두어라. 모두에게 공통된 전쟁의 다툼은 이제 멈추어라."



 아테나의 말에 그는 흔쾌히 따랐다. 제우스의 딸 아테나는 양편이 맹약을 맺게 했다. 그녀의 생김새와 목소리는 마치 멘토르 같았다.



아 그래서 소는 누가 키울거야?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와, 엄청나게 춥네."



 선풍기를 다시 창고에 잘 넣어두고 몇 주가 더 지났다. 며칠 전만 해도 밖에서 일하고 들어오면 몸이 살짝 더워져 환기를 핑계로 창문을 열어두곤 했는데, 어느새 가을의 자리를 겨울이 빼앗으려는지 기온이 더 내려갔다.



 "여기는 벌써 다 추수하셨네..."



 나는 시골에 산다. 아직 어린 나에게는 꽤 불편한 점이 많아 보이지만,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 계절의 변화를 가장 앞에서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시골에 사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즐거움이다.




 

 예컨데,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 벼가 익어가고, 오늘 나오다 보니 그 노랗게 변한 벼들은 모두 사라지고 짙은 갈색의 땅만이 벌거벗고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시냐’며 얼굴을 붉히는. 뭐, 이런 식이다.



 아, 다이어리를 새로 사야 한다. 일상이 이미 ‘포스트 코로나’라는 이름으로 뒤바뀐 뒤 어떻게 내년을 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또 다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한다.




 누구는 '시간은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일직선'이라고 했지만, 다시 보면 시간은 원형이다. 돌고 돈다. 시작되면 이내 그것이 쭉 이어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연말이 되고, 끝이 난다.



 하지만, 끝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이다... 2020년은 이제 2달이 채 남지 않았다. 하지만, 2020년이 끝난다고 해서 모든 시간이 끝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또 다시 달력을 넘길 것이고, 일직선인 동시에 시간은 또 다시 축에 맞추어 뱅글뱅글 돌 것이다. 혹시 이것이 지루하다고 느껴진다면, 오히려 나는 당신의 어깨를 흔들며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 오히려 더 귀중하다'고 말하고 싶다.



 총과 칼을 들고 용감하게 전쟁에 나간 사람의 삶만이 숭고한 것은 아니다. 일상의 당연한 것들을 이어가는 누군가 역시 영웅이다. 폴란드의 시인 쉼보르스카가 쓴 것처럼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만 한다.




 소파의 스프링, 깨진 유리 조각, 피 묻은 넝마 조각이 가득한 진흙 잿더미를 헤치고 나가야 한다. 누군가는 벽을 지탱할 대들보를 운반하고, 창에 유리를 끼우고, 경첩에 다시 문을 달아야 한다.



 무시무시한 전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운명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영웅만 용감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나고 다시 일상을 세워가는 사람 역시 용기 있는 사람이다.



 

 하기야 전쟁에 나가 누군가는 가족을 지키고 적에 맞서 싸워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 어떤 사람은 집에서 일상을 이어가야 하지 않는가? 모두가 총칼을 잡는다면, 소는 누가 키우나?



 그래서 호메로스는 일리아드 뿐만 아니라 오뒷세이아까지 구태여 써야 했을지도 모른다. 용감하게 전쟁에 나가 죽는 것 뿐만 아니라, 일상을 이어가는 것 역시, 삶을 살아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불멸의 명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전장에 나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영웅들은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남은 자들의 과제는 무너진 집안, 고향을 회복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오뒷세이아의 이야기가 일리아스의 것보다 훨씬 더 작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오뒷세이아의 세계는 좀더 평범한 인간들의 세계이다. 아주 보통의 사람들이 이어가는 일상의 이야기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가 여전히 고전으로 읽히는 이유는 이 긴 여행의 끝에서 세워진 질서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복원이라고 하기엔 서운하다. 피의 복수, 그 악순환이 끝났기 때문이다.




 모략과 다툼, 피의 복수가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 우리는 칼을 뽑아야 하고, 적에게 총을 겨누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피 흘리는 것만을 좋아하겠는가?



 서로 죽일 듯 겨눈 총구를 내리는 편이 방아쇠를 당겨 피를 흘리는 것보다 낫다. 아니, 만약 피를 흘리더라도 결국 서로를 인정하고 손을 붙잡고 나아가는 것이 훨씬 낫다. 이를테면, 인간적이다.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가 말한 것처럼 문명은 ‘부러진 뼈가 다시 붙은 흔적’일지도 모른다. 창과 칼,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이 끝나고 상처를 싸맬 시간이 필요하다.



 피가 멎고 부러졌던 뼈가 다시 붙으며 새살이 돋는 그런 일상의 회복을 그렸기에 이 여행기는 아직도 우리에게 꼭 읽어야 하는 고전이다. 상처를 싸매고 평화로 회복되어야 할 전 인류의 이야기이다.




 나와 당신의 일상이 이런 것들이길. 창과 칼을 들고 무섭게 들이밀어진 총구 앞에서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과감하게 소리칠 수 있는 사람, ‘문명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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