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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Oct 07. 2020

‘넥타이 풀어도 괜찮아’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곳으로



“자, 이렇게 매고, 자켓 한번 입어 봐."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아, 저번에 써먹었던 그 이야기 맞다. 아울렛에서 양복을 샀는데, 그냥 다른 친구들 따라 자동 넥타이를 사면 될걸, 나는 왠지 넥타이를 내 손으로 직접 매보고 싶었다.



 혼자 튀고 싶었는지, 아니면 수트 차림의 남자들이 멋져 보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쨌든 사장님이 건네준 양복가방에 각자 고른 양복을 넣은 우리는 집으로 갔다. 다른 친구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나는 검색을 해야 했다.



 ‘남자 넥타이 매는 법’



 한참을 들여다보았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똑같이 맨 것 같았는데, 그림에 나와 있는 것처럼 똑바로 되질 않았다. 그때 퇴근하신 어머니가 들어오시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까지 달려간 불속성 효자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엄마, 나 넥타이 매줘!"



 그제야 인터넷에서 본 모습과 똑같은 모양새가 나왔다. 나는 연신 히죽대며 ‘아빠가 퇴근하시면 보여드려야지’ 생각했다. 맨 위 단추까지 모두 다 잠근 것은 물론이고, 자켓까지 완전히 다 입고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빠, 나 이러니까 어른 같지 않아요? 아들 멋지죠?"



 퇴근하신 아버지는 아들의 꼴이 퍽 우스웠을 텐데, ‘그래, 우리 아들 멋지네’ 하셨다. 기억하기로는 그 날 아버지에게 칭찬 들은 것이 정말 좋아서 자기 전까지 그 모습으로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너 그러지 않아도 멋져. 내 아들이니까’ 하지 않으셨다면, 아마 나는 잠을 자면서 그날 밤 목이 졸리는 악몽을 꾸었을지도 모른다. 아, 입고 잤을 거란 말이다.


입시 철이 되면 가끔 이런 플래카드가 보였다.




 ‘000 차남 00대학교 00과 수석합격’



 지금은 자주 보이지 않지만, 입시 철이 되면 가끔 이런 문구의 플래카드가 보였다. 그때마다 나와 동생은 부모님께 ‘우리도 저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자랑스러운 자식이 될게요’라고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착하고 정직하면 되,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너희들은 그렇게 되지 않아도 자랑스러운 내 아들이고 딸이야.’라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어머니는 우리에게 늘 ‘정직하고 올바른 어른으로 살아라’ 말씀하시지, '돈 많이 벌어서 용돈 줘' '승진 해' 같은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으신다. 아,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졸업하니 제법 붙는 이름이 많아졌다. 여기저기에서 나를 각자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어렸을 적 재미 삼아 불렀던 동요처럼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가 되어버린 것일까?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많은 이름들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넥타이 풀어도 괜찮은 곳이 있다.



 하지만, 한 곳에서는 다르다. 거기서 나는 어떤 직급으로 불리지 않는다. 성과를 내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실패하고, 밖에서는 못난 놈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여기에서만큼은 사랑하는 내 자식이다. 그래, 맞다. 그곳은 당신이 누구이든 하나쯤 가진 바로 그 곳, 집. 가정이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곳. 넥타이나 셔츠를 굳이 입지 않아도 ‘멋지다’ ‘예쁘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그 말이 허례허식이 아니라 누구보다 진심인 곳, 그래. 어쩌면 그런 곳이 가정이고 집이기 때문에 오딧세우스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해본다.




이타케에 도착하다





 오딧세우스의 이야기가 끝나자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 침묵으로 가득 찼다.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그의 여행담에 매료된 탓이다. 그때 침묵을 깬 것은 통치자 알키노오스였다.



 "여행ㅈ... 아, 오딧세우스! 오딧세우스여,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 하지만 이제는 그대는 이제 내 집에 도착했소. 이렇게 된 이상 그대는 더 괴로워 할 필요 없소. 표류는 끝났소. 이제 그대의 집에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오."



 이어서 왕은 함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을 향해 몸을 틀고는 말을 이었다.



 "자, 그대들. 반짝이는 포도주를 마시며 함께 이 남자의 모험담에 귀를 기울인 여러분들께도 이렇게 말하며 부탁하겠소. 우리 이 사내를 위해 옷들과 황금, 그리고 보물들을 선물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에게 큰 세발솥과 가마솥을 하나씩 줍시다. 우리야 형편이 넉넉하지만, 지금껏 표류한 이 나그네는 그렇지 못하니 말이오."



 알키노오스의 말은 모두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 뒤에 그들은 저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아침이 되자 사람들은 모두 선물을 가지고 배가 있는 곳으로 모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큰 소란이 난 것처럼 왁자지껄 떠들었다. 선물을 노 젓는 의자 밑에 잘 간수해 둔 뒤에 모두 알키노오스의 집에서 식사를 했다.



 알키노오스는 오딧세우스의 귀환을 위해 큰 황소를 잡아 제우스에게 바쳤다. 제물을 바치는 일이 끝나고 잔치가 열려 모두가 즐거움을 만끽했다. 시인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했지만, 오딧세우스는 자꾸 하늘만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있는 귀향에 대한 열망이 자꾸 고개를 든 것이다.

보내줘라.




 "위대한 통치자 알키노오스여, 그대와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은 헌주를 하시고 나를 안전히 호송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대들도 각자의 처소로 안전히 돌아가시길. 올림포스의 신들이 나그네에게 아낌없이 베푼 그대들의 삶과 집에 아낌없이 복 내리시길 빌겠습니다. 나는 이제 귀향해 집에서 내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의 건강한 모습을 내 두 눈으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대들은 이곳에 오래 머물며 아내와 자식들을 기쁘게 해주시기를! 신들께서 분명 당신들에게 좋은 것들을 주시고, 백성들에게 어떤 나쁜 것도 다가가지 않도록 지키시기를 빕니다."



 그 이야기를 기쁘게 생각한 알키노오스는 전령에게 말했다.



 "폰토노오스, 희석하는 동이에 술에 물을 타서 모든 이들에게 따라드려라. 먼저 위대한 제우스께 기도를 올리고 나서 나그네를 고향 땅으로 호송하도록 할 테니까."



 모두가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포도주를 받고 앉은 자리에서 신들을 향해 술을 올렸다. 오딧세우스는 일어나 술잔을 왕비 아레테의 손에 꼭 쥐여주며 말했다.



 "부디 안녕하시기를, 왕비님! 모두에게 찾아오는 노년과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평생 말이죠. 나는 이제 돌아가지만, 그대는 이 집에서 자식들과 백성들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며 사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고 오딧세우스는 문턱을 넘었다. 알키노오스의 명을 받은 전령이 날랜 배가 있는 바닷가로 그를 인도했다. 뒤따른 담당자들은 각자 마실 것, 먹을 것을 지체 없이 받아서 배 안에 들여놓았다.



 오딧세우스는 말없이 누웠다. 사공들이 몸을 뒤로 젖히며 노를 젓는다. 그러자 부드러운 잠이 오딧세우스의 눈꺼풀 위에 내렸다. 배는 바다의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 재빨리 달렸다. 밤이 지나 새벽의 여신이 빛을 주려고 달려오는 그 순간,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섬에 다가가고 있었다.



 이제 바다를 달리던 배가 멈추고, 절반이나 뭍으로 올라갔다. 뱃사람들의 손은 그만큼 힘찼다. 먼저 곤히 자는 오딧세우스를 담요째 들어내 잠에 굴복한 그를 모래 위에 살포시 뉘었다. 그들은 나그네가 받은 재물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혹시 길 가던 누군가가 오딧세우스가 깨기 전에 재물들을 슬쩍하면 곤란하니 길에서 조금 떨어진 무화과나무 밑동 옆에 조용히 쌓아 두었다.



 한편, 바다에서 대지를 뒤흔드는 포세이돈은 그 모습을 끝까지 두 눈으로 보고 있다가 제우스에게 이야기했다.



 "제우스여! 이제 나는 더 신들 사이에서 존경받지 못할 것입니다. 나로부터 비롯된 저 파이아케스족이 나를 조금도 존경하지 않으니 말이오. 저들은 오딧세우스를 바다 위로 날라 이타케에 내려놓았을뿐더러, 그에게 온갖 선물을 선사했군요. 혹시 그가 자기 몫의 전리품을 챙겼다 해도 트로이 인들의 땅에서 저렇게 많이 받진 못했을 거요!"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제우스가 고개를 내저으며 황급히 말했다.



 "무슨 소리를! 절대 신들이 그대를 업신여길 일은 없소. 혹시 인간 중에 누가 그대를 존경하지 않으며 자기의 힘과 완력을 맹신한다면, 그대는 언제나 나중에라도 벌을 주곤 했지. 그러니 이번에도 그대가 원하는 그대로 하시오!"



 그러자 흡족해하며 바다의 신은 말했다.



 "좋소. 나는 그대가 말한 대로 당장 할 것이오. 저 파이아케스족의 아름다운 배를 부숴버릴 것이오. 앞으론 저들이 자제하며, 사람 호송하기를 그만두게 하기 위해선 이 방법을 사용해야겠으니 말이오."



 조금 난처한 기색으로 제우스는 대꾸한다.



 "아, 내 마음에는 이것이 더 좋아 보이는데... 어떨지... 다가오는 배를 모든 백성들이 쳐다보고 있을 때 육지 바로 가까이서 돌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오. 그러면 그대가 그들의 도시를 큰 산으로 둘러싸는 꼴이 되지 않겠소?"



 대지를 흔드는 포세이돈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파이아케스족의 땅으로 갔다. 큰 배는 마치 산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말했다. 그때 알키노오스가 신탁을 기억하며 탄식했다.



 "아아, 참으로 내 아버지의 옛 신탁이 나를 따라왔구나. 그분은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안전히 호송한다고 해서 포세이돈이 언젠가 우리에게 격노하실 것이라 했소. 그래서 언젠가 신께서 돌아오는 우리의 배를 산산조각 내시고, 우리 도시를 큰 산으로 둘러싸실 것이라 했소. 오늘 그 말이 이뤄졌소. 그러니, 여러분은 내 말을 들으시오. 이제 그대들은 호송하는 일을 멈추시오. 그리고 혹시 포세이돈이 우리를 다시 보시고 자비를 베푸시도록 황소 열두 마리를 잘 골라 바칩시다!"



오딧세우스는 혼란에 빠졌다.




오딧세우스, 노인이 되다






 한편, 잠에서 깨 주변을 둘러본 귀향자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눈물을 흘렸다. 안개가 가득했기 때문에 20년 만에 돌아온 고향 땅을 알아보지 못하고, 호송을 자처한 자들이 자기를 엉뚱한 곳에 내려준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아, 슬프다! 나는 이 많은 재물을 또 어디로 가져가며 나 자신은 어디로 가야 하지? 아아, 나를 낯선 땅에 버려두다니 파이아케스족의 사람들이 모든 점에서 지혜롭지는 않구나. 모든 잘못을 저지르는 자들을 벌주시는 제우스께서 가만히 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게 한참 저주를 퍼붓고 나서는 받은 선물들 중에 혹여나 빠진 것이 있을까 염려한 오딧세우스는 하나하나 다 세어보았다. 물론, 빠진 것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러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리라.



 ‘여긴 어디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두려움과 불안함이 다시 그를 덮치자 그는 또 통곡을 했다. 그 모습을 귀엽다는 듯 지켜본 아테나는 이번에는 다른 모습, 어린 양치기 소년의 모습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일부러 모른척하며 슬쩍 보이게 지나라는데, 오딧세우스가 말을 건다.



 "ㅇ... 이봐! 여긴 도대체 어느 나라지? 어떤 사람들이 이 곳에 살고 있는지 말해주겠나?"



 몹시 당황하며 말을 더듬는 귀환자를 본 여신은 웃음이 터질 뻔했으나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이곳은 이타케다’ 라고. 그 이야기를 들은 오딧세우스는 마침내 가슴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껏 고생을 해서인지 그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것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여신에게 말이지.



 “ㄴ... 나는 크레테 출신이야. 잘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도메네우스의 아들을 그만 죽이고 말았어... 그래서 재물의 반을 급하게 들고 여기까지 도망쳐 왔지...!"



어디서 약을 팔어?




 이야기를 들은 여신은 오딧세우스의 둘러대는 모습이 가련했다. 그래서 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신이 그대와 만난다 할지라도 그대를 이기기 위해 조금 더 교활해야 하겠구나. 너 오딧세우스, 가혹하며 꾀 많고 계략에 물리지 않는 자여. 그대는 이미 자기 나라에 와 있으면서도 그대가 좋아하는 것들을 놓지 못하는구나. 자, 영리함은 그대나 나나 다 능하니 그런 이야기는 인제 그만두도록 하자. 지금껏 나는 그대를 지켜주었지만, 그대는 아직도 제우스의 딸 아테나를 알아보지 못하였구나. 내가 그대에게 굳이 또 나타난 것은 운명을 말해주기 위함이다. 혹시 누구를 만나든 여자든 남자든 누구에게도 그대가 떠돌아다니다 왔다는 말은 하지 말아라. 그 모든 무시와 행패를 견디고, 많은 고통을 묵묵히 참는 것이 좋을 거야."



 하지만 여신의 말에도 오딧세우스는 또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다. '정말 내가 고향에 왔습니까?' 묻는 남자에게 여신은 안개를 흩어버리고 그의 눈으로 똑똑히 보도록 했다. 포르퀴스의 포구와 나이아데스에게 바쳐진 동굴, 그리고 네리톤 산을 확인하고 나서야 오딧세우스는 눈물을 흘리며 바짝 엎드려 대지에 입 맞추었다.



 여신은 남자가 재물들을 동굴 깊숙한 곳에 숨기도록 돕고, 함께 어머니에게 치근덕댄 구혼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고민했다. 아테나는 오딧세우스에게 말했다.



 "자, 이제부터 정말 힘든 일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대 곁에 있을 것이며, 눈을 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제 나는 그대의 살림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자들은 물론 어떤 인간도 그대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다. 고운 살갗은 노인의 것이 되어 쪼그라들고, 머리에서 금발은 사라지리라. 이제 누더기가 그대의 몸을 감쌀 것이다. 더없이 아름답던 그대의 눈도 흐려질 것이다. 모든 이들에게 추해 보이겠지. 그러면 그대는 먼저 돼지치기에게 가라. 그대의 돼지를 치는 그 자는 그대에게 호의적이며, 가족들에게도 그러했지. 그대는 돼지들 곁에 앉은 그에게 가서 모든 것을 물어보아라. 나는 스파르테로 가서 그대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부르겠다. 가련한 그대의 아들은 지금 아버지의 소식을 찾기 위해 라케다이몬으로 메넬라오스를 찾아갔다."



 그 이야기를 듣지 오딧세우스는 불평하듯 말했다.



 "아니, 대체 왜 그 애에게 다 말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애에게도 저와 같은 운명을 주시려는 겁니까?"



 하지만 빛나는 눈의 여신은 말했다.



 "그 애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거기서 네 아들 역시 빛나는 명성을 얻고 있으니 말이지. 그는 아무런 고통없이 편안하게 아트레우스의 아들 집에 앉아 있다. 물론, 젊은이들은 배를 타고 숨어 그가 돌아오기 전에 죽이기를 열망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기 전에 오히려 그대의 살림을 먹어 치우는 구혼자들이 땅에 묻힐 것이다."



 지팡이가 사내의 몸을 건드리자 여신이 말한 그대로 오딧세우스는 변해버렸다. 여신은 그 위에 날랜 사슴의 털이 다 빠진 큰 가죽을 입히고, 지팡이 하나와 바랑을 주었다. 여신은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어 보이며 오딧세우스의 아들이 있는 라케다이몬으로 날아갔다.





돼지치기를 찾아가다






 "자, 어디보자 몇 마리가 남았나..."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는 우거진 숲 안에서 오딧세우스의 돼지를 돌보고 있었다. 본래 암퇘지 600마리에 수퇘지 360마리였던 것이 구혼자들이 매일 수퇘지를 돼지 같이 먹어 치우는 까닭에 매일 수가 줄어 가뜩이나 할 일이 많은데 ‘오늘은 몇 마리인가’ 매번 숫자를 세는 수고까지 더해진 차였다.



 "어? 누가 여기 왔나?"



 돼지치기는 밖에서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들의 소리에 급히 밖으로 나간다. ‘나오길 잘했구나’ 생각한다. 하마터면 저 꼬질꼬질한 거지 노인은 개들에게 물려 죽을 수 도 있었으니까. '누구십니까?' 묻는 대신 돼지치기는 당황한 노인을 안심시키고서는 말한다.



 "자, 여기 들어오시지요."



 에우마이오스는 오딧세우스를 당연히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이리저리 방황하는 거지이겠거니 생각했다. 마침 살이 토실토실 오른 아기 돼지가 보인다. 안쓰럽지만 손님 대접은 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라며 돼지치기는 아기 돼지를 잡았다.



 고기가 잘 익는 냄새와 소리가 우두커니 앉은 노인의 배를 울리게 만든다. 멋쩍게 웃는 노인을 보고 에우마이오스는 피식 웃는다.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않는 주인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




 "자, 나그네여. 사양하지 말고 잡수시오. 새끼 돼지는 나 같은 하인들이 내놓을 수 있는 음식이지. 살진 돼지는 저 동정심 없는 구혼자들이 하루가 멀다고 먹어 치우니 말이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저 구혼자들은 참으로 비열하오. 아,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비밀... 비밀이니 어디에 가서 이야기하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저놈ㄷ... 저 사람들은 정당하게 구혼하려고도, 고향에 돌아가려고도 하지 않고 있소. 그저 우리 재물을 탕진하며 아낄 줄 모르니 어찌 방탕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소? 아 물론, 주인 나리의 살림은 말할 수 없이 많아요. 아마 본토에서도 그만큼 많이 가진 분은 없을 거요. 스무 명의 재산을 합쳐도 그만큼 많진 않을걸요? 그러니까 얼마나 많냐면... "



  이 돼지치기가 주인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 이 노인, 그러니까 오딧세우스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그는 게걸스럽게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는 자기의 재산을 충실하게 잘 보살피는 자기 심복이었고, 그가 지금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사람은 본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눈은 그 와중에도 이글거렸으니, 구혼자들에게 어떤 재앙을 내릴지 궁리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런 계획도 없다는 듯 순진한 미소를 띠며 그는 물었다.



 “이보시오, 도대체 그렇게 부유하고 강한 분이 뉘시오? 그대는 그분이 아가멤논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고 했는데,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 한번 말해보시오. 나도 많이 싸돌아다녔으니 한 번쯤은 들어봤겠지요.“



 "하하, 노인장! 그대에게 누가 외투나 윗옷 같은 것들을 준다면 그대도 당장 이야기를 지어내겠지요. 하지만, 그분은 개들과 날랜 새들이 벌써 뼈에서 살갗을 찢은 게 틀림없소. 혼백이 그분을 떠났을 거라는 거지. 그분은 그렇게 돌아가셨소. 그리고 모든 친구들은, 그리고 특히 나에게는(여기에서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슬픔만 남았어요. 내가 부모님 집에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분 같이 상냥한 분은 다시 보지 못할 거요. 부모님을 다시 보는 것이 소망이지만, 사실 부모님을 위해서도 나는 그렇게 슬퍼하진 않을 거요. 아, 괜한 말을 했군... 그래요. 나는 그분을 뵌 지 20년도 넘었지만, 나는 오딧세우스, 그분을 늘 ‘나리’라고 부르지요..."



 그에게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오딧세우스는 당장 자기 정체를 밝히고 싶었지만, 오히려 웃으며 돼지치기의 어깨를 두드렸다.



눈 앞에 있는 노인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식사를 대접하는 에우마이오스.



 "이보시오, 그대가 그렇게 말하니 나는 오히려 맹세하며 이렇게 말하겠소. 그 사람, 오딧세우스는 분명 다시 돌아올 거요. 그리고 그가 진짜 돌아온 것을 보거든 내가 알려준 소식에 대한 보수는 그가 집에 도착하는 즉시 나에게 주시오. 그때는 나에게 좋은 옷들을 입혀주시오. 아, 그전까지는 일절 다른 것을 받지 않겠소. 아, 제우스여 이 모습을 보고 계실 테니 우리의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이 모든 일은 내가 말한 그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올해 안에 그는 돌아올 것입니다. 이 달이 기울고 새 달이 차면 그분은 집에 돌아와 아내와 아들을 업신여긴 모든 자들에게 복수할 것이 틀림없지요!"



 돼지치기는 이제 흐르는 눈물을 더는 주체하지 못하고 울며 소리쳤다.



 "아, 노인장! 됐소. 나리께서는 집으로 돌아오시지 못할 거요. 그냥 마음 편히 우리 술이나 마십시다! 다른 일들이나 생각해요. 누가 내게 자상하신 주인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너무나 속상합니다! 주인님을 찾아 떠난 도련님이나 무사히 돌아오셨으면 좋겠군요. 아, 차라리 노인장! 그대 이야기를 들려주시오. 당신이 어떤 고난을 겪으면서 이곳 돼지우리까지 왔는지 말이에요."



 그러자 노인은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자신을 다 밝히진 않았다. 크레데의 부자 출신이며, 자신이 어떤 여행과 경험을 했는지를 쭉 다 늘어놓았다. 출신 성분을 빼놓고서는 오딧세우스가 직접 다 겪은 이야기였다. 이것은 굳이 각색할 필요는 없었다. 돼지치기는 그 주인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심지어 지금 앞에서 모험담을 풀어놓는 이가 누구인지조차 몰랐으니까.



 한편, 그날 밤 아테나는 라케다이몬으로 텔레마코스를 찾아갔다.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잠들지 못하고 밤새 눈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테나는 그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어머니가 마음이 바뀌어 재물을 갖고 집을 나갈 수도 있으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과 ‘구혼자들이 매복하여 있으니 멀리 피해 이타케로 돌아가라. 제일 먼저 돼지치기를 만나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날이 밝자 텔레마코스는 ‘이제 집에 가야 한다’며 메넬라오스의 배웅을 받고 집을 향해 출발했다. 메넬라오스는 전우의 아들이 다 포기하려나 보다 생각했다. 도중에 파라이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퓔로스에 도착했다.



 텔레마코스는 네스토르에게 알리지도 않고 급히 배에 다시 올랐다. 아테나에게 재물을 바치는데 누가 그에게 다가왔다. 멜람푸스의 후손 테오클뤼메노스였다. 그는 사람을 죽이고 도망쳐 오는 중이었는데, 자신을 도와달라고 청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젊은이는 마음이 찡해졌다. 배에 태워 둘은 무사히 이타케에 도착했다. 이제 텔레마코스는 배에서 내려 여신이 말한 대로 돼지치기의 농장으로 곧장 올라갔다. 저 멀리 돼지 농장이 보이고 개들이 반가움에 달려 나와 꼬리를 흔든다. 텔레마코스는 자기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돼지치기에게 묻는다.

부자의 감격스러운 상봉.




텔레마코스가 오딧세우스를 알아보다





가만히 보니 못 보던 노인이 앉아 있다. 오딧세우스는 가만히 자기 아들을 쳐다보았다. 셋은 말 없이 식사를 마쳤다. 텔레마코스는 처음 보는 노인의 사정을 돼지치기로부터 전부 듣고 나서 난색을 보였다. 지금 구혼자들이 집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어서 누구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는 이유였다.



 텔레마코스는 식사를 마친 돼지치기를 집으로 보내 어머니에게 아들이 왔다고 알려줄 것을 부탁했다. 에우마이오스가 시내로 떠났을 때, 아테나의 지팡이가 노인의 어깨를 살포시 건드렸다.



 "제우스의 후손, 라에르테스의 아들아, 이제는 그대의 아들에게 말할 때가 되었구나! 그대들 두 사람은 구혼자들에게 내릴 죽음과 죽음의 운명을 궁리하고 이름난 도시로 가라. 자, 나도 싸우기를 열망한다. 멈추지 마라!"



 그러자 노인의 살갗은 다시 가무스름해졌다. 두 볼이 팽팽해졌고 턱 주위에 짙은 수염이 돋았다. 깜짝 놀란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보고 놀라며 혹시 신이 아닐까 두려워 시선을 돌리고는 말했다.



 "아, 나그네여, 그대는 분명 신들 중 하나인 것이 틀림 없습니다. 제물과 황금 선물을 바칠터이니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그러자 오딧세우스는 망설이지 않고 사실을 말했다.



 "아니, 나는 신이 아니다. 왜 나를 신이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네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네 아버지다!"



 아들에게 입을 맞추며 눈물을 쏟아냈다. 참을 수 없었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텔레마코스는 그가 자기 아버지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정말 살아 돌아온 아버지가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 봤으니 그럴만 하지...




 "그대는 내 아버지가 아닙니다! 다만 내가 더 슬픔에 빠지도록 어떤 신이 나를 홀리시는 것이겠지요. 신은 원하기만 하면 힘들이지 않고 인간을 젊게 또는 늙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요. 당신은 방금 전에 노인이었는데, 지금은 하늘에 사는 신들과도 같군요!"



 아버지는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텔레마코스야! 네 사랑하는 아버지가 여기 와 있는데 지나치게 이상히 여기거나 놀라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이제 다른 오딧세우스는 또 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네가 본 모든 일은 여신 아테나의 작품이다. 그분은 그럴 능력이 있기에 원하는 그런 사람처럼, 때로는 거지로, 또 다른 때는 몸에 좋은 옷을 입은 젊은이처럼 사람을 보이게 하신단다. 그것이 신에게는 매우 쉬운 일이니까."



 이렇게 말하고 다시 앉는 아버지를 더 부정하지 않고 아들은 끌어안는다. 둘은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동안 돼지치기는 페넬로페에게 텔레마코스가 무사히 돌아왔음을 말해주었다. 구혼자들은 여전히 도련님을 죽일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아, 너무 잘되었습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텔레마코스가 그만 죽었다면 나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을 테니까요."



 교활한 안티노오스는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페넬로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돼지치기는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다시 농장으로 돌아왔다. 다시 노인의 모습으로 변한 아버지는 아들과 몰래 눈빛을 주고받으며 편안한 밤을 보냈다.


 여기까지가 드디어 고향 땅을 밟고 본격적으로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오딧세우스의 두 번째 이야기다. 지금까지의 서사를 읽은 당신은 아마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생각보다 그의 귀향이 험난하다고.



 물론, 그렇다. 사실 앞선 이야기에서 신들이 거듭 이야기하는 것처럼, 오딧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갈 운명’이다. 하지만, 그 일이 쉽다고는 하지 않았다.



 기껏 사람들의 도움으로 코앞까지 왔는데, 20년 만에 와서 그랬는지, 정작 자기가 다스리던 그 땅이 여기가 맞는지 알아보지 못한다. 태도는 돌변해 그를 여기까지 데려온 고마운 사람들을 저주하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에서 찾아온 여신에게 ‘용기를 주신다면 나는 삼백 명의 남자와도 싸우겠습니다’ 이야기하지만, 그녀는 이 중년의 힘 센 남자를 대머리 노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쩌면, 오딧세우스 자신이 키클롭스의 동굴에서 자신을 소개한 것처럼, ‘아무도 아니’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의 아들은 커녕, 자신을 잘 따랐던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방랑하는 거지 노인인 줄로 착각했으니까.


아니, 왜 하필 거지냐고...



 어떤 사람들은 오딧세우스의 모습을 이렇게 해석한다. 저승을 다녀온 오딧세우스는 소위 말해서 ‘초기화’된 상태이며, 그렇기 때문에 아주 천한 거지로부터 왕으로 자기 지위를 높여가는 것이 이후 작품의 이야기라고.



 물론, 이 이야기를 반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혹시 이렇게 물을 순 없을까? ‘여신은 왜 오딧세우스를 거지 노인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을까?’






집,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곳





  오딧세우스를 연구한 사람들 중의 일부는 이러한 장치를 통해 저자가 이야기의 결말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노렸다고 말한다. 이야기가 갑자기 너무 쉽게 끝나면 재미가 없으니 최대한 길게 늘여놓았다는 것이다.



 글쎄, 그 이야기도 사실 나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여신은 ‘너와 함께 있겠다’고 말했으며, 구혼자들을 해치우는 일을 돕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신은 오딧세우스에게 거지 노인의 옷을 입혔다. 어쩌면 당신은 '왕의 옷을 입는 것이 문제 해결에 더 도움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거지 노인의 옷을 입고 늙은이의 모습을 함으로서 오딧세우스, 그는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땅’에 섰다. 무슨 말이냐고? 잘 생각해보라. 그가 돼지치기에게 갔을 때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는 별 말도 없이 그냥 돼지를 잡아 요리를 해주었다.



 나는 지금 돼지치기가 자신을 찾아온 그 사람이 자기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봤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알아보지 못했다. 주인이 입은 누더기에 완전히 속아 그가 그저 돌아다니는 거지 노인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이점이 중요하다. 생각해보라, 오딧세우스가 왕의 옷을 입고 위엄 있게 돌아갔다면, 그를 알아보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오히려 거지꼴을 하고 들어간 그 자리에서. ‘아무도 아니’의 옷을 입고 선 자신의 땅에서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돼지치기에게 오딧세우스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확언받게 된다. 아들을 만나 부둥켜안으며 울게 되는 것 역시 바로 그 자리에서였다.


뭐, 꼭 이런 집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집이란 그런 곳이 아닐까? 어떤 존재가 되지 않아도 되는 곳. 나의 직책이나, 성과로 나를 판단하지 않는 곳, 넥타이를 바로 매지 않아도, 셔츠 단추를 똑바로 잠그지 못해도 그것 따위는 상관 없는 곳.



 아, 너무 복잡하다. 한 마디로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바로 그 곳’ 그래, 이게 좋겠다. 집이 이런 곳이었기 때문에 오딧세우스는 그토록 이타케를 그리워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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