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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Oct 09. 2020

절망이라는 지독한 전염병을 이기려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고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고난 직후

짧게 적은 글입니다.

줄거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추후 감상에 대한 글을 다시 업로드 할 수 있습니다.











‘4월 16일 아침, 나는 진찰실을 나서다
계단 한복판에서 보란듯이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보았다.‘

‘쥐 하나 죽어있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문제는 심각했다. 그건 단순히 쥐 한 마리 죽은 일이 아니라, 전염병이 평범하게 못생긴 프랑스의 도시 ‘오랑’을 덮쳤음을 알리는 소리 없는 총성이었으니까.

마치 2020년의 어느 반도에서처럼, 사람들은 터진 한 가지 사건 앞에서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 중 계단 한복판에서 보란듯이 죽어 있는 쥐 한마리를 목격한 최초의 목격자 의사 ‘리유’의 태도가 나는 퍽 인상 깊었다. 그는 ‘오랑’으로 파견된 기자 랑베르와의 대화 중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러나 역시 이것만은 말해 두어야겠습니다. 즉,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만약 나와 당신의 2020년이 지금과 달랐다면, 그러니까. 마스크가 없는 일반적인 일상이었다면 과연 내가 집어든 페스트는 어떻게 읽혔을까? 별로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문학적 ‘상상력’을 가져와서 말하자면, 굳이 질병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페스트와 마주한 채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며,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고 말했다. ‘낙망으로 청년이 죽고, 민족이 죽는다면 이 역시 페스트만큼, 아니 어쩌면 페스트보다 더 심각한 질병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비단 프랑스의 터진 전염병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 마주하는 모든 절망, 이 지독한 전염병과 싸워 이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성실성’이다. 내가 맡은 일에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

진짜 페스트는 어쩌면 피부를 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시커멓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거 왜 하니? 어차피 실패할건데. 뻔하다, 야!‘ 절망의 가장 좋은 친구는 태만함이다. 페스트가 우리에게 끝없는 패배를 맛보게 하고, 그 후에 태만함은 찾아와 ‘그러니까 그만 둬‘ 말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투쟁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칼이나 총을 들라는 말이 아니다. 보란듯이 우리를 절망에 몰아넣는 저 전염병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패에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그 일을 도전하는 것, 일상에 뛰어드는 것,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을 다시 집어드는 것. 그것이 페스트를 엿 먹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주먹질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지?

카뮈의 페스트는 소설이지만, 페스트가 창궐한 세상은 실제 세계다. 달라진 상황 앞에서 어떤 이는 도피하고 다른 이는 초월하며, 혹은 반항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이길 수 없다. 여전히 일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일상의 일을 성실함으로 이어가는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연대할 때, 연약하지만 ‘우리’는 어떤 페스트던 이길 수 있음을 믿는다. 그래,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결코 관련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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