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고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고난 직후
짧게 적은 글입니다.
줄거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추후 감상에 대한 글을 다시 업로드 할 수 있습니다.
‘4월 16일 아침, 나는 진찰실을 나서다
계단 한복판에서 보란듯이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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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하나 죽어있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문제는 심각했다. 그건 단순히 쥐 한 마리 죽은 일이 아니라, 전염병이 평범하게 못생긴 프랑스의 도시 ‘오랑’을 덮쳤음을 알리는 소리 없는 총성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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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2020년의 어느 반도에서처럼, 사람들은 터진 한 가지 사건 앞에서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 중 계단 한복판에서 보란듯이 죽어 있는 쥐 한마리를 목격한 최초의 목격자 의사 ‘리유’의 태도가 나는 퍽 인상 깊었다. 그는 ‘오랑’으로 파견된 기자 랑베르와의 대화 중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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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역시 이것만은 말해 두어야겠습니다. 즉,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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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와 당신의 2020년이 지금과 달랐다면, 그러니까. 마스크가 없는 일반적인 일상이었다면 과연 내가 집어든 페스트는 어떻게 읽혔을까? 별로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문학적 ‘상상력’을 가져와서 말하자면, 굳이 질병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페스트와 마주한 채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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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선생은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며,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고 말했다. ‘낙망으로 청년이 죽고, 민족이 죽는다면 이 역시 페스트만큼, 아니 어쩌면 페스트보다 더 심각한 질병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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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프랑스의 터진 전염병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 마주하는 모든 절망, 이 지독한 전염병과 싸워 이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성실성’이다. 내가 맡은 일에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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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페스트는 어쩌면 피부를 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시커멓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거 왜 하니? 어차피 실패할건데. 뻔하다, 야!‘ 절망의 가장 좋은 친구는 태만함이다. 페스트가 우리에게 끝없는 패배를 맛보게 하고, 그 후에 태만함은 찾아와 ‘그러니까 그만 둬‘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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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투쟁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칼이나 총을 들라는 말이 아니다. 보란듯이 우리를 절망에 몰아넣는 저 전염병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패에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그 일을 도전하는 것, 일상에 뛰어드는 것,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을 다시 집어드는 것. 그것이 페스트를 엿 먹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주먹질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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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페스트는 소설이지만, 페스트가 창궐한 세상은 실제 세계다. 달라진 상황 앞에서 어떤 이는 도피하고 다른 이는 초월하며, 혹은 반항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이길 수 없다. 여전히 일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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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일을 성실함으로 이어가는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연대할 때, 연약하지만 ‘우리’는 어떤 페스트던 이길 수 있음을 믿는다. 그래,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결코 관련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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