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리뷰
* 스포일러 주의
“사실 네 아빠 말이야...”
드디어 올게 왔다 싶었다. ‘너 사실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라는 말에 울 나이는 지났지만, 차라리 그게 사실이라면 어땠을까. 료타와 미도리, 유다이와 유카리. 두 부부에게 일어난 일처럼 나와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났다던 내 친구와 내가 사실 바뀐 게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를 시작하고 한 달이 막 지난 목요일. 토익 시험 점수를 확인하는 날이다. RC와 LC에서 각각 얼마가 나왔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함께 점수를 확인한 담임 선생님은 나보다 더 흥분해서는 “오늘 야자는 안 해도 되니 부모님과 맛있는 걸 먹어라.” 하셨다.
“만점이 몇 점인데?”
상기된 얼굴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점수를 담담히 말하고 다시 아버지의 질문에 대답을 하자, ‘나머지 90점은 어디 갔냐’며 무심하게 전화를 끊으셨다. 더 이상 짜장면을 먹을지 치킨을 먹을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날 저녁 외식은 없었다.
이틀이 지났다. 아버지는 토요일인데도 출근을 하셨고, 나와 어머니만 집에 있었다. “엄마, 나 목요일에” 하고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어머니가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네 아빠 말이야...”
‘사실은 네 아빠도 그렇고 나도 네 부모가 아니란다. **이와 네가 바뀐 거란다. 이제야 말해서 미안하구나.’라는 말 대신 어머니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내가 왜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를 사진으로 밖에 본 적 없는지. 명절 때나 아버지 여름휴가 때 간 강릉 큰아버지 댁에서 왜 아버지가 그렇게 큰아버지를 어려워했는지.
“사실 네 아빠 말이야... 어렸을 때 사랑을 거의 못 받고 자랐어. 그래서 표현을 못하는 거야.”
아버지는 몰랐던 거다. 내가 주워 온 자식이라거나, 바뀐 자식이어서가 아니었다. 늦둥이었던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떠나보내야 했다. 충분히 받지 못했으니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던 거다.
내 아버지가 그랬듯 료타 역시 아들이었다. “케이타, 넌 분하지 않아?” 피아노를 제대로 치지 못하는 아들에게 무심하게 내던지는 료타의 말에는 “3년이나 지났는데, ‘상냥한 꽃’ 밖에는 칠 줄을 몰라.” 꼬장꼬장한 말투의 아버지가 들어 있었다.
료타는 카메라 속 케이타가 찍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아들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자신 역시 케이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는다.
“아빠는 아빠가 아냐.”
그제야 료타는 케이타에게 달려갔지만, 아버지에게 ‘아빠가 아니라’며 노골적으로 서운함을 드러내는 케이타에게 “그렇지? 아빠도 피아노 하다 그만뒀어.” 라며 안아준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우리는 모두 ‘되는 중’이다.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아들이 되고, 아버지가 된다. 원래 자식이고, 부모인 사람은 없다. 모두 ‘된다’ 그래도 된다. 괜찮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버지와 이 영화를 함께 보고 싶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그랬어. 미안해.’ 유튜브에서 보았던 한 어머니의 모습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그렇게 말해야 할 판이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빠.’라고 말이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아들이 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부전자전, ‘Like Father Like Son’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