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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Aug 30. 2020

사실 문학은 ‘달팽이 똥’이야.

쓴다는 것, 문학에 대하여


 오늘은 카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4시간 정도를 앉아 내리 글을 썼다. 써야 할 글을 마무리하고 나니 그제야 밖이 보인다. 통유리 너머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산이 이리저리 휘청인다. ‘아, 비만 내리는 것이 아니구나.’


 시계를 본다. ‘THU 23’이라고 표시된 오늘 날짜가 눈에 들어온다. ‘벌써 7월 말이야?’ 오늘이 7월 언제쯤이라는 것을 가늠하고 나니 그제야 ‘비바람’이 치는 바깥이 납득이 된다.


나는 변덕스러운 사람이지만, 꾸준한 사람이다.

 나는 꾸준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비 오는 날씨가 참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비 오는 날의 습함이 싫었다. 만원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다른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밀착했을 때 피부로 느껴지는 그 불쾌함을 굳이 다른 사람과 마주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비 오는 날씨를 기피하게 했다.

 유년시절 이런 날씨 속 나의 유일한 유희는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겐 끔찍한 ‘유괴’였다. 아, 안심해라. 나는 지금 공소시효가 지난 후 내 범죄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한결 같이 싫어하는 그 날의 습기가 땅을 덮으면 평소에 보지 못했던 손님들이 나타난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일찍이 이룬 부러운 존재들, 달팽이다.

달팽이는 퍽 정직한 생물이다.

‘주택 마련’을 태생부터 해결한 그들에 대한 질투는 아니었지만, 철없던 꼬마였던 나는 꼭 비 오는 날 밖에서 그들을 ‘유괴’ 해오곤 했다. 아, 그래도 나는 그들을 데려온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은 기꺼이 졌던 교양 있는 어린이였다. 적어도 그들에게 마실 물과 먹을 채소들은 주었으니까.

 놀라운 것은 퇴근하신 아버지가 내가 ‘유괴범’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발휘하여 이 작은 존재들에게 어떤 일용할 양식을 주었는지 대략 알고 계셨다는 점이다. 어렸던 나는 깜짝 놀라 아버지에게 ‘그걸 어떻게 아셨느냐’고 물었다.

 아버지의 대답은 간단했다. ‘똥을 보고 안다.’고. 혹시 당신은 아는가?(부디 이 글을 읽는 것이 식사 직전은 아니길 바란다.) 달팽이는 빨간 채소를 먹으면 빨간 똥을 싸고, 초록 채소를 먹으면 초록 똥을 싼다는 것을. 이런 점에서 달팽이는 퍽 솔직한 존재이다. 창조주가 그들에게 ‘주택 마련’의 특권을 일찍이 부여한 것은 이런 까닭일까?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글을 많이 쓰는 편이다. 누군가는 글에 대해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말을 한다. “사실 문학은 ‘달팽이 똥’이야.”

문학은 ‘달팽이 똥’이다.

 글쓰기란 무엇일까? 글이란 무엇이고, 문학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문학에 대해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라고 말했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문학 행위’를 ‘예술’의 위치에 올려놓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문학은 인간의 모든 수단을 통해 나오는 생각과 글, 말과 행동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행위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이다. 빨간 것을 먹으면 빨간 것이 나오고, 초록색 무언가를 먹고 초록색의 다른 것을 배출하는 달팽이처럼 한 사람의 ‘문학’을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섭취했는지, 다시 말해 무엇을 듣고, 읽고, 생각했는지 볼 수 있다.

 나는 지금 ‘좋은 것을 먹고, 듣고, 읽고, 생각해라!’ 따위의 주장을 종용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좋다’라는 것은 상대적일 수 있지 않은가? 만약 그렇지 않을지라도 나는 무엇인가를 강요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문학은 ‘달팽이 똥’이다. 지금 당신이 읽고, 듣고, 생각하는. ‘섭취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당신의 ‘문학활동’을 통해 표출된다. 그렇다면, 오늘 당신은 무엇을 ‘섭취’ 할 것인가?

 부디 자유롭게 모든 것들을 ‘섭취’하시라. 다만, 그것을 다시 뱉어 낼 때, 어떤 형태이던 주의를 기울여 ‘배출’하시기 위해 잘 ‘소화’ 하시라.

문학은, 쓰는 일은 ‘달팽이 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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