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돼지 (紅の豚, 1992)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이 작품에는 중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꿈과 로망이 잔뜩 담겨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구형 비행기, 총, 돼지(미야자키 하야오는 종종 스스로를 돼지로 표현하곤 함.) 등등...
미야자키 하야오는 <붉은 돼지>를 “삶에 찌들어 뇌가 두부가 되어버린 중년 남성들을 위한 만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애니메이션은 상영 내내 잘생기지도 않고 배만 볼록 나온 돼지가 끊임없이 멋을 부립니다. 이 작품은 소위 말하는 ‘멋’, ‘후까시’, ‘로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애니메이션이지요.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드물게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에게 더 사랑을 받은 애니메이션이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아드리아해(海)가 중심입니다.
영화 첫 머리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디자인 한 ‘니혼테레비(日本テレビ)’의 마스코트 “난다로우”가 나와 우리나라 말을 포함한 10개 국어로 작품의 배경에 대해서 설명해줍니다.
이러한 배경이다 보니, 동양권보다는 서양권에서 더 큰 인기와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럼 줄거리를 살펴볼까요?
붉은색의 비행기를 타고 공적(空賊)들을 잡으며 현상금 사냥꾼으로 살아가는 돼지 포르코 롯소는 전부터 대립하던 맘마 유토단이 꼬마 여자아이들이 탄 배를 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돕는다. 그리고 그날 밤, 옛 친구 지나가 운영하는 호텔 아드리아에 가 커티스라는 우수한 미국인 비행사와 만나게 된다. 커티스는 포르코에게 늘 당하기만 했던 공적들이 고용한 비행사였다.
낡은 비행기의 수리를 위해 포르코는 밀라노로 가던 중 커티스와 조우하고 격추당한다. 걱정하는 지나에게 안부를 전한 포르코는 고장 난 비행기를 전부터 알던 피콜로사(社)에 가져가 수리를 맡긴다. 피콜로사에서 포르코의 비행기 수리를 맡은 사람은 17세의 손녀 피오였는데, 어린 소녀가 자신의 비행기를 수리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던 포르코는 거절하려다 피오의 의지를 보고 결국 비행기의 수리를 맡긴다. 그러나 의욕이 앞선 피오의 설계로 비행기의 수리비용이 너무 높게 나와 곤란함을 느낀다.
비행기가 수리되는 동안 밀라노에서 옛 전우를 만나 국가권력도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포르코는 그날 저녁 밀라노를 탈출하려고 계획한다. 그리고 포르코는 거세게 반대하였지만 그 비행에 메카닉으로서의 책임을 느끼는 피오도 동행한다.
한편 커티스는 지나에게 할리우드로 넘어가 배우를 할 것을 제안하지만, 지나는 포르코에 대한 연심을 드러내며 이를 거절한다. 자신이 거주하는 섬으로 돌아온 포르코는 잠입하고 있던 공적들에게 둘러싸이게 되며, 커티스와의 재대결을 하게 된다. 대결의 상품으로 커티스는 피오와의 결혼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에 피오는 포르코가 승리할 경우 그의 비행기 수리 비용을 커티스가 지불하는 것으로 한다.
둘의 재대결은 공적들의 주최로 도박과 함께 열렸으나, 결국 공중전으로는 승부를 보지 못하고 주먹다짐으로까지 이어지게 되고 더블 K.O. 가 된 상황에서 포르코는 지나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겨우겨우 승리하게 된다.
붉은 돼지의 원래 제목은 紅の豚, 영문 제목은 Crimson Pig입니다.
“붉은”이라는 의미에 赤이 아니라 紅을 썼고, 영어로도 Red가 아닌 Crimson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즉 새빨간 돼지가 아니라 진홍빛의 돼지라는 것입니다.
아마 포르코가 젊고, 사람이었을 때는 Red라는 색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만 극 중의 포르코는 더 이상 순수하게 빨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나간 세월만큼, 나이만큼, 또 전쟁이 끝나버린 세상만큼 조금은 탁해진 진홍빛이 그에게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
<붉은 돼지>의 스폰서에는 JAL(일본항공)이 껴 있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붉은 돼지>는 JAL의 기내 상영용으로 제작이 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들다 보니 상영시간이 늘어나 극장 작품으로 변경된 것이었죠. 그래서 극장 상영보다 먼저 JAL 기내에서 상영되었습니다. 지금도 상영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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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아리에티> 제작 발표 시의 인터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붉은 돼지의 속편을 제작하고 싶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더 이상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지브리이지만, 언젠가 <붉은 돼지>의 속편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습니다.
+++포르코의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들
본문의 이미지들은 상업적 목적으로 쓰이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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