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下淸, 1922~1971)
나는 방랑을 하던 시기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돌아다녔던 것이 아니에요. 아름다운 경치와 신기한 물건을 보는 것이 좋아서 걸어 다녔어요. 그림은 집에 돌아와서 천천히 생각하면서 그렸어요. / by 야마시타 키요시
세 살 배기 아이가 밥을 먹다 중증의 소화불량에 걸려 죽을 위험에 빠졌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목숨을 건졌지만 그 후유증으로 언어장애와 지적장애를 얻게 되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그 장애로 인해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급기야 아이는 왕따를 못 이겨 반 친구를 연필 깎는 칼로 큰 부상을 입혔고,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사회 장애 아동 시설에 보내게 됩니다.
아이는 이 시설에서 종이공예를 알게 되었고 무척 몰입하게 됩니다.
이것이 야마시타 키요시와 그의 작품 기법인 종이공예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지적장애가 있던 키요시는 18세까지 시설 생활을 하다 불현 듯 방랑여행을 떠납니다.
그의 방랑여행 기간은 1940년부터 1954년까지 14년간으로 시기적으로 당시의 일본은 전쟁 중이었습니다.
폭력을 싫어하고 적에 의해 죽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 키요시는 징병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방랑을 하게 되었다고 그의 일기에서 말합니다. 하지만 3년간의 방황 후 어머니가 살고 있는 신주쿠에 돌아갔다가, 결국에는 어머니에 의해 징병 검사장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가진 장애로 인해 결국 면제가 됩니다. 아니, 이럴 거면 왜...;;)
이로 인해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된 키요시는 다시금 방랑의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추울 땐 남쪽으로, 더울 땐 북쪽으로. 키요시는 말 그대로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며 일본 전역의 불꽃놀이를 찾아다니게 됩니다.
키요시는 특히 불꽃놀이를 좋아하여 자신이 본 광경을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방랑 중 어딘가에서 불꽃놀이를 한다고 하면, 그 곳이 어느 곳이든지 반드시 발길을 돌려 불꽃놀이를 보고 당시의 감동을 그대로 작품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 가운데에는 유난히도 불꽃놀이를 담은 장면이 많습니다. 키요시의 화려한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일본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를 바로 눈 앞에서 보고 있는 듯하지 않나요?
야마시타 키요시는 비록 지적장애와 언어장애가 있었지만 그와 함께 엄청난 기억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불꽃놀이를 보고 난 후에 적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간의 방황을 거친 후 다시금 집으로 돌아와 그 엄청난 기억력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키요시를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먼처럼 학자 증후군 (Savant syndrome)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자유로운 방랑벽과 그로 인한 작품 제작은 방랑이 끝나고 2년 후인 1956년에 ‘야마시타 키요시展’을 시작으로 일본 전국에서 순회 전시가 약 130여 회 정도 열리게 되면서 불꽃처럼 화려하게 피어오르게 됩니다. 당시에 관객수만 500만 명을 넘어서는 대 성황을 이뤘으며, 워낙에 유명한 전시가 되어 황태자가 방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키요시는 그의 작품의 기법적 특색과 14년간 봇짐 하나를 들고 전 일본을 방랑한 기행(奇行)으로 인해 ‘일본의 고흐’ 혹은 ‘벌거벗은 장군’이라고 불렸습니다. 확실히 색을 짧게 끊어서 나열하는 키요시의 화법은 확실히 인상파-쇠라-고흐를 연결하는 점묘법과 닮아있다고도 보입니다.
또한 어찌 보면 작품 활동에 있어서 걸림돌이라고 여길 수 있는 그의 지적장애는 오히려 그의 작품에 있어서 마치 어린 아이의 그림을 보는 듯한 순수한 기분이 들게도 해줍니다. 누구나 축제를 즐길 땐 어린 아이처럼 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를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은 불꽃놀이를 그리는 화가에게 있어서 가장 강점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지적 장애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불꽃놀이를 좋아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순둥이 바보 아저씨가 알고 보니 천재 화가였다!라는 소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키요시의 이러한 삶은 드라마로, 또 영화로 그려져 일본의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국 내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키요시는 스스로 몸담고 있던 화단이 없었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크게 연구되어지진 않은 화가입니다. 그렇지만 야마시타 키요시의 작품이라는 불꽃의 잔영은 한 번 보게 되면 영원히 머릿속에 남아있게 된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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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요시의 다른 작품들을 조금 더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