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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언 Dec 10. 2015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 그러나 너무나 고루한 스토리

가구야 공주 이야기 (かぐや姫の物語, 2013)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이웃집 야마다 군> 이후 14년 만에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는 파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8년의 제작기간과 50억 엔이 훌쩍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입니다. 이 제작비는 일본 영화 가운데 역대 최고의 금액입니다. 다만 흥행에 성공을 하지 못해 제작비의 절반도 회수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지브리는 커다란 금전적 타격을 입습니다.


하지만 흥행과는 상관없이 영화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영화의 내용에 실망한 관객일지라 하더라도 그 색감이나 일본 전통 화풍의 붓터치가 느껴지는 작화, 히사이시 조의 OST에는 극찬을 합니다. 영상미가 너무 뛰어나 일본의 유명 미술잡지인 <미술 수첩>에서 표지 기획으로 다루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브리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기도 하였죠.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이전 작품인 <이웃집 야마다 군>에서 보여준 수작업풍의 그림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배경과 인물이 하나가 돼서 한 컷 한 컷이 마치 일러스트 같습니다. 말 그대로 그림이 움직인다는 느낌을  극대화시켰지요. 아마 애니메이션을 공부하신 분이라면 이게 얼마나 엄청난 작업인지 아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이토록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마저 살려내지 못한 내용을 보시죠.


옛날 옛적 산에서 대나무를 잘라서 생계를 유지하던 노부부가 있었다. 대나무를 베던 노인이 빛나는 죽순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사람 손만큼 작은 여자아이가 나온다. 노인은 하늘이 아이가 없는 자신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여자아이를 집으로 데려가 부인과 함께 키운다. 작은 소녀는 금방 인간의 갓난아이로 변하고 아이는 마치 대나무순처럼 매 순간순간이 다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동네 아이들은 여자아이에게 대나무순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고 대나무순은 금방 소녀로 성장하게 된다. 대나무순은 동네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 가운데에는 자신을 잘 챙겨주는 스테마루라는 소년이 있었고 대나무순은 스테마루에게 자신도 모르게 연심을 품는다.
한편 대나무순의 노부(늙은 아버지)는 대나무를 베다가 또다시 빛나는 대나무를 발견하여 그 속에서 금을 비롯한 옷감 등을 발견해낸다. 노부는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대나무순을 수도로 데려가 훌륭한 아가씨로 키워 귀족 집안에 시집을 보낼 결심을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새 훌쩍 커버린 대나무순은 어느새 어엿한 소녀가 되었고, 노부부는 그런 대나무순과 함께 수도로 향하게 된다.
수도에 가게 된 대나무순은 가마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살며, 시종과 궁에서 온 사가미라는 예법 선생님까지 얻게 된다. 처음에는 넓은 저택에서 사는 것을 기뻐한 대나무순이었지만 이내 사가미와의 엄격한 예법 공부로 인해 힘들어한다. 시간이 지나고 대나무순이 자라 초경을 시작하자 노부는 잔치를 벌이고 대나무순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높은 분을 초대한다. 그리하여 대나무순은 가구야 공주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노부부는 이름을 받은 가구야 공주를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열지만, 가구야 공주는 별채 한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게다가 계속된 잔치로 인해 술에 취한 손님들이 자신과 노부에게 폭언을 하여 그 길로 저택을 뛰쳐나와 어렸을 적 살았던 산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산에는 자신과 함께 놀던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근처의 숯장수에게 그들은 10년 후에나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의에 빠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꿈이었다. 이후 가구야 공주는 허탈한 마음에 마치 사람이 변한 것처럼 눈썹을 뽑고, 얼굴을 하얗게 분칠 하고, 이를 검게 물들인다. 그리고 예법 공부를 하며 혼자서 조용히 지내게 된다. 그러나 가구야 공주의 미모는 날로 소문을 더해 저택에는 가구야 공주를 신부로 맞이하고 싶어 하는 남자들의 선물과 편지들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던 가운데 소문을 들은 5명의 높은 귀족이 가구야 공주를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 앞 다투어 찾아간다. 하지만 가구야 공주는 시집을 갈 생각조차 없었다. 그래서 가구야 공주는 자신을 각종 보물에 비교한 그들에게 그들이 직접 언급한 보물을 가지고 오는 사람과 혼례를 올리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이후 다섯 명의 귀족들이 집 밖으로 나가자 저택 앞에서 청혼을 하던 여러 무리들은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가게 된다. 그리고 한산한 틈을 타 가구야 공주는 화장을 지우고 꽃놀이를 간다. 가구야 공주는 커다란 벚나무를 발견하고 그 아래에서 떨어지는 꽃을 맞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과 부딪힌  어린아이의 부모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거리의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스테마루와 마주친다. 스테마루는 가구야 공주를 보고 한눈을 팔다가 잡혀서 두드려 맞고 가구야 공주는 이 모습을 보고 더욱 슬퍼한다.
그로부터 3 년 여의 시간이 지나고 가구야 공주의 앞에 보물을 가지고 왔다는 귀족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녀를 가지기 위해 속여서 만든 가짜 보물이었다. 또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보물을 구하려던 중 사고로 죽어버리게 되고 그 일로 인해 가구야 공주는 슬픔에 휩싸인다.


그 가운데 왕의 귀에까지 가구야 공주의 소문이 들어갔고, 왕은 가구야 공주를 궁으로 불러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구야 공주는 왕의 제안을 거절해달라고 하고 그것이 안 된다면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몰래 가구야 공주의 집에 침입하고 그녀를 억지로 끌고  가려한다. 하지만 가구야 공주는 마치 유령이 된 것처럼 왕의 품에서 빠져나오고 왕은 그녀에게 겁을 먹고 궁으로 돌아간다.
이 일 이후 가구야 공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달만 바라보며 살게 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노부부가 그 이유를 물어보자, 가구야 공주는 자신이 달에서 내려온 천녀이며 이번 8월 15일에 달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 원인은 혼인 자리를 알아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워 마음속으로 더 이상 이곳에는 있고 싶지 않다고 달에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가구야 공주는 이내 후회하고 달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후 노모는 가구야 공주를 예전에 살던 산으로 여행을 보내고 가구야 공주는 그 곳에서 이미 결혼을 하여 아이까지 가진 스테마루를 만나게 된다. 스테마루와 서로의 연심을 확인한 가구야 공주는 이제 자신은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가구야 공주에게 스테마루는 자신과 함께 도망가자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가구야 공주는 스테마루와 잠시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저택으로 돌아온다.
마침내 8월 15일이 되고 달에서 가구야 공주를 데리러 왔다. 노부는 가구야 공주를 데려가지 못하게 저택 주위에 무사들을 경비원으로 두는 등 여러 장치를 하였지만 이를 막을 순 없었다. 결국 가구야 공주는 노부부에게 울면서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천녀는 가구야 공주에게 지상에서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게 하는 달의 날개옷을 입혀버리고 그녀를 데려가 버린다. 하지만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가구야 공주는 달로 돌아가는 길에 일순 기억을 찾은 듯한 모습으로 뒤를 돌아보고 눈물을 흘린다.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이 되는 <타케토리 이야기>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대략적으로 9~10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하지요. 이 이야기는 <설국>으로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998년에 지금의 일본어로 번역하여 출간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나 옛날이야기를 굳이 완벽하게 살려놔야만 했을까 의문이 듭니다. 1000년도 전에 지어진 이야기가 지금도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요? 너무 안일한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디즈니처럼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는 결말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됩니다. 전 세계에 <타케토리 이야기>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말이죠. 엔딩만 조금 각색했어도 분명 수익이 훨씬 올랐을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인어공주마저 해피엔딩으로 바꿔버리는 디즈니의 각색은 칭찬만 할 수는 없지만 누구에게나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행복한 스토리는 상업적인 애니메이션의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 크나큰 강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정말 천 년 전 인물상이 나오지요. 특히 가구야 공주의 노부는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분명 가구야 공주를 사랑하고 그녀를 위한 일이기는 한데, 어째서 남의 행복을 자기 기준으로 멋대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인지... <겨울 왕국>의 엘사가 보면 아마 뒷 목을 잡고 쓰러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천 년 전의 일본은 그런 상황이었다고만 생각해야 할까요?


이 작품에 대해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극찬을 하고 일반인들은 지루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정말로 완벽한 표현입니다. 작화와 기법면으로는 이제까지 나왔던 애니메이션들 중 단연 최고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비록 스토리는 답답할지라도 그 영상미를 보기 위해서 한 번 정도는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작화와 OST만으로 칸 영화제를 간 작품이니까요.




+

산에서 가구야 공주와 만난 스테마루는 같이 멀리 도망가자고 이야기하는데, 이미 그는 애 딸린 유부남이었다는 사실!! 이 무슨 막장 드라마인지...


++

가구야 공주의 미국판 성우는 클로이 모레츠입니다. 하울 크리스찬 베일에 이은 또 다른 놀라움!!


+++

이 작품의 제작 결정 배경에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이웃집 야마다 군>을 너무나도 좋아한 니혼테레비 회장의 “다카하타 감독의 신작을 보고 싶다!”는 의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작품의 완성을 끝내 보지 못하고 2011년 3월에 타계합니다.







본문의 이미지들은 상업적 목적으로 쓰이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오직 작품 소개 및 본문 포스팅을 위해서 쓰였으며, 문제시 즉각 삭제하겠습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저자(황지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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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황지언의 브런치: https://brunch.co.kr/@homoart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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