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거지

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 김지혜 지음

by 김담유

꿈꾸는 거지



자벌레처럼 웅그리고 누워 있네

시청역 지하보도 벤치에 둥그렇게 모여들어

한 벌의 누추한 잠벌레가 되고 있는 사람들

땟국물 흐른 점퍼 위로 또 한 겹의 시간이

내려앉으며 두꺼워지고 있네

죽어버린 것처럼 고요하다네

시꺼먼 알집들

언제 이곳에 도착했는지

언제 이곳을 떠나갈 것인지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관심없다네

지금은

허리를 움직여 끊임없이 옮겨가는

꿈의 주소들이 중요하다네

제 꼬리를 물고 빙빙 도는 다람쥐처럼

자궁이나 성기 쪽으로 고개 구겨 넣고

혼곤히 잠들어버린 벌레들

도르르 말려 올라간 꿈속에

별들이 떠 있나 보네

물병자리에 가득 차 출렁이는

탁주라도 한 잔 걸치는가 보네

혈혈단신 적막한 제 별자리 향해

꾸역꾸역 몰려가는 빈털터리들

죽어버린 것처럼 평안하다네




이전 15화화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