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 김지혜 지음
꿈꾸는 거지
자벌레처럼 웅그리고 누워 있네
시청역 지하보도 벤치에 둥그렇게 모여들어
한 벌의 누추한 잠벌레가 되고 있는 사람들
땟국물 흐른 점퍼 위로 또 한 겹의 시간이
내려앉으며 두꺼워지고 있네
죽어버린 것처럼 고요하다네
시꺼먼 알집들
언제 이곳에 도착했는지
언제 이곳을 떠나갈 것인지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관심없다네
지금은
허리를 움직여 끊임없이 옮겨가는
꿈의 주소들이 중요하다네
제 꼬리를 물고 빙빙 도는 다람쥐처럼
자궁이나 성기 쪽으로 고개 구겨 넣고
혼곤히 잠들어버린 벌레들
도르르 말려 올라간 꿈속에
별들이 떠 있나 보네
물병자리에 가득 차 출렁이는
탁주라도 한 잔 걸치는가 보네
혈혈단신 적막한 제 별자리 향해
꾸역꾸역 몰려가는 빈털터리들
죽어버린 것처럼 평안하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