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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담유 Jul 29. 2022

시인 김지하의 사상으로서의 미학

김지하 전집(전3권) | 김지하 지음

* 故 김지하 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데뷔 초부터 민중색을 강하게 띤 김지하(金芝河) 시인은 1970년 《사상계》 5월호에 담시(譚詩) 〈오적(五賊)〉을 발표하며 그 입지를 굳혀왔다. 권력층의 부패상을 풍자·비판한 이 작품이 같은 해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에 다시 게재되면서 ‘반공위반법’이란 죄목으로 박정희 정권에 의해 체포되고 투옥된 그는 이 사건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고, 그의 민족·민중문학론과 문화론 또한 세계 각처로 송신되었다. 하지만 고생스러운 수배 생활과 영어 생활이 이후 십여 년간 계속되면서 담시를 제외한 작품 활동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은 김지하로 하여금 시인이나 미학자이기보다는 사상가, 사회운동가 나아가 혁명가로서 활동할 것을 요했다.


1980년 12월 석방 후 오랜 칩거와 투병, 그리고 침묵의 세월을 보내던 그가 1998년 ‘율려(律呂)’라는 미학적 테마를 가지고 대중 앞에 다시 선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정치·사회를 중심으로 한 변혁 운동의 선두에 서 있던 그가 이를테면 음악(音樂), 즉 문화로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선포한 셈이니 말이다. 이는 일견 그의 사상에 단절의 마디가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낳지만, 결과적으로 율려 운동은 그가 자주 인용하는 19세기 변혁 사상 ― 김지하가 자주 인용하는 19세기 변혁 사상가들로는 수운 최제우, 해월 최시형, 증산 강일순, 『정역(正易)』을 쓴 일부 김항 등이 있다. 수운과 해월은 동학을, 증산은 증산교를 각각 이끈 이들로, 공통적으로 ‘성통광명’ ‘재세이화’ ‘홍익인간’을 표방하는 한민족 고대 사상에서 유래하는 ‘삼재론(三才論)’을 재해석하고 의미부여했다. 그리고 일부는 19세기 말, 개벽에 따른 지축 정립의 가능성을 역수의 변화에 따라 입증한 최초의 학자 ― 의 원류인 고대 상고사를 재해석하고 되살리는 작업에 다름아니라는 점에서 그에 대한 독해는 좀더 섬세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율려란 무엇인가. 율려는 서양의 12음계와 대비되는 동양적 음악 구조를 일컫는데, 김지하는 우주 질서의 ‘체(體)’를 태극(太極), 또는 황극(皇極)이라 했을 때 그 체의 ‘용(用)’을 율려라고 설명하며, 우주 삼라만상의 생성 변화, 이 모든 것이 바로 우주의 질서, 곧 율려요 율려 세계라고 말한다. 그것을 반영하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음악이고, 이 음악에 가사가 붙으면 시·문학이며, 그것을 율동으로 표현하면 무용이 되고, 또 그것을 복잡화한 것이 제사·굿이며, 굿이 발전하여 연극이 된다는 것이다. 율려 운동은 예술 운동을 진원으로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전개될 때는 사회적 예(禮), 즉 문화·도덕 운동이 되며, 동양의 정치사상은 바로 그 예·질서·도덕에 기초해서 정치를 바로 세우고자 했음을 그는 재삼 강조한다. 예술 운동은 곧 정치 운동이라는 얘기인데, 이러한 언명은 미적 패러다임은 곧 윤리적 패러다임이라고 외쳤던, 그래서 삶과 텍스트는 하나라고 고집하여 영어의 세월조차 마다하지 않았던 과거의 그와 현재의 그가 결코 다르지 않음을 입증하는 셈이다. 때로는 미치광이, 때로는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라는 오명 아래 갖은 풍문에 휩싸였던 그를 주의 깊게 읽어야 할 이유가 다시 한번 추가된다.


김지하가 해월을 경유하여 재천명한 향아설위(向我設位) 사상, 밥 한 그릇의 사상, 삼경 사상 들은 생명 가진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살림’과 ‘상생’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그는 생명의 반대 극을 ‘죽음’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죽음은 생과 더불어 생명을 구성하는 인자로서, 생명의 반대쪽에는 자연적인 ‘죽음’이 아니라 인위적인 ‘죽임’이 놓인다. 서구의 근대와 과학기술을 토대로 한 현대 문명의 만연된 병적 현상과 생명 경시·망각·파괴의 현실은 바로 이 ‘죽임’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김지하는 오늘날의 이러한 병리적 증상들을 후천개벽의 징후로 읽어 들인다. 후천개벽이란 수운이 이야기한 것으로 5만 년 이전 선천개벽을 다시 번복하고 뒤집는 우주적인 사건이자 인류 문명사의 대전환을 말한다. 그런데 이 후천개벽론이 선천 후천이 바뀌는 과정에서 후천을 중심으로 하되 선천이 다시 해체되어 재구성되고 배합적 관계로 ‘살아난다’는 원리, 즉 상생의 원리를 따르고 있음은 주목을 요한다. 즉 수운의 후천개벽론은 파괴와 죽임의 이론이 아니라 살림과 상생의 이론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 하에서 김지하가 자주 인용하는 수운의 ‘천지공심(天地公心)’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 무기물과도 소통하는 마음, 곧 하느님 마음으로서 우주만물의 마음과 통하고 그 죽음과 질병을 아파하는 마음이요 성질”로서 우주사회적 소통과 공공성을 표방한다. 이 개념, 이 마음을 따를 때라만 ‘인간과 동식물과 무기물을 가까이 사귀어 감화, 변화, 진화, 완성, 해방시킨다’는 내용의 ‘접화군생(接化群生)’이 가능해진다. 현대 생태학과 환경 운동, 생명 운동의 핵심 또한 이 ‘접화군생’에 담겨 있고, 모든 참된 예술과 문화의 핵심 목표 또한 여기서 멀지 않다. 김지하의 율려 운동은 바로 여기서 발원한다.


사회 변혁의 현장에서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시인 김지하는 율려 운동을 표방한 최근의 행보로 인해 결절과 변절이라는 해석 범주 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 전집은 여러 우회로를 거쳤달 뿐, 그의 사상 편력과 시 작업이 애초의 출발점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같은 길을 걸어왔음을 확인시켜준다. 나아가 그의 초기 사상이나 미학적 견해들이 한층 더 심화되고 확대되었음을 알려준다. 그의 민중론이 모순적이고도 역설적인 ‘현실’의 원리와 ‘생명’의 원리 안에서 출발했고, 그 같은 출발점이 19세기 변혁 사상들을 경유해서 고대 사상의 ‘빛’의 문화와 만나는 지점을 확인하면서, 무엇보다도 그가 자신의 사상적 연원과 미학적 개념들의 원류를 우리 고대 사상에 두고 쟁점화하는 면모는 거듭 주목을 요한다. 우선 숱한 서구 ‘이론’ 속에서 향방을 잃고 표류하기 십상인 우리의 문학 논의를 주체적으로 전개해나갈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에서, 나아가 동서와 고금을 아우르는 안목으로 앎의 세계와 미(美)의 세계를 탄력적으로 궁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논의들은 우리의 문학 현실은 물론 ‘현실’ 그 자체를 좀더 명료하게 바라보고 풍요롭게 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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