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 마르크스의 자본론 |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지음 | 주원준 옮김
그러므로 나는 독일과 다른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위험한 추세를 걱정한다. 그들은 다시 원시적 자본주의로 탈바꿈하는 것을 두고 시장경제의 발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시장에서 도덕과 윤리를 눈감을 때, 곧 공동선을 지향하도록 시장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질서정책을 국가가 포기할 때, 우리가 얼마나 빨리 위험한 처지에 빠질 수 있는지를 2008년 여름 국제 금융 시장의 위기가 정말 잘 보여주었다.
나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해두고 싶다. 투자수익률이 경제의 유일한 지향점일 때(유감스럽게도 더 많은 투자수익률이 늘 지향점이다) 위험을 깊이 인식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마르크스주의적 이상향으로 도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 이상향의 나쁜 결과를 보았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무언가 해야 한다. 우리는 시장경제가 질서의 틀 안에서 존재하도록 일해야 한다. 공동선을 지향하고, 제대로 기능하는 복지국가에서 제도화된 연대성의 공간을 보장하고, ‘국제 공동선’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381~382쪽)
2008년, 2011년 잇단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본주의 시스템이 시험대에 오른 이후 '마르크스'가 자주 호명되고 있다. 자본주의를 근본부터 회의하고 의심할 수 있는 잣대로서 마르크시즘 외에는 별 묘책이 없기도 하지만, 옛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일명 코뮌으로 불리던 공산혁명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이 일찍이 판명되지 않았던가. 시장자본주의가 전 세계에 뿌리를 내리면서 일찍이 마르크스가 혐오했던 성장과 발달, 이익과 부... 이런 가치가 인류의 지상 과제가 되었다. 그 결과로 1%의 부자가 99%의 빈자를 소외시키는 세상이 되었고, 99%의 사람이 빚더미 위에 지어져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과 회사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럼에도 성장과 발달의 굴삭기는 멈출 줄을 모르고 온 지구를 파헤치는 중이다. 인류세라 불리는 악몽은 현실이 되었다. 올해 우리는 50여 일 넘도록 집과 땅이 쓸려나가는 홍수를 겪었고, 300여 일 넘도록 국경도 인종도 따지지 않고 전파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사투 중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경제인가? 우리의 살림살이 시스템은 이대로 좋은가? 다 같이 몰락하지 않으려면 머리 쥐어뜯으며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시국인데, 21세기 인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고픈 마음이 없어 보인다. 성장과 발달의 미명 뒤에서 게으르고 나태하고 수수방관적이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며 눈 가리고 아웅 한다. 대부분의 시민이 투자와 투기 사이에서 열을 내며 살지만, 그 열심과 욕망의 방향은 묻지 않는다. 돈이 제일 중요한 자본주의 사회니까. 하지만 21세기 지구의 살림살이를 뒤흔들고 있는 금융위기와 기후위기가 결코 다른 몸이 아니며, 결국 우리 개인들의 비도덕성 그 총합의 결과일 수 있음을 아프게 인식해야 한다.
독일 가톨릭교회를 이끌며 프란치스코 교종의 개혁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고 있는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의 《추기경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부와 경제만이 살길이라고 부르짖는 우리에게 다시금 윤리와 도덕을 환기시킨다. 성장과 발달의 가치가 온전하게 실현되려면 정의와 분배의 기능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사회나 국가 등 공동체의 역할(질서정책, 질서자본주의)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현실 인식에 철저하며, 자본주의의 본질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불가능한 (폭력적) 혁명을 선동하기보다 가능한 (평화적) 현실을 개진하려 한다. 그는 개인의 욕망과 공동체의 안위가, 개인의 기회와 공동체의 존속이 결코 별개가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 같다. 팔아야 할 것이 몸뚱이밖에 남지 않아 언제나 노동해야만 하는 인간 계급을 카를 마르크스가 발견했다면, 인간 개개인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영위하며 서로 연대할 때 가장 존엄할 수 있음을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은 강조한다.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부정했다면 라인하르트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인정한다. 다만 미쳐 날뛰는 자본주의에 질서(에 대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 추기경이 이 책에서 소개하는 그리스도교 인간론에 따르면 인간은 신의 모상으로 창조되어 자체로 존엄하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저마다 고유하고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으로 연대성을 조건 없이 요구할 수 있으며, 그런 연대성이 제도화된 형태로 발전한 사회가 바로 복지국가다. 복지국가는 개인이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 창조할 수 있는 영역을 무시해서는 안 되며,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배려국가가 되려는 환상을 가질 때 위험해진다. 그래서 돈이 아니라 기회를 분배하는 일이 중요하다(그런 점에서 미래의 복지국가는 기본소득을 제공하기보다 모두가 일하면서 스스로를 꽃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노동력으로 모든 위험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지금 여기, 인간 존엄성에 기반한 연대성의 원리를 실현하는 공동체, 그런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마르크스 추기경의 자본론은 아픈 현실을 목도하느라 시종일관 냉철하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하다. 그의 자본론에서는 노동이 아니라 인간이 중요하다. 계급이 아니라 존재가 절실하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1%의 빈틈을 느낀 바가 있다면 주저 없이 《추기경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펼쳐보길 권한다.
그리스도교 인간론에 따르면 인간이란 자기책임성을 지닌 개인이면서 또한 다른 인간과 함께 이 사회의 한 부분을 이루는 연대성의 존재다. 그러므로 한 인간은 자기 자유의 최고치를 홀로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간과 연합함으로써만 달성할 수 있다. 이런 근거로 현재 이루어지는 개혁에서 보조성의 원리와 연대성의 원리는 똑같이 존중되어야 한다. (2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