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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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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담유 Oct 31. 2020

기형도를 추억함

다시 들춘 《입 속의 검은 잎》. 한동안 이 시집을 기피하다시피 책장 깊은 곳에 넣어두고 찾지 않았었다. 암암리에 그의 이모저모를 베끼게 될까 봐 혹은 그의 목소리를 내 것이라 착각하고 살까 봐 스스로 안전망 차원에서 그랬겠지만, 무엇보다 그의 시집이 마냥 깔깔거리며 읽을 수 없게 하는 그 무엇을 내장하고 있는 탓이리라. 


오랫만에 들춰보아서일까. 속표지에 적혀 있는 문구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내 청춘의 트라이앵글

외로움

괴로움

그리움”

언제나 따뜻한, 그리고 자유로운

詩人이 되어라.


내게 최승자의 저 쓸쓸한 구절과 축원을 보내준 그녀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무엇에 사로잡혀 있을까. 잠시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누구보다도 시에 대한 질투가 유별했던 그녀. 질투가 너무 지독해서였을까. 그녀가 시 동네와는 아주 멀고먼 동네(아, 이 말에는 어폐가 있다. 씌어지는 것만을 시라고 하지 않는다면 시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므로)에서 유랑하고 있다는 얘기를 우연히 전해들은 적이 있다. 그녀에 대한 최근의 기억은 거기까지……. 


스무 살 무렵, 대책 없이 집을 뛰쳐나와 이곳저곳 기식하듯 흘러 다닐 때, 그녀는 때로 나를 그녀의 방으로 데려가 재워주곤 했었다. 그녀는 부모와 오빠 등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을 마주친 적이 없다. 그녀는 내게 가족을 보여주기 꺼려했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얘기는 꽤 깊게 들려준 적이 있다. 나를 그녀의 방에 데려간 최초의 어느 날 밀린 숙제를 해치우듯 그렇게 정신 없이……. 나는 매양 웃는 얼굴로 해살거리는 그녀가 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주 고통스러운 관계에 (폭력적으로) 놓인 채 그야말로 生을 견뎌온 여자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참 묘한 느낌을 가졌었다. 나 같은 아이와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련의 극치를 달리던 그녀가 때때로 나를 왜 그렇듯 신산한 눈으로 쳐다보았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다만, 나를 재워주고, 내가 집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를 묻지 않고, 한탄스러운 내 연애담을 재미있게 들어주는 그녀가, 그때 나의 안전망이었다는 사실만 분명할 뿐. 끝까지 가보지 않아도 좋을 길에 대해 그녀는 꽤 길게 그리고 여러 날 나를 설득했었다. 물론 나는 그녀의 오랜 경험의 총체에서 비롯된 그 탁견을 알아들었을 리 만무하다. 후회, 물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 그녀가 그립다. 다시 그녀를 만난다 해도 나는 그녀가 그때만큼 편하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그녀를 찾지 않는 것이겠지만. 마음만 있다면야 그녀가 머물렀다는 일본으로도 유럽으로도 갈 수는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기형도의 시집은 그 존재 자체가 내게는 일종의 회상의 도구가 돼버린 듯하다. 시 편편마다 담긴 사연들, 마음 잡고 한 편씩 써내려 가볼까. 할 일 없어지면, 그리고 나를 떠나간 이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면 그 짓도 해볼 만할 거다. 시간을 견디는 법, 그게 뭐 어려울까, 시간을 들쑤셔놓으면 되는 거다. 기억이란 참으로 왜곡이 심한 물건이라서, 종종 괴물이 되기도 하잖은가 말이다. 기억이라는 괴물. 시는 그것을 종종 아름다운 어떤 것으로 둔갑시켜준다. 아프지만 아름다운 것, 그것들의 어떤 순간들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詩다. 死語에 가까운 이 말이, 나는 때때로 그 어떤 진리보다 사무치고 또한 두렵다. 아름다운 그 무엇이 졸지에 아픈 그 무엇, 처참하고 비루하고 되먹지 못한 그것으로도 둔갑할 수 있음을 이 역설은 애초부터 역설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에 대해 얘기할 때면 사람들이 빼놓지 않는 시들이 있다. 대체로 해독이 잘 되는 〈대학 시절〉이나 〈엄마 걱정〉 그리고 ‘겨울 版畵’ 시리즈들, 암송하기 좋은 연애시 〈그집 앞〉과 〈빈 집〉, 등단작 〈안개〉, 유서라 일컬어지는 〈질투는 나의 힘〉, 그리고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專門家〉, 거의 완벽한 이미지의 짜임새를 갖고 있는 〈물 속의 사막〉 〈진눈깨비〉등. 나도 대체로 그런 시들을 좋아하고 또 자주 읽는다. 하지만 나는 그의 다음과 같은 시를 무척 아끼며 읽는다.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主語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 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病〉 전문


기형도는 서문(기형도의 서문이라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서문에 올라와 있는 다음 구절은 작고한 평론가 김현이 뽑았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1988. 11)” 기형도의 이 언명(“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을 거짓이 되지 않게 하는 이유가 고스란히 저 시 속에 담겨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놀랍게도, 〈病〉은 굉장히 낙관적인 시다. 기형도에게도 낙관이란 게 있(었)다니! 그의 시는 지식인의 회색이 방법적으로 매우 잘 운용되고 있기에 종종 매우 비관적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때로 그것은 과장된 포즈로 읽히기도 해서, 그의 시집을 여러 번 숙독한 사람들로 하여금 싫증을 느끼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를 떠나간 사람들을 그의 탄식(“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오래된 書籍〉 中)과는 달리 또다시 그에게로 돌아오게끔 호명하는 힘을 가졌다. 나는 바로 그 힘이 저 시 속에 일부 담겨 있다고 확신한다. 가지 잘린 늙은 나무와 병든 사람, 잔인하게 죽어간 세월과 그것이 곱게 접혀 있는 몸, 이것들의 대치는 말 그대로의 대치가 아니라 일종의 조화이고 화합이다. 그것의 증거가 바로 단풍이다. 또한 그것이 바로 病이다. 극점의 것들을 동시에 아우르며 바라보는 직관, 안과 밖을 하나의 것으로 인식해내는 눈, 나는 기형도의 이것이 그의 회색보다 좋다. 넉넉하고, 아름답고, 아프게 다가온다. 그가 좀더 오래 살았더라면 애써 거리에 서 있지 않아도 거리를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고 자연에 속해 있지 않아도 자연을 따르는 자가 되지 않았을까, 낮게 피식거리며 홀로 상상해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나는 그가 노트에 시가 아니라 악보를 그려 넣곤 했다는 사실을, 이쯤 떠올려본다. 음악을 써나가는 시인. 입을 다문 가수에게서 노래를 듣고 죽은 이들의 연보에서 푸른 악보를 읽어들이던 남자. 귀가 아니라 눈으로 악보를 읽는 법을 배우고 나면 악기가 없어도 음악은 늘 그를 따라다니게 된다. 눈앞의 많은 想들이 幻이 아니라 音으로 다가오는 순간, 일상은 매순간 실존의 순간으로 둔갑하게 된다. 귀는 따갑고 피부는 뜨겁다. 몸은 들리고 정신은 가출한다. 매순간 살아 있게 된다. 매순간 아프게 된다. 매순간 병든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일상을 점거한 많은 순간과 찰나들은 비관적이었을 것이라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오해할 테지만, 나는 감히 말해보고 싶다. 어찌 그를 낙관적인 사람이 아니라 말할 수 있겠는가고. 다만 그의 낙관은 우울한 색조를 가졌을 뿐이다. 일종의 슬픔 말이다. 


내게 그의 죽음, 그가 죽어간 순간을 논할 자격은 없다. 이유는, 그 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내가 말로 먹고사는 인간이었다면 약간의 구라는 면죄부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로 먹고살기(음식만이 그리고 그 음식을 사들일 수 있는 돈만이 인간을 먹고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중 일부는 활자를 먹고살기도 한다!)로 한 이상 침묵의 구라를 구사할 수밖에 없다. 구사법을 모른다면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다. 활을 쏘지 않고도 천공을 가르는 매를 쓰러뜨린다는 不射之射의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안의 적쯤은 쓰러뜨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내 안의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내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들어가는 입구를 잊었다면 나를 거꾸로 매달아놓고 모든 것이 역류해 쏟아져 나와 모든 것이 ‘통’할 때를, 그리하여 열릴 때를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의 (생물학적) 죽음을 말할 수 없다.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궁금하지 않다’. 나는 오로지 그가 남긴 음악들을 통해 그의 삶을 조용히 듣고 싶을 뿐이다. 〈病〉이라는 시가 말해준 것에 의하면, 삶은 곧 죽음이고 죽음은 곧 삶이다. 그것은 생물학적 탄생이나 생물학적 죽음과는 관념적으로나 물질적으로도 다른 세계다. 조사 하나까지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회색 퍼소나를 뒤집어쓴 그가 가면 뒤에서 슬며시 웃고 있는 게 보이기도 한다. 감히 말하건대, 나는 그가 말한 ‘빈 기쁨’이 무엇인지, 이젠 알 것도 같다. 알 것도 같은 이것, 이젠 놓아버리지 않겠다. 뒷걸음질치지도 않을 것이다. 포즈로서의 울음이나 포즈로서의 웃음도 조금은 나를 내버려두겠지. 나는 나를 “주인”이라 부르는 이가 생긴다면 가타부타 그를 향해 웃어줄 테다. 물론 내 안의 나는 “황망히 고개 돌려 캄캄한 눈을 감”을 테지만……. 하지만 이 두 행동이 대체 어떤 점에서 다르지? 하고 묻는 또 다른 나. ‘그것들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 그래 〈기형도론〉이나 다시 쓰도록 하자. 


주인은 떠나 없고 여름이 가기도 전에 황폐해버린 그해 가을, 포도밭 등성이로 저녁마다 한 사내의 그림자가 거대한 조명 속에서 잠깐씩 떠오르다 사라지는 풍경 속에서 내 弱視의 산책은 비롯되었네. 친구여, 그해 가을 내내 나는 적막과 함께 살았다. 그때 내가 데리고 있던 헛된 믿음들과 그뒤에서 부르던 작은 충격들을 지금도 나는 기억하고 있네. 나는 그때 왜 그것을 몰랐을까. 희망도 아니었고 죽음도 아니었어야 할 그 어둡고 가벼웠던 종교들을 나는 왜 그토록 무서워했을까. 목마른 내 발자국마다 검은 포도알들은 목적도 없이 떨어지고 그때마다 고개를 들면 어느 틈엔가 낯선 풀잎의 자손들이 날아와 벌판 가득 흰 연기를 피워올리는 것을 나는 한참이나 바라보곤 했네. 어둠은 언제든지 살아 있는 것들의 그림자만 골라 디디며 포도밭 목책으로 걸어왔고 나는 내 정신의 모두를 폐허로 만들면서 주인을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림이란 마치 용서와도 같아 언제나 육체를 지치게 하는 법. 하는 수 없이 내 지친 발을 타일러 몇 개의 움직임을 만들다보면 버릇처럼 이상한 무질서도 만나곤 했지만 친구여, 그때 이미 나에게는 흘릴 눈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 정든 포도밭에서 어느 하루 한 알 새파란 소스라침으로 떨어져 촛농처럼 누운 밤이면 어둠도, 숨죽인 희망도 내게는 너무나 거추장스러웠네. 기억한다. 그해 가을 주인은 떠나 없고 그리움이 몇 개 그릇처럼 아무렇게나 사용될 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짧은 촛불들을 태우곤 했다. 그렇게 가을도 가고 몇 잎 남은 추억들마저 천천히 힘을 잃어갈 때 친구여, 나는 그때 수천의 마른 포도 이파리가 떠내려가는 놀라운 空中을 만났다. 때가 되면 태양도 스스로의 빛을 아껴두듯이 나 또한 내 지친 정신을 가을 속에서 동그랗게 보호하기 시작했으니 나와 죽음은 서로를 지배하는 각자의 꿈이 되었네. 그러나 나는 끝끝내 포도밭을 떠나지 못했다.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기척 없이 새끼줄을 들치고 들어선 한 사내의 두려운 눈빛을 바라보면서 그가 나를 주인이라 부를 때마다 아, 나는 황망히 고개 돌려 캄캄한 눈을 감았네. 여름이 가기도 전에 모든 이파리 땅으로 돌아간 포도밭, 참담했던 그해 가을, 그 빈 기쁨들을 지금 쓴다 친구여.

―〈포도밭 묘지 1〉 전문


* 그녀가 적어준 최승자의 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내 청춘의 영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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