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뒷산 가문비나무 아래, 누가 버리고 간 냉장고 한 대가 있다 그날부터 가문비나무는 잔뜩 독오른 한 마리 산짐승처럼 갸르릉거린다 푸른 털은 안테나처럼 사위를 잡아당긴다 수신되는 이름은 보드랍게 빛나고, 생생불식 꿈틀거린다 가문비나무는 냉장고를 방치하고, 얽매이고, 도망가고, 붙들린다 기억의 먼 곳에서, 썩지 않는 바람이 반짝이며 달려와 냉장고 문고리를 잡고, 비껴간다 사랑했던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데리고 찾아와서 벼린 칼을 놓고 돌아갔다 매일 오는 무지렁이 중년남자는 하루에 한 뼘씩 늙어갔다 상처는, 오랜 가뭄 같았다 영영 밝은 나무, 혈관으로 흐르는 고통은 몇 볼트인가 냉장고가 가문비나무 배꼽 아래로 꾸욱 플러그를 꽂아 넣고, 가문비나무는 빙점 아래서 부동액 같은 혈액을 끌어올린다
가까운 곳에, 묘지가 있다고 했다 가문비나무가 냉장고 문열고 타박타박 걸어 들어가 문 닫으면 한 생 부풀어오르는 무덤, 푸른 봉분 하나가 있다는,
ㅡ<가문비냉장고>, 김중일, 2002년도 동아일보 시 부문 당선작
가까운 곳에 묘지가 있다고 알려주는 음성이 있다. 나는 이 음성을 사심 없이 쫓아가보기로 마음먹는다. 까닭은 이 음성이 귀청을 때리지 않는 음성, 음성 아닌 음성이기 때문이다. 이 음성은 피부 속으로 나지막이 스며들어와 있다. 오돌토돌 돋아 있는 기억들. 돋보기를 대고 보니 어느새 둥그렇게 부풀어 있다. 음성은 내게 그것을 푸른 봉분이라 일러준다. 누구를, 무엇을 봉하고 한 생 푸르게 부풀어올랐을까. 궁금증이 밑도 끝도 없는 연민처럼 밀려들기 시작한다. 우선, 냉장고 한 대가 있다. 누가 버리고 간 냉장고. 가문비나무를 흥분시키는 그것은 타인이다. 가문비나무는 그래서 독이 오른다. 온 신경을 쫙 펼쳐 장파 중파 단파 초단파 등을 잡아들이는 안테나처럼 바짝 곤두서 있다. 가문비나무는 오래 혼자였다. 혼자였던 존재는 혼자를 알아본다. 그래서 경계는 곧 연민이 된다. 냉장고는 버려진 몸이다. 쓸모없는 몸. 몸[肉]. 아직 온기가 남아 있을까? 가문비나무는 말을 걸어본다. 갸르릉거린다. 신기하게도 꿈틀거리는 이름이 수신된다. 아직 그 이름 모르지만, 보드랍게 빛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가문비나무는 이제야 안심한다. 그래서 방심한다. 그러나 곧 알게 된다. 그 보드랍게 빛나는 이름을 본 순간, 들은 순간, 붙잡은 순간, 그것에서 놓여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얽매이고 도망가고 붙들리는 시간의 엎치락뒤치락, 시간의 사분오열, 시간의 오체투지가 그의 피톨 속으로 낱낱이 들어와 박히리라는 것을. 혹은 이미 뾰족한 화살촉에 박혀버렸음을. 그래서 바람은 썩지 않고 이따금 먼 곳에서 기억이 돌풍처럼 달려오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침내 달려온 기억의 속내는 어떠한가. 벼린 칼을 놓고 돌아간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여자와 함께였었다. 그러나 사랑은 그들을 비껴가리라. 사내는 칼을 두고 가서는 안 되었다. 여자의 심장을 도려냈어야 했다. 영원이라는 이름으로, 도려낸 여자의 심장을 파묻고 가야 했다. 그뿐인가. 매일같이 오는 무지렁이 중년남자, 사내의 미래 혹은 과거 혹은 현재를 거기서 멈춰야만 했다. 단절이라는 이름으로, 한 뼘씩 늙어가는 상처를 그만 입관해야 했다. 그래야 이 모든 것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가. 상처는 가뭄처럼 계속된다. 혀를 깨무는 날들이 반복된다. 가문비나무는 영영 잠들 수가 없다. 벼린 칼과 가뭄이 가문비나무의 혈관을 타고 흐른다. 동맥을 타고 흘러간 바늘이 정맥을 타고 다시 돌아온다. 빠져나가지 않는 고통. 순환하는 고통. 맑아졌다 더럽혀졌다 차가워졌다 뜨거워지는 고통. 그러나 기이하게도 이 고통의 율동이 심장을 생생불식 꿈틀거리게 한다. 뛰게 한다. 마침내 파열한다. 빛을 뿜는다. 가문비나무는 그대로 하나의 발광체가 된다. 어느새 누군가의 이름이 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애초부터 이 모든 광경의 소재이자 주관자였던 몸[肉]이 가문비나무에게로 손을 뻗는다. 다시는 빼어내지 않을 손. 다시는 놓아버리지 않을 손. 그 손이 타인의 혈관 속을 타고 흐르는 바늘을 흡착한다. 마침내 제가 뿌린 고통을 빨아들인다. 나무는 고통을 빨아들이는 그러한 몸[肉]을 위해 있는 힘껏 혈액을 끌어올린다. 과거, 현재, 미래, 상처라는 이름으로 추억되던 공간을 끌어올린다. 그들은 그렇게 살붙이처럼 엉켜 한 몸이 되어간다. 그들의 포옹은 매일 한 뼘씩 부풀어오르는 무덤이 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어디에선가 푸르게 부풀고 있는 무수한 봉분들이 종결이 아니라 지속인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동안 가까운 곳에 묘지가 있다고 알려주는 음성에 홀려 살아본다. 피부 속으로 나지막이 스며들어와 있는 오돌토돌한 기억들에 프리즘을 대고 보니 어느새 보드랍게 빛나는 夢, 반짝이며 달려오는 幻, 푸르게 부풀어오르는 門이 칡뿌리처럼 한데 얽혀 다채로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만남은 이별을 부르고 이별은 고통을 부르고 고통은 다시 만남을 부르는 生의 중첩이 언덕에 묻혀 있다. 이 묘지의 전설은 누대에 걸쳐 반복되어왔을 것이고 기록되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매번 이 매혹적인 기억의 결합은 얼굴을 달리 했으리라. 그러니 누가 이 오래된, 그리하여 익숙한 상처를 밀봉할 수 있으랴. 자아와 타인과 세계가 한데 얽힌 이 한바탕 허깨비를 허깨비라 말할 수 없고, 이 모든 풍경을 조용히 들려주는 음성을 환청이라 여길 수 없는 일들이 <가문비냉장고>에서는 계속된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서사. 거기에 살을 입히고 소리를 들어앉히고 사지를 움직이게 하는 그가 보인다. (아니 처음부터 존재했던 서사, 그렇기 때문에 지루하고 무기력한 풍경들이 그에 의해 새로이 탄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동액 같은 혈액은 이미 끌어올려졌다. 상처는 이 혈액을 빨아들인 후 또 다른 가문비나무로 서 있을 것이다. 그 나무가 살아 있는 한 이 매력적인 중첩과 착란의 역사 또한 계속되리라. 나는 언제든 이 음성을 쫓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음성에게선 弔燈마저도 심장이 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