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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는 인간

뜨거운 혀

마음 | 나쓰메 소세키 지음

by 김담유

소세키의 『마음』을 분석하는 일단의 전문적인 평자들은 이 소설이 무엇보다 일본 메이지 정신에 바쳐지고 있다는 점을 빼놓지 않는다. 실제로 소설 안에서 천황의 죽음이나 그를 뒤이어 자살한 노기 장군의 죽음 등이 미화되는 점이 없지 않고, 그들의 ‘공적’ 죽음에 응답이나 하듯 소설적 인물인 ‘선생님’이 자살을 감행하고 또 ‘아버지’가 생의 의지를 잃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의 ‘정신’에만 바쳐지기엔 이 소설 전편을 감싸고 있는 멜랑콜리의 실체가 단순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마음’을 ‘정신’과 동일시해서 읽기엔 다소 무리가 따르지 않는가 싶은 것이다.


‘선생님’을 자기 소외와 고독의 삶으로 내몰고 마침내는 자살에 이르게 한 데는 젊은 날 친구 ‘K’의 자살이 도화선이 되고 있다. 그리고 고의였든 아니든 친구 K의 자살을 방조하는 입장에 서게 된 선생님께는 양친의 유산을 둘러싸고 벌어진 친척들의 배신이 원초적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관계’에서 맺어진 배신과 상처, 그리고 죄의식의 굴레―즉 인간의 원초적 감정 작용이 『마음』 전편에 깔려 있는 멜랑콜리의 원인으로 주목될 만하다는 것이다.

이는 만국의 언어로 번역 가능한 인류의 ‘원죄 의식’과 맞닿는다. 그리고 이 원죄 의식은 필연적으로 윤리의 문제를 호출한다. 소세키의 많은 소설적 인물들이 사회와 개인이라는 각 영역의 경계선에서 (분열하는 윤리 의식에서) 비롯한 멜랑콜리라는 ‘증상’을 앓고 있다는 점, 나아가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죽음 일보 직전의 4조 다다미방에서 식물처럼 견디며 자신의 내면 안으로 육박해 들어간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소세키 자신이 천명했던 윤리적 ‘개인주의’는 이론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 셈이다.


『마음』의 선생님은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나’에게 ‘직장’[사회·정신] 대신 ‘유서’[개인·마음]를 유산으로 남긴다. “정신적인 향상심이 없는 사람은 바보다”라는 말로 K, 그리고 K의 사랑을 몰아세웠던 선생님이 결국 필생의 멜랑콜리 끝에 자신의 모순을 ‘드러내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이 고백의 방식엔 일말의 ‘뜨거운’ 진실이 담길 수밖에 없다.


“나는 냉철한 머리로 새로운 사실을 말하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견해를 말하는 편이 진짜 살아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피의 힘으로 몸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말은 공기에 진동을 전할 뿐 아니라 한층 더 강한 것에 강하게 부딪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159쪽)


‘돈’보다는 ‘정신’을, 정신보다는 ‘마음’을 주기까지 간난신고의 삶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의 초상이 부디 ‘선생’과 ‘천황’이라는, 화석화된 정신의 지표 안에 갇히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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