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 김지혜 지음
서대문 일기 #3
독립문 사거리로 오셔서 사직터널 방향 쪽을 보세요 육교가 보이시나요 거길 통과하셔야만 합니다 전날 취객이 토해놓은 시간은 보지 않는 게 좋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필경 핏빛일 겁니다 속을 뒤집는 비린내가 진동하죠 탯줄 끊어진 자리가 걷잡을 수 없이 가려울지도 모릅니다 바지를 까 내리고 대책 없이 긁어야 할지도 몰라요 아니라면 당신도 그쯤에서 토해놓을 시간을 마련하시는 게 좋고요 그러나 당신은 바쁜 몸이라는 걸 기억해두십시오 시간은 당신을 기다릴 여유가 없어요 당신은 5분 안에 도착해야만 합니다 5분 안에 도착하려면 중심을 조심하세요 중심에서 얼쩡거려선 안 됩니다. 비켜서세요 없던 빈혈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물론 달려 나가는 차들과 빨려들 듯 터널 안으로 사라지는 과거를 쫓지도 마시구요 당신이 현혹되어야 할 것은 어둠이 아닙니다 위를 쳐다보지도 마세요 그건 하늘이 아닙니다 스모그도 아니구요 덜 터진 양수막일 뿐이죠 머리끝부터 천천히 막을 벗겨줄 산파는 지금 아랫목에서 산모 대신 쿨쿨 코를 골고 있습니다 당신이 육교를 건너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 오래 반복되어온 사실이라 전혀 놀랍지 않거든요 그러니 그를 탓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비린내를 견디도록 하세요 시간을 견딘다는 게 별겁니까 산도를 빠져나오듯 찰나를 건너뛰세요 코를 틀어막는 겁니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모르는 척하는 거지요 동의할 수 없다구요? 이봐요 2001번 퀵 라이더, 당신은 5분 안에 도착해야만 한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