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의 손에 잡히는 인공지능
AI 에이전트 혁명, 어도비가 연다
생성형 AI가 대중화된 이후, 많은 기업들이 생산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는 도구로 AI를 주목해왔다. 하지만 단순한 생성의 단계를 넘어, 이제는 ‘행동하는 AI’, 즉 에이전트 기반 AI가 본격적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이 흐름의 선두에 선 기업이 있다. 바로 어도비다.
2025년 3월, 어도비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어도비 서밋(Adobe Summit)’에서 눈길을 끄는 발표를 내놓았다. ‘AEP Agent Orchestrator’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신기술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AI 기능이 아니라, 기업 전체 고객 경험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지능형 에이전트의 지휘자 역할을 맡는다.
‘Agent Orchestrator’라는 말 그대로, 이 시스템은 마케팅, 세일즈, 웹사이트, 고객 여정 등 다양한 업무에 특화된 여러 AI 에이전트를 연결하고 조율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도비의 핵심 플랫폼인 Adobe Experience Platform(AEP)이 있다. AEP는 이미 전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사용하는 고객 경험 데이터 허브다. 이 플랫폼 위에 지능형 에이전트를 얹어 자동화와 개인화의 차원을 확장한 것이다.
어도비는 이번에 총 10종의 에이전트를 공개했다. 단순한 도우미 수준을 넘는, 각 업무의 역할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AI 구성원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Audience Agent’는 고객의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고가치 오디언스를 찾아내고, ‘Site Optimization Agent’는 웹사이트의 문제를 자동으로 진단하고 수정한다.
‘Content Production Agent’는 마케터가 작성한 간단한 브리프만으로도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준수한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이 모든 과정이 AEP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움직인다.
이처럼 AI 에이전트가 사람의 ‘팀원’처럼 역할을 분담하고 협업하는 구조는 마케팅과 고객경험 분야에 중요한 변화를 예고한다. 기존의 마케팅 자동화 툴은 일정한 규칙을 따라 움직였지만, 에이전트 기반 AI는 데이터의 맥락과 의미를 이해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특히, 고객 데이터와 콘텐츠, 그리고 브랜드 언어를 함께 이해하는 능력은 어도비의 AEP Agent Orchestrator가 가진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다.
어도비는 이 에이전트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도 함께 공개했다. 이름은 Brand Concierge. 이 에이전트는 이름처럼 브랜드를 대표하는 맞춤형 안내자 역할을 한다. 고객이 기업의 웹사이트나 앱을 방문하면, 브랜드의 색깔과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담부터 추천, 비교, 구매 유도까지 모든 과정을 개인화된 대화로 안내한다. 단순 챗봇 수준을 넘어, 감각적인 추천, 이미지 기반 비교, 음성 안내까지 가능한 ‘멀티모달’ 경험을 제공하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여행사를 방문한 고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에이전트는 고객의 과거 여행 기록, 선호 지역, 예산 등을 분석한 뒤 “이번엔 남미 어떠세요? 이전에 가신 스페인 여행을 좋아하셨잖아요”라고 제안할 수 있다. 이어서 비슷한 일정과 가격대의 상품을 이미지로 보여주고, 가격, 혜택, 후기 등을 비교해주는 대화형 서비스도 가능하다. 마치 똑똑한 친구가 여행을 추천해주는 듯한 경험이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점은 이 기술이 B2C(소비자 대상)뿐 아니라, B2B(기업 간 거래)에도 유용하다는 점이다. 어도비는 ‘Account Qualification Agent’와 같은 B2B 전용 에이전트를 통해 기업 고객의 성향, 구매 이력, 세일즈 타이밍 등을 분석하고, 영업 일정 예약까지 연동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는 기존 CRM 시스템보다 훨씬 더 실시간적이고 맞춤화된 관계 형성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런 첨단 에이전트들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핵심은 어도비의 AI 플랫폼 통합 전략에 있다. 어도비는 자사의 생성형 AI인 Firefly 모델과 외부 파트너 AI 모델, 그리고 AEP를 통해 수집된 1st party 데이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했다. 이를 통해 에이전트가 브랜드의 언어와 고객의 니즈를 동시에 이해하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AI 에이전트가 단순 자동화 도구가 아니라, 브랜드의 사고방식을 내재한 ‘지능형 실무자’로 진화한 셈이다.
게다가 어도비는 이 생태계를 단독으로 구축하지 않았다. Microsoft, Amazon Web Services, IBM, SAP, Workday 등과 협력해 다양한 외부 시스템과의 연계를 추진하고 있다. 이로써 에이전트는 마케팅뿐만 아니라 고객센터, HR, ERP, 세일즈 등 기업의 다양한 부서와 데이터를 넘나들며 협업할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하나의 두뇌가 여러 팔과 손을 움직이는 형국이다.
AI 에이전트가 브랜드의 목소리가 되고, 고객과의 모든 접점을 자동화한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일의 본질과 인간의 역할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변화다.
어도비는 이번 AEP Agent Orchestrator를 통해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도 되는 업무"를 AI 에이전트가 맡고, 사람은 보다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시하고 있다. 콘텐츠를 일일이 만들고, 데이터를 수동으로 분석하며, 고객 여정을 수작업으로 설계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어도비는 “AI는 실무자의 시간을 창의적 사고를 위한 여유로 바꿔준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마케팅, 광고, 고객 경험, 콘텐츠 산업 전반에 큰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마케팅 부서가 ‘A/B 테스트’를 설계하고 결과를 분석해 최적의 광고 문구를 찾았다면, 이제는 Experimentation Agent가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한다. 고객 여정 설계, 세그먼트 분류, 제품 추천까지도 AI가 자동으로 판단하고 실행하게 되면서 마케터의 역할은 기획자에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바뀌고 있다.
더 나아가 고객 입장에서도 경험의 질이 달라진다. 과거에는 '로그인 한 사용자를 위한 개인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당신이 어제 어떤 페이지를 몇 초 동안 봤고, 이전에 어떤 제품을 구매했고,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까지 파악한 에이전트가 응답하게 된다. 브랜드는 더 이상 광고가 아니라, 맥락과 감정을 이해하는 대화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Adobe Analytics는 2025년 2월, 미국 주요 소매·여행 사이트에 대한 생성형 AI 기반 서비스의 트래픽이 각각 1,200%와 1,700%나 급증했다는 수치를 공개했다. 이는 소비자들이 기존 검색·탐색 중심의 쇼핑 경험에서 벗어나 대화형 AI와 함께하는 ‘추천 기반 경험’을 선호한다는 분명한 신호다. 향후 교육, 의료, 금융, 공공 서비스까지 이 흐름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AI 에이전트의 전면 도입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도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데이터의 신뢰성과 윤리성이다. AI가 고객 경험을 설계하려면 필연적으로 고객의 민감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해석해야 한다. 어도비는 AEP 안에서 데이터 거버넌스, 프라이버시 보호, 규제 준수 등을 철저히 설계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기술 기업들이 끊임없이 검증받아야 할 핵심 영역이다.
또한, 에이전트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을 일부 맡게 될 경우, 그 결정이 불투명하거나 편향된 판단을 내릴 위험도 존재한다. 특히 다국적 기업들이 다양한 문화적·법적 환경에서 AI 에이전트를 운용하려면, 로컬 규제에 맞춘 데이터 처리, 언어와 감성의 차이까지도 고려되어야 한다. AI는 도구일 뿐, 그 방향성과 책임은 결국 인간의 몫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면에서 Adobe의 전략이 흥미로운 점은, 에이전트를 완전한 자율주체로 두지 않고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개념으로 묶었다는 점이다. Agent Orchestrator는 에이전트의 개별적 판단을 조율하고, 브랜드의 철학과 전략에 맞춰 동기화하는 조율자로 설계되었다. 이는 기술의 자율성과 기업의 통제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어도비는 Microsoft, IBM, SAP 등과의 협력을 통해 다양한 엔터프라이즈 시스템에 연동 가능한 확장성을 확보하고 있다. 마케팅뿐만 아니라 HR, 재무, 운영 등 전사적 영역으로 에이전트를 확장함으로써 **‘모든 부서가 협업하는 AI 생태계’**를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기업 전체를 하나의 오케스트라로 보고, 각 에이전트를 악기로 배치해 브랜드라는 곡을 완성하는 구조다.
이제 중요한 건 이 흐름을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 준비할 현실’로 보는 시각이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는 AI 에이전트를 전담하는 CX팀이 생기고 있고, 마케팅 직무 자체가 ‘AI 활용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더 이상 "챗봇 하나 설치하면 끝"이라는 수준을 넘어, 브랜드의 철학을 이해하는 AI 에이전트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웹사이트를 방문하고, 에이전트가 그 사람의 취향과 니즈를 파악해 가장 적절한 경험을 설계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고객의 기억에 오래 남는 감동은 이제 사람이 아닌 AI의 손에서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AI는 차가운 기술이 아니라, 따뜻한 연결을 위한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다. 이제는 기술의 발전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기술을 어떻게 우리의 가치와 감성에 맞춰 사용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그리고 어도비가 보여준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은 그 길에 놓인 첫 악보가 될지도 모른다.
| 작가 프로필
이용호 작가는 스마트공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AI 머신비전’ 전문회사인 ‘호연지재’를 경영하고 있다. ‘머신비전’에서 인공지능 딥러닝에 의한 영상처리기술을 자주 적용하다보니 10년 이상 연구한 AI 분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현재는 인공지능 커뮤니티인 ‘AI 에이전트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SKT 이프랜드 플랫폼에서 3년 이상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호몽캠프’를 110회 이상 진행한 바 있다.
작가는 ‘50플러스 오픈랩’이라는 중장년과 시니어의 디지털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 플랫폼에서 수석 가디언즈로 AI 분야의 전도사로 활동하기도 한다.
주요 강의 분야는 “챗GPT 시대 생산성을 500% 높여주는 인공지능”, “머신비전에서의 인공지능 활용”, “손에 잡히는 인공지능”, “스마트폰 AI 활용하기”, “시니어와 MZ세대간의 소통”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손에 잡히는 인공지능』, 『나는 시니어 인플루언서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