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의 손에 잡히는 인공지능
AI 번역기가 전문 통역사로 변신하는 마법
해외여행을 가거나 외국어 문서를 읽을 때 구글 번역이나 파파고 같은 번역 도구를 써본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단순한 문장은 그럭저럭 번역되지만, 조금만 복잡하거나 전문적인 내용이 나오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번역이 나와서 당황했던 적 말이다. "안녕하세요"는 "Hello"로 잘 번역되지만, "저희 회사의 핵심 가치는 고객 중심의 서비스 정신입니다"라고 하면 "Our company's core value is customer-centered service spirit"처럼 문법적으로는 맞지만 어색한 번역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획기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AI 번역기에게 전문 번역사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같은 문장이라도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꿔보자. "당신은 15년 경력의 비즈니스 전문 번역사입니다. 기업 홍보 자료와 공식 문서 번역을 주로 담당하며, 단순한 직역보다는 해당 문화권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의역을 선호합니다. 다음 문장을 영어권 비즈니스 환경에 적합하게 번역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면 어떨까. 이렇게 하면 "Our company is built on a foundation of putting customers first in everything we do"처럼 영어권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번역된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AI가 단순히 단어 대 단어로 치환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역할에 맞는 번역 패턴과 표현 방식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번역 요청을 받으면 가장 무난한 직역 방식을 선택하지만, 전문 번역사 역할이 주어지면 해당 분야의 관례와 뉘앙스를 고려한 번역을 수행한다. 마치 숙련된 동시통역사가 단순히 말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배경까지 고려해서 전달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역할 부여의 효과는 특히 전문 분야 번역에서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의학 논문의 한 문장을 번역한다고 해보자. "환자의 증상이 호전되었다"를 일반 번역기에 맡기면 "The patient's symptoms improved"라는 평범한 번역이 나온다. 하지만 "당신은 의학 번역 전문가입니다. 국제 의학 저널에 게재될 논문을 번역하며, 의학계에서 통용되는 정확한 용어와 표현을 사용합니다"라는 역할을 부여하면 "The patient demonstrated clinical improvement" 또는 "The patient showed symptomatic amelioration"처럼 의학계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전문적인 표현으로 번역된다.
법률 문서 번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계약 조건을 위반하다"를 단순 번역하면 "violate contract conditions"가 나오지만, 법률 번역 전문가 역할을 부여하면 "breach the terms of the agreement"나 "be in default of contractual obligations"처럼 법률 문서에서 실제로 쓰이는 정확한 법률 용어로 번역된다. 이런 차이는 단순히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 효력이나 해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문학 작품 번역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변화를 보인다. "그의 마음은 바다처럼 깊었다"라는 시적 표현을 일반 번역하면 "His heart was deep like the ocean"이라는 직역이 나온다. 하지만 "당신은 문학 번역가입니다. 시와 소설의 은유적 표현과 운율을 살려서 번역하며, 원작의 감정과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라는 역할을 설정하면 "His heart held depths as vast as the sea" 또는 "Within his heart lay oceanic depths"처럼 영어권 독자에게도 시적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우아한 번역이 만들어진다.
기업 환경에서 이런 전문화된 번역은 매우 실용적이다. 마케팅 자료 번역 시에는 "당신은 글로벌 마케팅 전문 번역사입니다. 브랜드 메시지가 타겟 시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려하며, 문화적 차이를 반영한 현지화 작업을 수행합니다"라는 역할을 부여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단순한 언어 번역을 넘어서 해당 시장의 소비자 정서와 문화적 배경을 고려한 마케팅 메시지로 탈바꿈된다.
기술 문서 번역에서도 전문성이 빛을 발한다. "당신은 IT 기술 문서 전문 번역사입니다. 개발자와 엔지니어가 이해하기 쉽도록 기술 용어를 정확히 번역하며, 해당 분야에서 통용되는 표준 용어를 사용합니다"라는 설정을 하면, 복잡한 기술 개념도 명확하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번역 품질을 더욱 높이려면 구체적인 상황 설정도 중요하다. "이 문서는 일본 파트너사와의 공식 계약서입니다. 예의를 중시하는 일본 비즈니스 문화를 고려하여 정중하면서도 정확한 표현으로 번역해 주세요"라고 하면, 단순한 번역을 넘어서 문화적 적절성까지 고려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교육 분야에서도 이런 접근법이 유용하다. 외국 교재를 번역할 때 "당신은 교육 전문 번역사입니다. 중학교 수준의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복잡한 개념은 쉬운 용어로 바꾸고, 한국 교육과정에 맞는 예시로 변경하여 번역합니다"라는 역할을 부여하면, 학습자의 이해도를 높이는 번역이 가능하다.
의료진을 위한 해외 논문 번역에서는 "당신은 의료진을 위한 전문 번역사입니다. 최신 의학 용어를 정확히 번역하되, 임상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실용적인 관점에서 번역합니다"라는 설정이 효과적이다. 이렇게 하면 이론적인 내용도 실제 진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번역된다.
번역 작업에서 주의할 점도 있다. 너무 창의적인 역할을 부여하면 원문의 의미가 왜곡될 수 있다. "당신은 시인입니다"라는 역할로 기술 문서를 번역하게 하면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다. 또한 문화적으로 민감한 내용의 경우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며"라는 조건을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번역의 목적과 독자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학술 논문용인지, 일반 대중용인지, 비즈니스 문서용인지에 따라 적절한 전문가 역할을 설정해야 한다. "이 번역문은 국제학회 발표용입니다"라든지 "소셜미디어에 게시할 간단한 안내문입니다"처럼 구체적인 용도를 명시하면 더욱 적절한 번역을 받을 수 있다.
앞으로 글로벌 소통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에, 이런 고급 번역 기법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의 차이는 더욱 커질 것이다. 단순히 구글 번역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AI에게 적절한 전문가 역할을 부여해서 진짜 번역가 수준의 결과물을 얻는 방법을 익혀두자. 같은 번역 도구라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품질의 번역이 나온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작가 프로필
이용호 작가는 스마트공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AI 머신비전’ 전문회사인 ‘호연지재’를 경영하고 있다. ‘머신비전’에서 인공지능 딥러닝에 의한 영상처리기술을 자주 적용하다보니 10년 이상 연구한 AI 분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현재는 인공지능 커뮤니티인 ‘AI 에이전트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SKT 이프랜드 플랫폼에서 3년 이상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호몽캠프’를 110회 이상 진행한 바 있다.
작가는 ‘50플러스 오픈랩’이라는 중장년과 시니어의 디지털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 플랫폼에서 수석 가디언즈로 AI 분야의 전도사로 활동하기도 한다.
주요 강의 분야는 “챗GPT 시대 생산성을 500% 높여주는 인공지능”, “머신비전에서의 인공지능 활용”, “손에 잡히는 인공지능”, “스마트폰 AI 활용하기”, “시니어와 MZ세대간의 소통”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손에 잡히는 인공지능』, 『나는 시니어 인플루언서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