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야 한다.
사랑의 의무를 져버리는 것은 동물이 되는 것과 다름 없다. 분명 [자기 앞의 생]에서는 큰 울림을 남겨준 문장이었는데, 영화 <더 랍스터>에서는 무시무시한 명령이 되었다.
스포일러 있음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자신의 성적 취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양성애자는 허용되지 않는다. 신발 사이즈도 정해진 규격에 맞춰가야 하는 곳이다. 애매한 ‘1/2’은 제공되지 않는다.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이 두 가지로만 사람을 구분한다. 때문에 그들은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자신의 짝을 만나야만 한다. 동물이 되지 않으려면 ‘외톨이’를 사냥해서 시간을 벌거나, 자신에게 맞는 짝을 찾아야만 한다. 외톨이를 사냥하는 것이 자신의 짝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다. 이 규율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엄벌을 처하는 것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그들은 ‘사랑’을 찾는 것이 아니다. ‘짝’을 찾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의 감정은 정확히 얘기하면 주체의 감정이다.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내 마음’이 사랑인 것이지, 대상 그 자체가 사랑은 아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이를 안고 있지만, 그 상대의 모습을 지우면 나는 나를 안고 있다.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순전히 나의 문제이다. 물론 사랑을 함에 있어 상대방이 누군지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그들이 짝을 찾는 행위는 사랑을 찾는 것과는 다르다. 코피를 흘리거나 냉혈한 인간으로 둔갑해 자신의 본 모습을 숨겨가며 애써 공통점을 과시하는 것이 어떻게 사랑일 수 있겠나.
데이비드가 호텔을 나온 것은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숲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톨이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고, 그들의 규칙에 따라야 했다. 더 큰 자유를 얻는 것은 완전한 사회의 규율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사회와의 계약에 합의하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아도 될 자유’를 찾기 위해 떠난 곳에서 그는 ‘사랑해도 될 자유’를 빼앗겼다. 운명적이게도 자신과 같은 공통점이 있는 그녀와 행동으로만 청혼을 할 수 있게 될 만큼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사랑을 해서는 안 되는 사회’에서 사랑을 하기 위해 그는 계약을 파기한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리더를 죽이고 그곳을 도망쳐 나온다.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곳으로 그녀와 함께 떠난다.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 파도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그들은 그 섬으로 무사히 떠난 것 같다. 데이비드의 눈도 함께 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제로 가죽을 벗겨서 동물로 만들지 않을 뿐이지, 사회는 외톨이인 사람들을 동물 대하듯 하지 않던가. 억지로 코피를 흘려가며 짝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합법인지 아닌지 판단하려 한다. 자유롭게 살려면 투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노골적인 영화 속 상징들과 영웅처럼 전투 장면을 묘사하는 슬로우 장면 때문에 영화는 무척 판타지 같았다. 그럼에도 뻔뻔하고 당당하게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하는 투가 무척 마음에 든다. 영화 전반에 깔린 음악도 좋았고, 레아 세이두도 좋았다. 난 참 좋더라, 이 영화.
2015.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