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따뜻한 위로 [내게 무해한 사람]

힘겹게 자라 어른이 된 우리에게

by Ellie


어린이던 시절을 떠올리면 한가한 일요일 오전에 심부름을 떠나던 일이 생각난다. 부모님과 어린 동생은 안방에서 TV를 보고 있을 때, 찬거리를 사러 마트에 다녀오거나 근처 약수터에서 물을 떠 오곤 했다. 투명한 물이 담긴 페트병을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약간 서러웠다. 가끔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 때면 이 얘기를 하고 싶어진다. 엄마는 몰랐지, 그때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그러나 끝내 그 얘기를 하지 못하는 건 착한 나의 엄마가 미안해할 테고, 내가 받은 사랑이 그때의 서러움보다는 곱절로 컸다는 것을 이제 알기 때문이다.


평생 잊고 싶지 않은 날보다 불현듯 떠오르는 보통의 날들을 지나 지금의 내가 되었다.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으러 다니고, 어린 동생이 걸으면서 조는 줄도 모르고 해 질 녘 손잡고 집에 데려가기도 하고, 교과서를 잃어버린 게 큰일인 줄 알아 혼나기 싫어서 학교 안 가겠다고 떼도 쓰고, 피아노만 있는 방에서 하농을 연주하고, 구민회관에서 개최하는 연주회에 어쩌다 나간 날에 엄마가 사준 드레스를 입고, 동생이랑 집에서 까불고 놀다가 유리컵을 밟아 발바닥이 찢어져 고작 세 바늘 꿰매면서 악악 울어대고, 그네 타다 떨어져 왼쪽 손목뼈에 금이 가고. 찬찬히 떠올려보면 조금씩 생각나지만 처음 해보는 게 많아 실수투성이였고, 모르는 게 많아 상처 주기 바빴다.


그 어린이가 책 속에 있다.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있는 스무 살 무렵의 내가 있다. 그 시절을 아프게 기억하는 지금의 나도 있다. 작가는 어딘가 밀어둔, 자주 꺼내 보지 않던 그 무렵의 나를 불러냈다. 작은 세상이 전부이던 때 상처를 주고받은 얼굴이 떠올랐다.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지금은 이름을 잊은 친구들까지. 주인공들과 함께 어리숙함을 탓하고, 용기 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작가와 비슷한 세대에 태어나고 자라 더 크게 공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나만 알고 있는 작은 상처들이 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말은 충분히 아파할 기회를 준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어린 날로 돌아가, 그 어린이에게 괜찮다고 얘기해줄 수 있었다. 그 어떤 말보다 따뜻하고 큰 위로를 받았다.


# 영화 <우리들>이 떠오른다. 곧 개봉할 <프리다의 그해 여름>과도 결이 비슷하다.




어린아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을, 한량없는 슬픔과 외로움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른이 된 우리 모두는 그 시간을 지나왔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어린 시절은 다른 밀도의 시간 같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같은 십 년이라고 해도 열 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 이후에 지나게 되는 시간과 다른 몸을 가졌다고. 어린 시절에 함께 살고 사랑을 나눈 사람과는 그 히우 아무리 오랜시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이어져있기 마련이었다. - 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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