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남동 심리카페 May 17. 2023

안개 속에 있어 막막하고 답답한가요?

혹시,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막막하고 답답한가요? 


안녕하세요, 숲길에 있는 연남동 심리카페입니다. 


심리카페에서 상담을 해드리다 보면 각자 다양한 안개 속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오히려 그 안개 속으로 더 들어가게 만들고, 긍정적으로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예 그 안개 속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게 만드는 모습을 또한 보게 됩니다. 그것도 너무도 많이, 너무도 자주. 


당신이 지금 빠져 있는 안개 속에서 걸어 나오거나, 그 안개를 걷히게 해 줄 이야기로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님의 ‘사람 공부’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을 각색해서 들려드릴게요.






저의 삼십 대 정신과 의사 시절은 자욱한 안개 속이었습니다.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가 된 이후의 시간이었음에도 그랬습니다. 


사십 대가 되어서야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죠. 



사람의 속마음 듣는 일을 병원 진료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하면서부터입니다. 



저는 진료실이 아닌 공간에서 재벌 오너,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임원, 정치인과 법조인처럼 우리 사회의 이른바 성공한 개인들과 속 깊은 상담을 했습니다. 동시에 고문피해자, 해고노동자, 집단 트라우마 피해자들처럼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이들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상처와 소외의 고통에 대해 들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이질적인 풍경의 공존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저는 그들을 동시에 만나는 일이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오전에 재벌 회장을 만나 그의 속마음을 공감하고, 저녁에 해고노동자를 만나 그의 눈물을 듣는 일이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전날 정치권력작의 병약한 부모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다음날 국가폭력 피해자의 절규에 귀 기울이는 일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제가 만나는 이들을 개별적인 한 개인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예전의 그 안개 같았던 진료실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요. 저도 그들도 조금 달랐을 것입니다. 처음엔 조금 달랐을 그 차이가 시간이 가면서 매우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만나는 공간이 달라졌을 뿐인데 진료실을 벗어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진료실에서 저는 의사이고, 진료실에 들어오는 사람은 '환자'가 되는 심리적 구도를 갖게 됩니다. 저도 구태여 그런 비대칭적인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구도에서 벗어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게 여러모로 유리하고 편했으니까요.  


의사라는 절대적 권위가 보장된 곳에서 저는 사람에 대한 입체적인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정신과 진료실을 떠나고 한참 지나서야 그걸 알았습니다. 진료실에 있는 동안 사람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입체적인 탐구에 게을러져 있었다는 것을요. 정신의학 지식과 약물치료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저는 상담을 잘하고 싶었고, 어떤 사람의 핵심적인 문제를 빠르게 파악해서 그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진료실에서의 비대칭적 구도와 지나치게 의료적이고 편향된 시선을 가지고는 그러기가 불가능했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온 사람은 의료적, 병리적 존재인 환자이기 때문입니다. 진료실 구조 안에 있을 때 저는 의사이고, 진료실에 들어온 사람은 환자로 제한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자를 입체적인 사람으로 인식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치유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보면, '공부나 많이 했지 사람 마음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리검사도 마찬가지예요. 세월호 참사 초기에 유가족들을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심리검사지를 나눠줬습니다. 문항만 거의 400~500여 개가 되는 심리검사지였어요. ‘잠을 못 잔 적이 있습니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까?’ 이런 질문들을 보면서 유가족들이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죽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올바른 치료는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가능하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늘어놓았죠. 그러나 재난 현장에서는 다르게 적용해야 해요. 매우 예외적인 응급상황이니까요. 마치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실려온 부상자에게 야전병원 의사가 ‘나는 MRI 결과가 있어야만 치료를 할 수 있어요’라고 버티면 안 되잖아요. 


또한 유가족들과 생존학생들은 집중력이 5분 이상 지속되기가 어려운 상태였어요. 수백 개의 질문에 일일이 답할 수 있는 집중력이 없는 상태인 것이죠. 그때 유가족들이나 생존학생들이 하던 얘기가,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한참을 보고 나서도 뭘 봤는지 생각이 전혀 안 난다고 했어요. 집중이 안 되는 거죠. 그런 상태에서 400~500 문항의 검사지를 주면 할 수 있나요? 없죠. 


당시 유가족 부모들 중에는 실수로 큰 교통사고를 내거나 공장에서 작업을 하다가 안전사고를 당하는 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집중을 못하고 있다가 변을 당한 거죠.


초기에 생존학생들이 심리검사지를 받았을 때도 “자꾸 하라니까 하긴 했는데, 뒤에는 질문이 너무 많아서 그냥 아무거나 동그라미 쳤어요”라고 말한 아이들이 많았어요.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은
트라우마 초기의 혼돈 상태에서 나타나는 흔한 증상입니다. 



이럴 때는 이런 문항지 검사지보다 섬세한 문진과 관찰이 피해자 상태에 대해 더 정확하고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죠. 병원 진료실에서 하던 방식 그대로 했었던 것입니다. 받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매뉴얼에 따라 공급자 위주의 접근을 한 것이죠.



무엇에 기반을 둔 것이고, 어떤 것에 근거를 둔 것인지에 대해 묻는 경우들이 있어요. 사실은 본질적인 이해가 필요한 것인데 말이죠. 감정을 심리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상담이 진행되지 않아요. 그 점을 간과한 채로 이루어졌던 접근과 대책은 모두 와닿지 않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료실 문제에 대해 거론하는 건, 진료실을 떠난 후 제가 정신의학 방면의 직업인으로서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그간의 경험 때문입니다. 



'진료실이 아닌 세팅에서' 사람의 속마음을 만나면서 저는 삼십 대의 안개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더 섬세하고 더 과감한 상담이 가능해졌다. 그토록 원했던 상담 후의 개운함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재벌 회장이나 대통령 후보인 정치인을 만나서 그들의 고충을 들을 때, 고문생존자나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촛농 눈물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 그 개인에게만 집중합니다. 그런 순간들을 통해 저는 예전 진료실의 의사였을 때보다 유능해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과 진료실 밖 현장은 저의 스승이죠. 그런 스승들로부터 사사받고 있고 그래서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정신과 후배들에게도 말하곤 해요. 진짜 실력을 키우려면 병원에 있지 말고 현장으로 나오라고. 흰 가운도 없고 전문가 아우라를 지켜주는 어떤 장치도 없는 곳에서 수평적인 관계의 한 개인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 순간 내 앞에 앉아 있는 이는 스승이 된다고요. 그런 과정을 통해 사람에 대해 얼마나 많은 깨달음과 통찰이 생기는 지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의사가 아니고 '사람'에 가까워질수록 의사로서의 실력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사람'이 될수록 탁월한 치유자는 절로 되죠. 오랜 현장 치유자의 경험으로 가지게 된, 신념에 가까운 믿음입니다. 


저의 진짜 사람 공부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는 이를 갑자기 잃게 되거나 헤어지게 되었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