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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남동 심리카페 May 18. 2023

깊은 상처나 상실감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해주세요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을 만큼의 깊은 상처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갑자기 빠지게 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위로해 주는 말? 안심시켜 주는 말?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인 말? 아니면, 분석과 해결책 제시를 해주는 말?


안녕하세요, 숲길에 있는 마음 약방 연남동 심리카페입니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님은 ‘사람 공부’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해 줍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그것은 상담을 받으라고 등 떠밀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있게 도와주고, 그 상황에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지금껏 자기가 구축해 온 모든 세상이 완전히 무너져버렸지만 나 자신까지 무너진 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심리적, 물리적 폐허 속에서도 그 사실을 최소한의 기반으로 삼아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누군가의 도움도 받아들일 수 있어요. 자기 면역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항생제를 투여해도 병을 이기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마치 눈을 떠보니까 공간이동해서 생전 와본 적 없는 오지에 떨어진 것과 같은 상황인 것입니다. 어제까지 알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떨어진 거예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방향감각도 전혀 없는 상황에 처한 거죠. 


그런 사람에게는 갑자기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하고, 옆에서 아무리 조언을 해도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여기가 어딘지, 내가 왜 이곳에 와 있는지 알아야 움직일 수 있는 거예요. 이쪽으로 가도 되겠구나, 안 다음에야 비로소 스스로 발을 뗼 수 있어요. 




먼저 해주어야 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을 만큼의 깊은 상처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해주어야 하는 건, '내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여, 이쪽으로 와'하는 식으로 주도하는 도움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먼저 해주어야 하는 것이 있어요. 


갑자기 오지에 떨어진 사람에게 지도 한 장을 쥐여줘서 이들이 혼란 속에서도 최소한의 자기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게 하고, 그래서 극단적인 무력감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일입니다. 그 지도를 보고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야 해요. 


사람은 자기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상황에 대한 자기 주도권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상황에 대한 자기 통제력을 갖게 됩니다. 


'할 수 있어'란 마인드와 '다 잘 될 거야'라는 정신승리적인 노력은 오히려 자기 주도권과 자기 통제력을 잃어가게 만듭니다. 마음만, 생각만 바꾸면 되는 것을 불편하고 힘들게 자신이 주도를 하고 자신이 통제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한 상황을 자신이 파악하고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빠져있는 상태에서 나오려 하는 자기 의지가 발동 걸리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가장 불안하고 공포스러울 때는 예측 불가능할 때입니다. 


혼돈과 불안이 극심해지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일어나고, 그에 압도되면 마침내 탈진하고 맙니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에너지 고갈 상태가 되는 것이죠. 그렇게 무력한 상태로 추락하는 것이죠. 그런 상태를 잘 보여주는 것이 집중력 장애입니다.


트라우마를 겪게 된 사람에게는 이런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막는 것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치유가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마인드와 정신력으로 미화하고 회피하듯 풀어내는 분들이 이런 상황에 자신을 계속 방치하고 있게 됩니다. 문제 개선은 문제가 있어야지 개선을 하는데, 문제가 없고 아니라고 하니 개선이 없이 그냥 혼돈과 불안,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는 환경 속에 자신을 계속 놔둡니다.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게 되는 일을 겪은 사람에게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문제는 그 내용과 방식에 있습니다. 


흔히 취하는 모습은 크게 세 가지인데. 하나는 불안, 초조감, 불면, 혼돈과 집중력 장애 등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약물치료'를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밀한 개인상담을 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회피와 방치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깊은 상처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내밀한 속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상황 자체에 대한 쇼크, 혼돈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이니까요. 




괜찮아? 얘기해 봐.


곁에서 걱정이 돼서 "괜찮아?"라고 물어보면, "모르겠어요. 괜찮아요." 그러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처음에는 현실감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가 힘든 상태인 것입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당시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라 현실감 있게 느끼기 시작하죠. 주변 사람들은 잊힐 만하다 싶을 때 당사자들은 또렷하게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는 거죠.


이건 인간이 자기 한계를 넘을 정도의 극한적인 고통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고통이나 슬픔 같은 감정을 차단해서 아예 못 느끼도록 감정을 마비시켜 버리는 거죠. 자기 보호를 위한 무의식적인 반응이에요. 피해 당사자인데도 마치 남의 일처럼 행동하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더 세심하고 섬세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괜찮아"가 '괜찮아'가 아닌 거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을 일을 겪은 사람에게 "괜찮아? 힘든 거 있으면 얘기해" 하면 그걸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건 마치 퍽치기를 당해서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에게 지금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묻는 것과 같아요. 


그런 질문 자체가 그런 일을 겪은 사람에게 '저 사람은 내 상황을 절대 알 수 없겠구나'라는 마음을 갖게 만듭니다. 자기 고통에 대해 말로 표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지만, 트라우마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엑게는 더 힘들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처한, 그리고 처할 심리적 상황에 대한 '자상한 설명'입니다. '자세한'과 '자상한'은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납니다. 자기 상황을 알 수 있게, 부정적인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이야기해 주면서 스스로 자기 통제력을 갖추게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증상들에 대해 미리 알려주면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덜 당황하고 덜 압도될 수 있습니다.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는 상태에서 그 감정의 수렁에 대책 없이 빠져드는 것은 전혀 달라요. 훨씬 견디기가 나아요. 



'아, 지난번에 들었던 것이 이런 상태인 것이구나. 이런 상태가 이렇게 계속해서 나타나는 거구나. 나도 그렇구나.' 



이렇게 자기 상태를 심리적으로 제대로 해석할 수 있고,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으면 증상에 무력하게 압도되지 않아요. 모르고 당할 때보다 훨씬 잘 견딥니다. 힘들어도 덜 힘든 거죠.


그런데 제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 무턱대고 긍정적으로, 무조건 좋게 좋게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자기 통제력을 가질 수 없게 만듭니다. 그저 그 순간의 불편감과 불안감만 모면하기 급급한 것이죠. 그러다 두려움이 엄습해 오면 내가 점점 이상해져 간다는 불안에 휩싸이게 됩니다. 


똑같이 물이 두렵고 어둠이 두려운 증상을 겪더라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고 겪고, 나만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는 걸 알면 안심하게 됩니다.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자신이 처한, 그리고 처할 심리적 상황에 대한 '자상한 설명'은 나타나는 자신의 증상을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대화를 닫게 만드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화를 닫게 만드는 말이란, 마인드와 생각으로 현재 상황을 극복시키려고 한다거나, 분석과 솔루션으로 문제를 해결하듯 접근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힘들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얘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진짜로 잠을 못 자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이래도 되는 거예요? 언제까지 그래요?"


이렇게 물으면 분석하거나 해결방법을 얘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설명을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의 낯선 증상들에 관해 조금씩 이야기하게 되고, 자기 상황에 대해 점점 이해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점점 자기의 진짜 속 이야기,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게 됩니다. 






기억해야 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을 만큼의 깊은 상처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갑자기 겪게 된 사람이 원래 지니고 있던 온전함을 일깨워주고, 자신의 온전함에 대해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그래서 그 힘으로 결국 자신이 빠져있는 수렁에서 걸어 나올 수 있게 옆에서 돕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식, 힘, 명민함, 분석, 여러 치유기법 등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고 기능적인 존재가 아니에요. 대부분의 사람은 논리적이고 이론적인 과정과는 다른 비정형화된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치유가 돼요. 


당신에게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이게 맞는 것이고 사실이고 그래서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이 당신에게 불편함을 준다면, 그 말을 들을 필요는 없으세요. '이렇게 해야 돼'라는 식으로 주도하는 도움은 도움이 안 되니까요. 그냥 흘리시고 선을 그어 분리를 하세요. 그렇게 하셔도 되고, 그렇게 하셔야 돼요. 불편함을 주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NO! 이렇게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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