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남동 심리카페 Dec 31. 2024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갖게 된 생각

이 글이 누군가의 슬픔과 상실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남동에 심리카페가 만들어지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라는 글의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갖게 된 생각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제가 가졌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다르게 자랄 수 있었다면, 다른 삶을 사셨을 텐데



말만 놓고 보면, 불행하셨거나 잘못 사셨던 것처럼 보이는 면이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으세요. 저의 아버지는 약대 교수셨어요. 할아버지도 약대 교수셨죠. 그리고 할머니는 화가셨답니다. 할머니 시대에 여성이 화가로 활동을 하다는 것은 지금보다는 아주 많이 힘들고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해요. 


 

엘리트의 좋은 집안에서 아버지는 태어나셨던 거이였죠. 표현하기가 많이 조심스러운데, 필요한 만큼의 공감과 교감, 이해와 보살핌은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성인 아이'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셨던 것 같아요. 성인의 삶을 살지만, 아이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성인 아이의 삶을 사셨겠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여러 분들이 들려주시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들에서였습니다. 너무도 성인의 모습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장례를 치르면서 그 모습 안에 있는 진짜 어떤 감정과 마음으로 사셨을지가 그려졌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들이 아버지가 보내야 했던 시간들에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져 미안했었습니다. 전 아버지를 너무 어른으로만 생각을 했던 것이었죠. 그래서 원망도 하고, 그래서 더 살갑고 다정하게 대해드리지 못했었죠. 



저의 아버지는 제가 제대하고 일주일 있다가 돌아가셨어요. 입대를 하기 얼마 전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잠실에 있는 호텔에 가족이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얘기를 해주셨죠. 식당 분위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다는 것은 하나의 사실을 전달받는 것만 같았어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식당의 분위기만큼이나 어려웠었죠. 



저는 제대하고 군복을 입은 상태로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갔고, 아버지는 군대에서 무사히 제대해서 돌아온 막내아들인 저를 보면 병실 침대에 누워있으신 상태에서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맞아주셨죠. 나중에 어머니에게 얘기를 듣자니, 계속 통증으로 아파하시고 괴로워하셨다고 해요. 아버지가 그렇게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었다고요. 



아버지가 환하게 미소를 지어주셨던 순간은 찰나였고, 돌아가시기 일주일 동안은 계속 아파하시고 고통받고 있으신 모습을 보아야 했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저에게 남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파하시고 고통받고 있으신 표정이어서 더 장례식 때 아버지 지인 분들로부터 듣게 되었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들에 더 마음이 뭉클해졌던 것 같네요. 



그 당시 저희 가족은 슬픔을 애도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애도가 있어야 했던 자리에 애도가 아닌 다른 것이 있었죠. 바로 책임감과 일상으로의 적응이였습니다. 책임감과 일상으로의 적응이 애도가 있어야 했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죠. 



누르고 숨기고 언급하지 않고,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서로에게 조심할 뿐이었죠. 슬픈지도 몰랐었어요. 방 안에 있다가 갑자기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면 너무도 힘들어지곤 했었죠. 



저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애도의 시간은 없었지만, 대신 아버지와 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 저는 공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복학해서 편입 시험 준비를 했었죠. 말 그대로 '어릴 때 다르게 자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현실에서 그러한 역할을 해주는 삶을 살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 심리학과가 아닌 아동학과로 편입해서 대학원을 아동 상담으로 가게 되었죠. 심리학과는 전체 연령에 관해 다루는 것이었고, 아동학과 안에 있는 아동상담은 제가 원했던 '어릴 때 다르게'를 더 다루는 것으로 느껴졌었으니까요. 



그 시간 이후로 심리카페를 만들어 8년을 운영하며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왔었죠. 다르게 자라고 다르게 살아갈 수 있게 해드리기 위한 일들을요. 그리고 애도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애도가 있을 수 있게, 상실과 슬픔의 감정이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회피해버리지 않게요. 




슬픔에 사려 깊게 대하는 모습에 관해 접해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글에 그 내용을 담아 놓았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