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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남동 심리카페 Jun 30. 2023

누군가의 멈춰 버린 시간, 고독사와 쓰레기



누군가의 멈춰버린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해주는 일은 귀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별, 이혼, 해고, 아끼던 반려동물의 죽음, 가족의 사고사...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갑작스런 상실은 시간을 멈춰버리게 만들죠.


그리고 시간이 멈춘 사람의 집은 쓰레기 집이 되기가 쉽습니다. 누군가의 시간이 멈춰버린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유품 정리와 특수 청소 일을 스물두 살 때 시작한 고지마 미유 씨는 고독사의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5년 동안의 경험을 <시간이 멈춘 방>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고 '쓰레기 집, 그 각각의 사정'이라는 부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처음 고독사 현장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느꼈던 이상한 감정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갑작스레 주인을 잃은 방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습니다. 줄곧 이어지던 생활이, 인생이, 그 어느 시점에서 완전히 정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독사가, 지금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독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젊다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스물두 살 때 청소하러 간 현장의 고인도 스물두 살의 젊은 남성이었습니다. 사후 3개월이지나 발견된 사례였죠. 


현실을 알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남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미유씨는 2016년 장례업계 전시회인 '엔딩 산업전'에 고독사 현장을 미니어처로 만든 것을 전시하게 됩니다.


고독사의 현실이 세상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는 사실이 초조했습니다. 언론 보도시 고독사 현장 사진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묻히고 마니까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에게 '고독사가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독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청소를 의뢰받는 쓰레기 집 중에는 살던 이가 사망한 경우도 있지만, 거주자가 직접 쓰레기를 처분해달라고 의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뭉뚱그려 쓰레기 집이라 부르기는 해도 쓰레기의 양은 다 다릅니다. 하지만 의뢰하는 분들은 그 양이 혼자서는 도무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양들인 것입니다. 



밖에서 보면 지극히 평범한 집인데 현관문을 열면 안은 별천지입니다. 대체 몇 년 분의 인생이 쑤셔 박혀 있는 것인지...


특히 여성의 경우, 그전까지 아무 문제없이 깔끔하게 치우고 살던 사람이 사소한 계기나 안쓰럽고 안타까운 사정으로 인해 쓰레기집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직업적으로 보면, 접객업이나 몹시 고된 업무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제 의뢰인 중에는 변호사,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 간호사, 연예 관련 종사자들이 많습니다. 


고객이나 환자, 직장 동료에 신경 쓰며 고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집안일이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 뒤로 밀리는 것이죠.


'오늘은 피곤하니까', '나중에 한꺼번에 하자' 하는 생각이 모이고 모인 결과가 서서히 쓰레기가 쌓여 어느덧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뢰인들의 대부분은 차림새가 말끔해서 겉모습만으로는 도저히 쓰레기 집에 살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번 그 간극에 놀라곤 합니다.


어찌 보면 그렇게 여기저기 신경을 쓰는 사람이기에 밖에서는 파김치가 될 정도로 일하고, 긴장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집에서는 무기력히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정리정돈이나 분류가 어려운 사람, 수집벽이 있는 사람, 애초에 정리 방법을 모른 채 혼자 살기 시작한 20대 의뢰인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집만 그럴까요? 인간관계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마음 속이, 일상 속이 쓰레기 집이 되어가죠. 청소를 의뢰받는 쓰레기 집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살던 이가 사망하거나, 거주자가 직접 쓰레기를 처분해달라고 의뢰하게 되는 상황까지 가게 되죠. 


이처럼 집이 쓰레기 천지로 변하는 사정은 각양각색이지만, 현장을 청소하다 보면 희한하게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쓰레기는 이불 주위와 같이 방 주인이 자주 머무는 장소를 피한 곳, 다시 말해 창가나 벽 쪽에서부터 쌓이기 시작해 점차 방 중앙으로 그 분포 범위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누군가가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지 않으면 쓰레기 집으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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