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이옴 Dec 07. 2024

코다리를 다시 좋아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어딘가에 있을 법한 코다리 과장

좋아했던 코다리찜을 한 동안 싫어했다.



점심시간에 당당히 혼자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직장인인 나. 이런 게 익숙해지는 날이 오다니.


입사 초에는 부서원들이랑 점심시간을 함께 하지 않는 게 그렇게 눈치가 보였다. 아니, 부산에 일하는 3년 동안 그랬다. 렇게 말하면 대체 뭐 하는 회사이길래 점심도 따로 못 먹게 하나 싶지만,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었다. 회사의 조직 구조 상 수도권에

대부분의 기능이 몰려 있고, 각 지역을 관리하는 업무를 위해 지방 주요 지역에 사무실이 있었다. 그래서 지역 사무실에는 인원이 많지 않아 점심 약속이란 게 있는 날이 드물었다. 다른 부서에 있는 동기와 점심을 자주 먹는다 싶으면 부서원들의 눈에 띄었다. 글쎄, 그래서 눈에 띄었기 때문인 게 맞나, 유독 정과 유대감이 강한 경상도라 그랬을까. 나 역시 애초에 경상도 출신의 부모님 아래 태어나 경상도에서 죽 자랐으며, 밥을 같이 먹어야 정이 쌓인다는 엄마의 말에 어느 정도 동감하는 바가 있었으나 당시 나의 업무 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일이 많았기에, 점심시간 때만큼은 말하지 않고 좀 쉬고 싶을 때가 많았다. 부서원들 역시 같은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연차가 쌓이면 혼자만의 시간이 덜 필요해지는 건지 몰랐을 일이다.


늘 그런 건 아니었으나 점심시간이 불편하곤 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점심마다 받는 질문이 있었다.


"OO야, 뭐 먹을래?"


메뉴 고민은 막내의 몫. 아 물론, 내가 제시하는 메뉴를 먹은 적은 거의 없다. 결국 주로 부서장이 그날 당기는 식당으로 는데, 늘 내게 물어왔다. 칼국수, 덮밥, 돈가스 등을 제시했지만 늘 그날의 취향은 그게 아니셨나 보다. 유독 자주 갔던 곳이 있었는데, 길을 건너 죽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있는 추어탕집과 코다리집이다. 내게 메뉴를 묻지 않은 날 어디 가는지 모르고 따라가다가 오른쪽으로 꺾는다, 하면 불안해지는 거다. 코다리집 추어탕집 같은 건물 내 로 옆이었고, 그 방향에 다른 식당은 없었으니까.


당시 선배와 나는 추어탕을 정말 좋아하지 않아 운이 좋은 날엔 한 번씩은 도망가기도 했다. 운이 좋은 날이란 추어탕 메인 멤버, 그러니까 부서장을 포함한 몇이 식당으로 먼저 들어가고, 선배와 나는 가장 뒤에 걷고 있던 날이다. 바로 앞에 가시는 분께 저희는 따로 먹을게요, 살짝 전달하고 식당에 먼저 들어간 분들이 발견하기 전에 도망가버리는 거다. 다슬기 해장국을 좋아하는 구수한 입맛을 갖고 있지만 유독 추어탕은 먹기가 어려워 몇 숟가락 먹지 못하고 나오곤 했으니 굶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도피였다고 해두자.


코다리찜은 원래 어릴 때부터 좋아한 메뉴였던지라 사실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는데, 툭하면 가다 보그냥 그 사실 자체에 질려버렸던 듯하다. 당시 부서에 있던 아빠뻘의 과장님이 다섯 번 중 두 번은 코다리를 제시했다. 아무래도 누가 그에게 코다리, 아니 명태가 곧 멸종다고 일러준 게 분명하다.



와중에 코다리찜을 싫어하게 됐다고 말할 결정적인 사태가 발생한다. 마의 코다리집에 부서원 여덟 명이 가서 네 명씩 나누어 앉았는데, 나는 코다리 과장과 부서장을 포함그들 또래 세 분과 한 테이블에 앉게 됐다.  테이블에 코다리찜 중자 하나, 공깃밥 네 개. 밥이 나오고 앞에 있는 꼬리를 뜯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같은 테이블분들은 식사를 끝내는 데 얼마 걸리지 않 반면 나는 원래 식사 속도가 느린 편으로 그들이 밥공기를 비웠을 때  공깃밥은 반 정도가 남아 있었남은 코다리는 몸통 하나. 그리고 그때, 코다리 과장님이 식사 후 디저트로 마지막 코다리를 가져가서 맛있게 드셨다. 나는 코다리 꼬리 한 덩이와 밥 반 공기로 식사를 끝냈고, 식사 한 끼의 돈을 냈다. 갹출이었고, 인당 만천 원이었다. 코다리찜 중자가 사만 원, 공깃밥 하나에 천 원. 가뜩이나 그만 가고 싶은 코다리집에서 당시 물가에 만천 원이나 내 밥을 먹고도 배가 고팠다. 남은 맨 밥이라도 먹었어야 했을까. 글쎄, 이미 입맛도 떨어졌다.


부산 근무를 끝내고 서울 근무를 시작하고선 이런 일들은 없다. 동기나 선후배라거나 유관파트가 많아서 그런지 각자의 약속이 많, 개인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많으며, 약속이 없 사람들끼리 기분 좋게 식사를 할 수 있다. 역 차이라기보다 사무실 간 문화 차이였겠지만 서울 사람들은 코다리를 안 좋아하는 건지 공교롭게도 강남 사무실 근처에서 코다리집을 본 적 없다.


사실 나는 원래 명태 라인업을 좋아했다. 빨간 동태탕, 시원한 북엇국, 마요네즈 찍어 먹는 , 쫀득한 코다리조림까지. 주 먹았지만 분명 좋아했다. 서울에 와서부터는 먹으러 가자고 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안 먹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신입사원 시절 코다리 사태에 대한 썰을 풀고 다니면서 그 이후로 코다리가 싫어졌어요, 했으니 자체적으로 차단했던 것 같기도 하다. 코다리를 정말 먹지 않아야 비로소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 아닌가.


입사 동기가 있던  부서에도  다른 코다리 과장이 있었다. 다섯 번 중 네 번을 코다리를 먹었으니 그 동기는 코다리 조업 반대 운동을 벌인데도 납득이 됐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나는 나는 엄마가 코다리를 좋아하는 덕에 자연스럽게 다시 먹게 됐고,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코다리를 다시 좋아하는 데 4년이 걸린 셈이다. 그 동기도 지금은 서울에 있는데, 이제 코다리 트라우마를 극복했느냐고 물어봐야겠다. 코다리에겐 죄가 없으니까.



끝나지 않은 코다리 사태를 겪고 있는 모든 직장인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생태 : 명태의 신선한 상태
동태 : 명태를 얼린 상태
황태 : 명태를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해 건조한 것
먹태 : 황태와 비슷하게 건조한 명태를 불에 구워낸 것
북어 : 명태를 완전히 말린 상태
코다리 : 명태를 반건조한 상태
노가리 : 어린 명태를 말린 것

(한국수산자원공단 블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