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른 끼니, 식사의 당위성
거른 끼니는 평생 다시 찾아 먹을 수 없어. 밥을 먹었냐길래 아직 안 먹었다는 어느 날 아빠가 농담처럼 말했다. 사뭇 먹보 같은 발언일 수 있겠으나 알아서 챙겨 먹어야 할 게 비단 끼니만이 아닌 거처럼 느껴져서였을까, 자주 말한 것 같진 않은데 끼니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명제가 되었다.
명제 1. 거른 끼니는 다시 찾아 먹을 수 없다.
이전에 인기 있던 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 배우 한예슬이 역할을 맡았던 주인공 나상실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지나간 짜장면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들, 예를 들어 떠난 버스, 지나간 짜장면은 모두 돌아오지 않으니 있을 때 잡아야 하며 떠난 뒤엔 늦었다는, '제때'를 종용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아빠의 '거른 끼니' 명제는 제때는 물론 '제 것'도 포함한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의 끼 때는 누가 주지 않아도 내게 주어지는 것이며, 놓친다 해서 누가 가져다 놓지 않으니 내 끼니때에 내 밥은 내가 알아서 먹어야 한다. 밥도 밥이 아닌 다른 무엇도.
두 번째 명제는 단순하다. 이건 정말 사실에 근거한 게 아닌가 싶은데, 사람이 밥을 먹지 않으면 예민해진다. 안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으나 대체로 그렇다고 믿는 편이다. 그리고 나는 특히,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예민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회사 일이라는 게 혼자만 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예민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도 예민하게 굴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내가 밥 생각이 없어도—그런 날이 잘 없긴 하지만— 꼭 밥을 먹는 이유는 나뿐만이 아니라 당신들을 위함이다.
그래서 사실은 회사에서 누군가 예민하게 굴 때 동료들과 그런 이야기도 한다.
"왜 저래, 오늘 밥 안 먹었나 봐요."
누군가 언짢게 군다면 밥을 안 먹었나 보다, 하면 그만이다. 아, 명제로부터 피해 갈 방법은 있다. 체력이 좋을 것. 사람이 체력이 좋아야 덜 예민해지는데,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할 때 먹고, 자야 할 때 자고,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는 게 필요하다.
명제 2. 밥을 거르면 예민해진다.
나는 그래서 밥을 잘 거르지 않는다. 밥보다 잠을 택해 아침은 선택적으로 거르긴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먹는 데 진심이다, 노는 데 진심이다, 같은 말들을 하는데 나는 정말 먹는 데 진심이다.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에 이런 명분까지 세워놓았다는 게 그 근거가 아닐지.
연애하면서라던가 뭐 먹을까, 하면 다 괜찮아, 식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는데 나는 주로 늘 그날 먹고 싶은 게 있어 왔다. 그러나 그게 나만일까. 우리는 생을 '먹고사는 일'이라 표현할 만큼 먹는 게 중요하다—알고 있는가, '먹고 살다'가 아니라 '먹고살다'라는 단어가 그 자체로 있다는 걸. 필수적이라는 게 의, 식, 주 세 가지나 되는데 '입고 사는 일'이라거나 '자고 사는 일'이라 표현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이 나라는 먹는 데 정말 진심인 게 맞다.
게다가 사실은 '끼니'라는 말은 본디 시간을 의미하는 중세 국어 '낗'에서 유래했다. 해가 뜨고 질 때를 맞춰 일을 해야 하고, 그를 위해 맞추는 세 번의 식사 시간이 '낗'였고, 시간이 흐르며 지금 우리가 아는 끼니, 즉 식사의 의미까지 포함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끼니를 거르지 않고 잇는다는 것은 시간을 쌓는다는 것, 살아가는 그 자체인 것이다.
이걸로 끼니에 대한 두 명제가 참이라는 데 힘을 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