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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옴 Aug 26. 2024

장인의 워라밸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즉 일과 삶의 균형, 줄여서 워라밸은 이 시대 근로자의 높은 가치다. 워라밸을 지킬 수 있는 직장에서 워라밸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질책받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적어도 지금은 그런 경우가 많이 없는 듯하지만 유럽 문화권에서는 특히 근무 시간을 초과하는 사람에게 함께 일하는 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많이 일하라는 압박을 줄 수 있으니 그러지 않기를 당부한다고도 한다.

열심히 하는 것 자체를 누가 나무랄 것이며 직장에서는 좋아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좋은 평가로 이어진다면 동료에게 위기감을 줄 수 있다. 직장이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일하는 곳이기에 룰이란 것은 대체로 지켜져야 한다.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면, 워라밸은 지켜지는 것이 대체로 좋다고 믿는다.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난 장인이, 자신의 평생이 담긴, 자신의 가장 빛나던 때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장소에서, 자신의 몇 달 치 시간과 근육과 마음을 다 빼앗아간 악기가 연주되는 모습을 보는 그 표정이 궁금했다. 몇 달의 시간이 걸려 한 대의 클라브생이 태어난다지만, 사실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십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바친 거다. 장인의 삶이 그런 거니까. 워라밸을 강조하고, 나 역시 그것을 1번으로 놓고 살아왔지만, 인생 전체를 하나의 분야에 바친 장인에 대한 존경과 경외는 그 모든 원칙을 벗어나 있다.
- 김민철 <무정형의 삶>


워라밸이 지켜지지 않는, 또는 지키지 않는 삶에 막연한 불호가 있었다. 아니, 막연하다기보단 명확한 불호에 가깝겠다. 나 역시 워라밸이 1번이나 2번 즈음은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한다. 아, 워라밸은 근로자 기준 아니야? 장인이 근로자였나?


작가에 의하면 장인은 워라밸 밖이다. 어떤 분야에서 세월을 들여 예술 수준의 무언가 만드는 사람. 그러다 생각한다. 실체를 만들지 않으면 장인이 아닌가? 인간문화재라던가 하는 제도로 인정받지 않으면 장인이 아닌가? 누가 뭐라 해도 시간과 정성을 쏟는 분야가 있다면 장인이라 할 수 있 거 아닌가.



워라밸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차치한다. 다만, '혼자서' 지금부터 워라밸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지체하기로 한다. 그는 뭐가 됐든, 자신만의 마스터피스를 만들고 있는지도.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보며 정말 독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본다. 누가 메달은 주지 않아도, 메달 같은 칭찬을 해줄 거라는 기대가 없어도 우리 모두 기꺼이 독하게 살고 있다. 우리만의 마스터피스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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