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피에트로 바실리카가
성베드로 성당인지 모르고

호미의 유럽 여행 #10. 2025년 10월 3일

by 호미

이탈리아는 무시무시한 관광지다. 사람이 너무 많다. 한국에서 표를 예매하려고 알아봤을 때 우리 가는 날짜에 바티칸 박물관이 이미 매진이라 포기하고 있었는데, 크로아티아에 있을 때 혹시나 해서 검색했더니, 좀 비싼 가격으로 여행사를 통해 예매가 가능했다. 바가지를 쓰는 것이 좀 억울하긴 해도 여기까지 와서 안 보고 가는 것도 서운할 거 같아 비싼 돈을 주고 예매를 했다. 영어 가이드가 붙는 "skip the line" 티켓이라고 한다. 박물관 바로 앞 길가에 여행사 오피스가 있다. 조금 일찍 도착해 근처 카페에서 커피랑 빵을 좀 사 먹고 오피스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데스크에서 "25유로를 더 내면 산 피에트로 바실리카까지 볼 수 있는데 하시겠어요?" 물어 본다. 이미 돈을 비싸게 내서 심기가 불편하던 차에 "무슨 바실리카? 그게 모야? 돈 더 내는 거 싫어. 안해." 이래서 안하겠다고 하고 가이드를 따라 나섰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산 피에트로 바실리카는 성 베드로 성당이더라. 성당은 원래 입장이 무료다. 하지만 박물관과 성당은 연결되어 있고, 돈을 내고 가면 무료 입장객의 엄청난 인파를 피해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가이드 설명까지 포함됐다는 걸 감안하면 그 인파를 피하기 위해 25유로를 더 내는게 그렇게 아까운 선택은 아니다. (인파, 겪어 보면 안다.) 단지 우린 그때 그 무슨무슨 바실리카가 뭔지 몰랐을 뿐이다.

영어 가이드는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거의 완벽한 미국 영어를 썼고,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학자다. 세계 3대 박물관인 바티칸 박물관을 두 시간만에 전부 안내해준다. (중간에 퀴즈도 냈는데 내가 맞춤!) 전시실을 둘러 보고 나면 마지막으로 들르게 되는, 미켈란젤로의 천장벽화가 있는 시스티나 성당이 거의 클라이막스. 여기서 우리의 가이드 투어는 마감이 되고 가이드는 오디오 리시버를 회수해 간다. 우리 빼고 나머지 투어 일행은 가이드를 따라 산 피에트로 바실리카로 이동했다. 와이랑 나는 성당 안에서 멍하니 한참 미켈란젤로 그림을 쳐다보다가 나왔다.

IMG_7964 중간.jpeg 바티칸 박물관 입구. 사람이 많다.
IMG_7969 중간.jpeg 기억에 남았던 뮤즈의 방. 돌기둥, 아치, 천장벽화, 그 밑에 토르소까지 죽여준다.
IMG_7972 중간.jpeg 그곳 뮤즈들 중 하나. 누군진 모름


IMG_7975 중간.jpeg 지도의 회랑. 가이드가 엄청나게 설명을 해 줬는데 기억이...


"성 베드로 성당을 가 보자."

박물관을 빠져 나오니 끝없이 늘어서 있는 대기 줄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원래 우린 성 베드로 성당 내부까지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인파에 치이는 게 너무 싫었다. 밖에서 광장과 성당 건물을 볼 수 있으면 그냥 그렇게 보고 바티칸을 떠나려고 했다. 근데 지도에 표시된 성 베드로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파에 휩싸인다. 그러다가 사람 속에 완전히 파묻혀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지금 우리가 무슨 줄에 서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인파에 떠밀려 천천히 움직이다 보니 공항에서 보던 것 같은 보안 검색 부스가 나온다. 저 앞에 검색 부스 너머로 성 베드로 광장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맞긴 맞나봐."

가방을 검사하고 엑스레이를 통과하니 내 의지랑 상관없이 광장에 들어오게 되었다. 성 베드로 광장이 나타났고 저 끝에 그 유명한 성당이 있다. 그냥 밖에서만 봐도 되는데 우리 의지랑 상관 없이 광장에 들어오게 됐고, 이제 그냥 걷기만 하면 성당도 들어갈 수 있다. (확실히 바티칸은 뭔가 있다. 공항에서 배낭을 잃어버렸다 찾은 것도 그렇고 바티칸에 가까와질수록 내 의지로 거부할 수 없는 그분의 권능이 작동한다.) 힘들게 여기까지 들어왔는데 성당을 안 들어가 보고 나가는 것도 이상한 거 같아 입장하는 대열에 참여를 했다. 성 베드로 성당은 바티칸에서 빼 먹으면 안 되는 곳이다. 여러 개의 입구가 있었는데, 줄이 제일 짧은 쪽을 택해 걸어가니 지하 묘지 입구가 나온다. (영화 '두 교황'을 본 뒤에 이미지가 살짝 좋아진) 베네딕트 16세와 원래부터 인기가 많은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무덤이 있다! 그 밖에 내가 모르는 교황들의 무덤을 몇 개 지난 거 같은데 그러다 계단을 올라가니 대성당의 내부로 들어오게 됐다. 29년 전에 분명히 왔었는데 기억이 별로 없다. 본당 안으로 들어가면 끝을 모르는 화려함에 입이 안 다물어진다. 내 앨범엔 29년 전 성당 안에서 성 베드로의 발등에 손을 올리고 찍었던 사진이 있는데 이젠 시간이 지나 성 베드로 동상에는 접근이 안 된다.

나무위키를 읽어 보니 성 베드로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가톨릭 교회 성당이지만 과거에 이 건물을 짓느라고 건축비가 모자라 면죄부를 남발하게 됐으니, 종교개혁의 원인이 된 성당이라고도 한다. 마천루의 저주라는 말도 있듯이, 화려한 건물을 짓고 나면 뭔가 그 이상의 댓가를 치르게 되는 이야기를 흔히 접한다. 하지만 현재 바티칸과 로마 교구는 이 곳을 찾는 관광객으로 해마다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을테니 과연 바티칸은 승자일까 패자일까.

성당 내부를 둘러보다 한번 밖으로 나왔다 다시 들어가게 되는 문이 있는데, 25년에 한번 열린다는 Porta Sancta(영어로 Holy Door)라고 한다. 올해가 2025년으로 25의 배수이니 문이 열리는 그 해이다. 그 곳을 지나서 들어가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있다. 아까는 지하 통로로 들어가느라고 지나가지 못했던 정문 입구를 통해 성당을 빠져 나오면 다시 눈 앞에 성 베드로 광장이 펼쳐진다. 최근에 김대건 신부의 석상이 제막됐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통신이 잡히지 않아 검색이 안 되고 와이프가 발 아프다고 하여 끝내 찾지 못하고 나왔다.

바티칸을 빠져 나오자 마자 보이는 거리가 있다. 한 카페에서 샌드위치 하나랑 커피 한잔을 사서 둘이서 나눠 먹었다. 점심시간이라 배가 고팠는데, 조금만 먹은 건 저녁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와이의 선배 지영 여사께서 오늘 저녁 초대를 했다. 음식이 많을 것이니 점심을 많이 먹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다. 걸어서 산탄젤로 성과 산탄젤로 다리까지 간 다음에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IMG_7986 중간.jpeg 엄청난 인파와 공항 같은 검색을 지나 마침내 당도한 성 베드로 성당
IMG_7991 중간.jpeg 무슨 야외 미사가 있었는지 무대 세팅이 있다. 성베드로 성당은 돔이 뽀인트인데, 가까이서 보면 돔이 안 보임.
IMG_7997 중간.jpeg 지하에서 올라오자 마자 바로 보고 입이 떡 벌어졌던 '베르니니의 천개' 이곳이 베드로의 묘소가 있는 곳이라 한다
IMG_8002 중간.jpeg 붉은 무늬 대리석으로 깎은 구겨진 천이 인상적이었던, 베르니니의 작품. 내가 모르는 어떤 교황이라 한다.
IMG_8004 중간.jpeg 지금은 접근이 안되고 있는 성베드로 동상. 저 발등 밋밋한 것이 보이는가. 사람들이 하도 손을 얹어서...
IMG_8008 중간.jpeg 25년만에 한번 열린다는 Porta Sancta. 그렇다고 한다. (2050년에도 와 봐야지)


유럽에 있는 동안은 새벽에 일찍 눈이 떠 져서 아침에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점심때 숙소에 들어와서 조금 쉬는 패턴으로 지냈다. 그러다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한번 밖으로 나오거나, 가끔은 그대로 숙소에 퍼져 쉬기도 했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만 해도 더운 편이었기 때문에 제일 더운 낮 시간을 피하고 싶기도 했다.

저녁 약속 장소에 가기 위해 다시 나왔다. 버스를 타고 스페인 계단에 왔는데, 이곳에 모이면 지영 여사가 와서 우리를 데리고 식당으로 간다고 한다. 초대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일테니 유명한 곳이 아니면 만남의 장소로 정하기 어려웠겠지만 스페인 계단은 좀 잘못된 선택인 것 같았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결정적으로, 초대 받은 사람들이 여러 나라에서 온 지영 여사의 지인들이다 보니 서로 얼굴을 잘 모른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 시간에 스페인 광장에 모였으면서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인파 속에 흩어져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혹시 결혼식?" 하면서 하나 둘씩 뭉쳐지다가 마지막에 주인공이 나타나면서 순식간에 전부 모였다.

우리는 지영 여사를 따라 10분 정도를 걸어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결혼식에 초대 받은 사람은 약 90명. 그 중 오늘 저녁에 참석하는 사람이 70명 가량 된단다. 입구가 작아 보였던 식당은 뒤에 큰 홀이 있었고 그 곳을 전세낸 듯했다. 자유롭게 착석을 했는데 덴마크에서 오신 아저씨 한 분이 내 옆에 앉았다. 식사로 파스타가 나오고 테이블마다 와인이 나왔는데 어른과 영어로 대화하려니 쉽지 않아서 웃으면서 계속 와인만 마셨던 것 같다. 무사히 집에는 왔는데 어떻게 잠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그 날은 37일 여행 중 유일하게 양압기를 쓰지 않고 잔 날이 됐다.


IMG_8036 중간.jpeg 산탄젤로 다리에서 찍은 산탄젤로 성. 역시 베르니니의 조각.
IMG_8049 중간.jpeg 사람 많았던 스페인 계단. 여기가 약속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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