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호미의 유럽 여행 #3. 2025년 9월 25일

by 호미

우리의 다음 숙소는 스플리트다. 자그레브에서 스플리트까지는 차로 네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다. 기차가 마땅치 않아서 터미널에서 고속버스 같은 걸 타면 되는데 와이프가 더 좋은 걸 찾았다. 자그레브에서 스플리트까지 가는 길 딱 중간 쯤에 플리트비체라는 가볼 만한 국립공원이 있는데 내 차가 없으면 가 보기 힘든 곳이다. 자그레브에 더 오래 머물면서 관광버스로 갔다가 다시 자그레브로 오는 방법도 있고, 아니면 스플리트에서 그렇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근데 자그레브에서 플리트비체에 잠시 머물러 구경을 하고 스플리트까지 가는 버스 투어가 있더라. 이게 있다면 우리 같이 자그레브에서 스플리트로 넘어 가야 하는 사람들에겐 딱이다. 투어 버스가 즈리네바츠 공원 앞에서 아침 여덟시 반에 출발한다고 한다.

어제 시내 관광을 해서 아침 집합장소 가는 법과 소요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좀 생겼다. 우버를 불러서 차가 잡혔는데 차가 안 온다. 트램 정거장이 호텔에서 좀 멀어서 캐리어를 끌고 가기엔 무리다. (진작에 움직였으면 못할 건 아니었지만 우버가 이렇게 안 올줄 누가 알았나.) 전날 아침에 트램을 탈 땐 전혀 몰랐는데 아침에 호텔 주변에는 교통 체증이 심했다. 올 생각을 안하고 서 있는 우리 우버 차를 앱으로 보면서 왜 안 오는 거냐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간당간당한 시간에 차가 와서 타기는 했다. 또 간당간당한 시간에 목적지 근처에 도착을 해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 둘은 각자 캐리어를 끌고 달렸고 가까스로 출발 직전의 버스에 올라 탔다. 버스는 우리가 도착한 뒤 5분 뒤에 출발했는데 예약한 승객 중 한 팀은 결국 출발 시각까지 오지 않아 버리고 출발했다. 말인 즉슨 우리가 5분만 늦게 도착했으면 우리도 버려졌을 거라는 거다.

버스가 출발하자 다음 문제가 생겼다. 배가 너무 아파서 화장실이 급해졌다. 아침에 급박한 상황이었으니 화장실 갈 여유가 없었는데 신호가 설사였다. 그땐 세 시간 뒤에나 휴게실을 들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세 시간 동안 자존심을 건 피할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악물고 버티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가장 빠른 휴게소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 보려고 가이드에게 물으니, 고속도로 타서 10분 정도 뒤에 휴게실에 들를 예정이란다. (세시간 뒤 휴게소 간다는 건 와이프가 알려준 잘못된 정보였다.) 버스가 휴게소에 정차해 배 아픈 건 해결을 했다.

이제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버스가 출발한 지 두시간이 지나 라스토케라는 아주 예쁜 마을을 지나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인데 버스가 퍼져 버렸다. 버스가 더 이상 갈 수 없다며 모두 내리라고 해 승객들은 산속 국도변에 전부 내렸다. 가이드가 분주히 전화를 주고 받는 가운데 상황이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린 삼십분 정도를 길에서 그냥 기다렸던 것 같다. 버스가 도로를 막아 교통 체증이 생겨 다른 차들이 엄청 무섭게 소리를 지르면서 지나가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한 마디도 안 밀리고 따박따박 받아 치는 여행사 직원도 인상적이고... 그러다 다른 버스 한대가 우리를 구조하러 왔는데 가이드 말로는 매우 운이 좋았다고. 아마도 가까운 곳에 회사 버스가 있었던 모양이다. 더 늦었으면 국립공원 입장이 무산될 뻔 한 거 같은데 과연 이게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우여곡절 끝에 우리 짐은 고장난 버스에 그대로 두고 새로 온 버스에 몸만 올라타서 플리트 비체에 무사히 도착했다. 짐은 알아서 다른 차로 옮겨준다고 한다.

플리트 비체는 자연이 매우 아름다운 크로아티아의 국립공원이다. 물의 성분이 특이해서 물속의 돌들이 저절로 자라는데(석회암인가?) 그것들이 자연적으로 댐을 형성하고 물을 막아 고지대에 여러 개의 호수를 만들었다.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도 하고. 조금 걷다가 배를 타고 이동해 둘레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호수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트래킹을 하는데 폭포와 나무들도 예뻤지만 물이 정말 투명하고 깨끗하다. 크로아티아는 어디건 그랬다. 호수건 강이건 바다건 신기하게 물이 뿌옇거나 흐리거나 헝클어진 머리 같은 녹색 풀이 밑에서 자란다거나 이런 게 전혀 없다. 아직 따뜻한 여름 날씨에 해도 쨍쨍해서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약 두시간 가량의 트래킹을 하고 가장 큰 폭포와 전망대까지 오르고 나니 저질 체력은 고갈되었다.

트래킹이 끝나는 지점에서 가이드가 알려준 주의사항은 출구에서 버스가 주차할 수 없으니 시간을 엄수해 탑승하고 만약 놓치면 각자 택시를 타고 식사 장소로 이동하라는 것이었다. 크로아티아의 관광 회사는 영세한 것 같다. 버스를 퍼질 때까지 쓰고, 국립공원 버스 주차비 내기가 싫어서 이런 편법을 쓴다. (대신 싸겠지.) 설마 했는데 와이프가 화장실 간 사이에 가이드와 일행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이프는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안 받고 나올 생각도 안 하고 가이드는 기다리지 않고 거침없이 움직이고, 한 명이 아직 안 왔다고 가이드한테 얘기하니 나한테 택시 타는 법을 가르쳐 주기 시작한다. (으아!!!) 저 멀리서 와이프가 오는게 보인다. 우리가 어딨는지 몰라서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여기서 내가 버스에서 내리면 그냥 출발할 테세라, 버스 출입문을 붙들고 쪽팔림을 무릅쓰고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 와이프를 불렀다. 이렇게 또 한 고비를 넘기고...

버스는 점심 식사 장소로 가기 전에 잠시 우리가 출발했던 배 타는 곳 근처에 잠시 휴식 차 머물렀는데 아까 우리가 들어갈 때와는 달리 배 타는 줄이 엄청 길어진 것을 보고 왠지 뿌듯해졌다. 아침 일찍 출발한 자들의 특권이랄까. 여행 가이드도 플리트 비체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 사람 적고 볼거 많은 길들을 잘 안내해 주는 것 같아 즐겁게 구경을 했다. 화장실도 줄이 길었는데 여자 화장실 줄이 너무 길어지니 놀랍게도 남자 화장실 줄에 여자들이 섞여 있다. 남자 화장실에도 문 닫히는 칸이 있으니 거길 쓰겠다는 거 같은데... 서서 볼일을 보고 있는 동안 내 뒤로 여성분들이 자꾸 지나간다. 몰라, 그냥 누자. 사람들이 모이길 기다리며 호주에서 혼자 온 우리 일행 중 한명과 잠시 얘기를 하다 (와이프는 참 모르는 외국인한테 괜히 그냥 말을 잘 건다. 가끔 본받고 싶다.) 버스를 타고 점심 먹는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가이드가 추천하는 전통 생선 요리와 구운 야채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식당엔 고양이도 돌아다니고... 커피를 먹고 싶었는데 손님이 많아 주문이 어려울 거 같아 포기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아까 버스를 바꿔 타면서 짐은 전부 퍼진 버스 안에 넣어 둔 채로 이동했는데, 식당 앞엔 두 대의 버스가 있었고 그중 한 대는 스플리트로 가고 한대는 자그레브로 간다. 우린 스플리트 행을 타야 한다. 버스에 들어 있던 짐은 알아서 옮겨 놨다고 하는데 내가 어디로 가는 사람인지는 그들이 알고 있다 치더라도 내 짐이 어떤 건지는 그들이 어떻게 알고 짐을 옮겼을까? 믿으면 될텐데 그들은 이미 퍼진 버스의 전과가 있는 분들이라... 그냥 버스를 타자니 너무 불안했다. 버스 기사 아저씨한테 짐이 있나 확인하고 싶으니 짐 칸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짐은 무사히 들어 있는 걸 확인했는데 이번엔 또 이 버스가 혹시 자그레브로 돌아가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그냥 차 앞유리에 뭐 좀 써붙여 놔 주면 좋을텐데. 사실 이미 여러번 우리한테 설명을 했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근데 잘 못 알아 들었다. 기사 아저씨가 피곤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암튼 그땐 그랬었다. 욕먹어도 끈질기게 물어 봤다. (아니 그렇잖아. 혹시라도 버스가 자그레브로 가 봐. 우린 망하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서 눈치는 늘었지만 잘 몰라도 대충 확인하고 그냥 올라타는 습관이 생겼다. 이 습관은 나중에 일어날 여러 번의 삽질의 씨앗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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