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노포'에 대하여
차에서 들은 라디오에서 '삼포로 가는 길'이라는 노래가 나오고
이어서 DJ가 '노포에 대한 추억'이라는 소재로 말을 이어간다.
삼포로 가는 길,
내가 어릴 적부터 무척 좋아하는 노래다.
때때로 어떤 노래는 잊고 지냈던 특별한 기억을 불러온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이발관.
항상 라디오가 틀어져 있고,
꼬맹이들은 판자를 엉덩이 밑에 받쳐야만
간신히 앉을 수 있던 커다란 의자가 있던 곳.
촌스러운 파란색 타일이 붙은 수조 위엔
조그마한 물뿌리게와 거품이 잔뜩 머금은 솔이 든 통이 있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매캐한 냄새의 연탄난로 위엔
모락모락 양푼 냄비에 물이 데워지고 있던 곳.
한 달에 한 번,
어른들 틈에 쭈뼛거리며 들어가 다소곳이 앉아 순서를 기다리며
선데이 서울을 몰래 훔쳐보던, 아마 그런 날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내가 ‘삼포로 가는 길’을 들었던 것은.
학교가 일찍 끝나 모든 게 느긋하고 한가롭던 토요일 오후,
라디오에서는 나른한 목소리의 노래가 흐르고
사각사각 가윗소리에 찐득한 잠이 스르르 몰려올 때
내 머리를 잘라주던 아저씨가 말했다.
“고놈, 머리통 자알~ 생겼네.”
“앞 또치, 뒤 또치, 동글동글허니 이삐다~.”
그 말이 내가 들은 최초이자, 최고의 칭찬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군대 시절 맞는 철모가 없었어도,
인터넷에서 모자를 고르기 힘들어도
그 동글동글한 머리 모양이 언제나 자랑스러웠다.
그러던 , 어느 날
이발관에 갔을 때 문이 닫혀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아저씨가 아프신 걸까.
아니면, 워낙 술을 좋아하시던 분이라
아직 일어나지 못하신 걸까.
이발을 해야 하는데…
일주일 뒤 다시 찾았지만,
그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들려온 소문.
아저씨는 평소처럼 일을 마친 뒤 연탄난로를 피워놓고
술 한잔 하고 잠이 드셨고, 그대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게 국민학교 6학년 때인지, 중학교 1학년이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그 일이 내 인생 첫 번째 죽음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 후로 나는 한참을 내게 맞는 이발관을 찾아 방황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해주시던 분이셨기에.
지금의 나는, 미용실을 간다.
그곳이 옮기거나 문을 닫지 않는 한 그곳만 다닌다.
말하지 않아도 "저번처럼 해 드릴까요?"라고 말하는 곳.
라디오에서 '삼포로 가는 길'이 들릴 것만 같은,
나에겐 노포란 이런 곳이다.
그리고 여전히 내 머리는 동글동글하니 예쁘다.
아저씨, 그곳에서는 잘 계신가요?
※노포. 사전적 정의는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