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에는 인생이 있었다.

실직, 또 다른 시작을 기억하며

by 정춘필


실직, 의도치 않은 시작


지금까지 15킬로그램 넘게 살이 빠졌다.

‘빠졌다’라고 말한 건, 내 의지로 뺀 게 아니기 때문이다.

2020년 3월 1일, 나는 실업자가 되었다.


근무하던 학원이 부지를 팔고 이전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원장 사모는 “뭔 소리여, 다 헛소문잉께 신경 쓰지 말아”라고 잘라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거짓말일 거라 짐작하면서도 믿고 싶었던 건,

새 직장을 구하는 일이 두려워지는 나이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실직자의 삶, 처음엔 좋았다.

새벽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하기 싫은 일도 안 해도 됐다.

심지어 놀고 있어도 돈이 꼬박꼬박 들어오니 그야말로 휴가 아닌가..

하지만 그건 딱 일주일뿐이었다.


혼밥, 적응되지 않는 어색함


10년 넘게 길들여진 새벽 기상은 백수가 되자

오히려 하루를 두배로 늘려 놓았다.

한참 일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한두 번이었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


그렇게 넘치는 시간을 어쩌지 못하고 있던 차에,

통신 공사 업체를 운영하는 선배가 말했다.

"집에만 있지 말고, 사무실에 와서 공부도 하고 책도 보며 지내라"


선배네 직원들은 아침 8시 전에 현장으로 모두 나가고,

사무실엔 주로 선배 혼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자주 자리를 비웠기에,

나는 우편물과 간간히 도착하는 화물을 받아주면 됐다.

렇게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바로 '점심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요즘은 혼자 식당에 가는 일이 그리 낯설지 않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나는 사람들 틈에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게 익숙지가 않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혼자 먹었던 밥은 10여 년 전, 중국집이었다.

그날 깨달았다.

혼자 밥을 먹을 때 가장 곤란한 순간은

음식을 씹기 시작하는 그 짧은 순간이라는 걸.


보통 음식을 입으로 옮기는 동안에는

고개를 숙이고 집중할 수 있지만,

씹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고개를 들게 된다.

그때 어디를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는 그 어색함이,

에겐 낯설고 불편했다.

그래서 혼자 온 사람에게 TV는

시선의 공백을 채워주는 아주 좋은 기계이다.


그런데 하필 그날, 그 식당의 TV는 꺼져 있었고

그 식사 내내 시선을 둘 곳이 없어 불편했다.

그날 나는 식당에서 TV가 항상 켜져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결국 그날의 불편했던 식사는 식체로 이어졌고,

그 이후로 혼자 식당에 갈 상황이면 그냥 참았다.


오후 4시, 그 애매함에 걷기로 하다.


이런 나의 소심함 때문에 사무실에 나가기 시작한 초반에는

가끔 선배와 함께 점심을 먹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건너뛰었다.

그리고 사주는 밥도 염치가 없어 아예 10시쯤 집을 나서며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오후 3~4시쯤이면 슬슬 배가 고파지면,

나는 준비해 간 삶은 달걀과 소시지를 먹고 사무실을 나섰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직원들이 하나 둘 돌아오는 시각이어서,

그들과 마주치는 게 어색한 나는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오후 4시는 참 애매한 시간이다.

해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고, 집으로 돌아가기엔 이르다.

괜히 나만 떠도는 것 같은 기분,

그래서 걷기로 했다.


목포벤처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 옆을 흐르는 삼향천을 따라

영산강 도보 다리를 건너 남악 수변공원까지

왕복하면 딱 두 시간.

남들 퇴근 시간에 맞춰 내가 실직자라는

사실을 감출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효율적인 코스였다.


실업자의 사계, 길 위의 사람들


그 길. 삼향천과 수변공원의 사계는 참 다채롭다.

벚꽃이 흐드러진 봄날의 삼향천은

고요한 일요일 아침이 가장 좋고,

숨이 막힐 듯 더운 여름날엔,

영산강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 도로를 걸어야 하며

갈대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수변공원은

석양 무렵 쓸쓸한 아름다움으로 물든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눈 내린 영산강 다리는

오히려 눈 쌓인 쪽이 덜 미끄럽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사계절을 걷는 동안 나는 그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중풍으로 한쪽이 마비된 젊은 사내의 위태로운 발걸음을 따라가기도,

활개 치며 걷는 위풍당당 중년 아저씨의 발소리에 쫓기듯 걷기도 했다.

한여름 땡볕 속, 다이어트를 위해 뛰고 걷는 젊은이의 간절함도 보았고,

해가 지는 다리 위에서 달리는 차들을 보며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아주머니의 눈물도 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산책로에는 유아차를 끌고 나오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벤치에 앉아 멍한 눈으로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이 많아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걷는다는 것, 다시 살아가는 법


실직자로 지낸 1년여 동안

나는 서울과 목포를 두 번 왕복할 만큼을 걸었다.

그 길 위에서 계절이 바뀌는 걸,

사람들이 변해가는 걸,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

그렇게 걸으며 내 몸에서 빠진 것은 체중만이 아니었다.

나를 짓누르던 감정과 생각의 무게도 함께 조금은 빠져나갔다.


이제 나는 반대 방향으로 걷고자 한다.

지금까지 영산강을 따라 동쪽으로 걸었다면,

이제는 유달산이 있는 서쪽으로 걸어보려 한다.


그렇게 걷다 보면 그 길 어딘가에서

어쩌면 새로운 계절과 아직은 만나지 못한 또 다른 나를 마주칠지도 모르겠다.


2021.4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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