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냄새가 향기가 되는 순간

by 정춘필

사람의 향기향기

사사람사람의 향기의 향기람의 향기

사람은

자기에게서 나는 냄새를

못 맡는단다.


향기란, 냄새란

주변과 다를 때라야

비로소 코 끝에 닿은 거야.


생각해 봐,

네가 걷던 길에서

맡았던 모든 냄새를 말이야.


아침,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어디선가 풍겨오는

구수한 된장국 냄새.


저녁 무렵,

노을 지는 거리에서

닭집 기름냄새가

고소하게 퍼지던 그 순간.


네가 그걸 맡을 수 있었던 건

배고픔을 채우는 냄새,

고독을 메우는 향기이기 때문이야.


귀신같이 아는 거지.

너의 배고픔과 고독을

무엇으로 채울지 말이야.


근데 말이야.

사람한테도 그런 향기 난대.

누가 너의 고독을 알아채는 건

너의 냄새가 고독해서 그런 거야.

그의 행복을 네가 아는 것도

그에게서 나는 향기를 네가 맡았기 때문이야.


그래, 그거야

남들이 맡는 냄새

그리고 향기

사람은 그렇게, 향기가 나야 해.


누구도 자기 향기를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지만,

그 향기로 누군가의 하루를

물들일 수는 있으니까.




냄새가 향기가 되는 순간


사람은 스스로의 냄새는 맡지 못한다고 한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냄새란 주변과 다를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니까.


지난겨울이었다.
이른 아침, 출근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올라왔다.
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수하고 짠내 섞인 그 냄새는 30여 년의 시간을 건너 어느 겨울, 엄마가 차려주던 아침 밥상 앞으로 나를 데려갔다.


엄마는 된장국이나 김치찌개를 끓일 때면 꼭 길 건너 골목 안에 있던 가게의 두부를 사 오게 했다.

오래전 일이라 가격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구수했던 두부 냄새는 아직도 기억난다.

겨울 아침, 일찍 배달된 두부는 하얀 면포를 뒤집어쓰고 가게의 백열등 사이로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며 배고픈 나를 맞아준다.

"아줌마, 두부 한 모 주세요"


아주머니는 김이 나는 면포를 걷고 시커먼 부엌칼로 네모반듯 구분된 두부를 잘라 건네준다.

어떤 날은 내가 첫 손님이라 두부한판을 다 자르는 걸 구경하기도 했다.

잠이 덜 깬 눈으로 아주머니가 두부를 자르는 걸 구경하는 건 나름 재미있었다.

긴 쪽은 쭈~욱, 탁, 짧은 쪽은 쭉, 탁


두부가 가득 든 판 한쪽에 칼을 집어넣고 반대편까지 한 번에 쭉 당기면 칼은 틱틱틱틱~ 소리를 내며 두부판을 횡단한다.

마침내 탁, 칼의 몸통이 반대편에 닿으면 아주머니는 칼 꽁무니를 살짝 치켜들어 칼 끝이 두부의 밑면까지 완전히 자를 수 있도록 조절한다.

이렇게 긴 쪽은 두 번, 짧은 쪽은 세 번의 칼질이면 두부 한판이 모두 잘린다.


그렇게 네모반듯하게 잘린 두부를 받아 든 나는 봉투에서 두부가 으깨지지 않을 만큼만 신나게 달려 집으로 돌아갔다.

어쩌다 아저씨가 두부를 자르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땐 모양이 일정치 않아 두부의 잘린 모양만 보아도 그날 아침 누가 두부를 잘랐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사온 두부는 숭덩숭덩 썰려 국에 넣어지고 다시 한소끔 끓이고 나서야 상 위로 올라온다.

나는 입천장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두부와 국을 호로록 먹고 나서 가방을 챙겨 들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며 집을 나섰다.

그날 아침 나는, 어떤 냄새는 아주 찰나의 순간에도 사람을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데려다 놓을 수 있음을 알았다.


이러한 시간여행은 일상에서도 가끔 일어난다.

저녁 퇴근 무렵, 노을이 번지던 거리에서 치킨 가게의 기름 냄새를 맡을 때도 그랬다.

배가 고픈 것도, 특별히 닭이 먹고 싶은 것도 아닌데 그 냄새는 내 발목을 붙들었다.

그럴 때면 나는 그 냄새를 따라 철없이 좋기만 했던 대학 시절로 되돌아간다.


학교 후문에 있던 호프집, 그 집의 갓 튀겨져 나온 닭은 지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좁다란 테이블에 3~4명이 모여 앉아 서비스로 주는 마카로니 뻥튀기와 미리 나온 치킨무에 생맥주를 홀짝거리다 보면 어느새 구수한 기름 냄새를 품은 노란 후라이드가 우리들 앞에 놓였다.

그때부터는 소리 없는 아우성, 포크들은 조명에 반짝거리며 뜨거운 닭 위를 정신없이 유영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부위를 먼저 먹기 위해 포크를 들고 부지런히 닭 위를 헤매었고, 초롱한 눈들은 다음 목표물에 정확히 고정되었다.


그렇게 집어 올린 닭을 제일 먼저 입 안으로 욱여넣은 친구는 훅~훅~ 두 번의 큰 날숨으로 재빠르게 뜨거움을 식히고선 꿀떡 삼킨다. 그리고 지체 없이 점찍어둔 다음 목표를 향해 포크를 들이밀었다.

입술을 번들거리면서 걸신들린 것처럼 포크를 휘두르던 친구의 모습이 고소한 기름 냄새를 따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 시절 그 얘의 식탐이 밉긴 미웠나 보다.

지금은 후라이드 한 마리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먹을 수 있고, 치킨의 종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아 어느 것을 먹든 내 마음대로지만 그 어떤 것도 옛날 그것만은 못하다.


이처럼 일상적으로 맡던 냄새가 나를 과거로 데려간 건, 아마 그날의 나는 조금은 외로웠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가끔 영혼의 배고픔, 삶의 고단함 같은 헛헛한 마음을 무엇으로 달랠지 귀신같이 알기도 하니까 말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한테도 풍기는 냄새 같은 게 있다.

행복한 사람에게서는 봄날 아지랑이 같은 따스한 냄새가, 슬픈 사람은 여름 장마철의 끈적함이, 화난 사람에게서는 한 겨울 새벽 공기처럼 쨍한 냄새가 난다.

그리고 나는 이런 감정의 냄새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았다.


10여 년을 같이했던 사람과 이별했던 그 해 어느 날, 사무실 책장에 기대 창밖을 보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요즘 무슨 일 있죠? 그죠?", "아니요, 아무 일 없어요"

깜짝 놀라 얼버무렸지만 그때 나에게선 어쩌면 장마철 공기 냄새가 났고 그 사람은 나에게서 그걸 맡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내게서 나는 냄새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게서도 이른 아침 된장국 냄새, 오가는 길가에 있는 치킨집의 기름 냄새처럼 사람들이 기억 속에 묻어둔 좋은 추억을 불러올 수 있는 냄새, 그런 향기가 났으면 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향기를 모른 채 살아가지만, 그 향기는 때로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머물며 그의 존재를 증명해 주기도 한다.

이처럼 내 삶도 언젠가는 누구의 기억 속에서 은은히 피어나는 향기가 되고, 그리하여 언젠가 '우리'라는 시간 속에서 함께 머물렀으면 좋겠다.


2025년 여전히 무더운 9월 어느 날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