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잉걸불을 발견할 시간
금요일 오후 두 시 십오 분, 한주의 끝자락.
오전 일과를 꾸역꾸역 끝내고 대충 때운 점심의 나른함이 온몸을 감싸는 시간.
이제 몇 시간만 버티면 주말이 시작된다는 기대감이,
백 미터 달리기를 앞두고 느끼는 요의처럼 조금씩 차오르던 그때.
나는 나에게 하루의 휴가를 선물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늦은 아침을 해결한 나는 헬스장으로 향했다.
이 시간, 일터가 아닌 장소에 있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매번 지나던 길도,
신호 대기선에 멈춰 바라본 거리의 풍경도 새삼스레 낯설다.
차 안에서 바라본 거리는 아침의 번잡함을 간데없고, 걷는 사람마저 드물 정도로 한산하다.
세상의 모든 소음은 고운 체에 걸러진 것처럼 나지막하고, 차장밖 세상은 슬로 모션이 걸린 영화처럼 느릿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횡단보도를 걷는 사람도, 도로공사를 하는 사람들도 늦가을 오후 두 시 십오 분의 햇빛 속을 부유하며 먼지처럼 더디게 떠다닌다. 외부와 단절된 차 안, 나를 깨우는 유일한 리듬은 엔진의 낮은 진동뿐이었다.
평화로움. 고즈넉한 그 정지의 순간,
나의 모든 감각은 내리쬐는 햇살에 집중되었다.
늦가을의 태양은 더 이상 한여름의 쨍한 흰빛을 내뿜지 않는다.
그것은 영롱하면서도 끈끈해서, 양봉업자가 정성 들여 곱게 걸러낸 꿀처럼 투명하고도 달콤하게 거리 곳곳으로 번져가며 맑은 채도의 황금빛으로 가득 채운다.
이렇게 맑은 황금빛은 어느새 울긋불긋해진 단풍과 이제는 빛이 바랜 초록이 공존하는 거리를 물들이고, 바라보이는 모든 풍경을 차분한 색채로 다시 빚어낸다. 이것이 늦가을 오후 두 시 십오 분의 햇빛이 벌이는 마법이다.
또한 늦가을 오후 두 시 십오 분의 공기는 나른하지만 끈적이지는 않는다.
이 계절의 공기는 낙엽이 품은 건초의 바스락거리는 냄새와 바람 끝에 묻어나는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어 청량한 박하사탕 맛이 난다. 이렇게 세심하게 버무려진 공기를 뚫고 내리쬐는 햇살은, 나른한 오후 설핏잠을 깨우는 아이의 명랑한 웃음소리처럼 경쾌한 황금빛으로 반짝거린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늦가을 오후 두 시 십오 분의 햇살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고요함과 아름다운 색감을 선물했다.
신호가 바뀌고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시간 속에 정지한 채 내가 발견한 장면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일상의 무게를 덜어내고, 식어버린 마음의 화로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는 작지만 뜨거운 잉걸불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예상치 않게 맞은 늦가을 오후 두 시 십오 분의 풍경은, 지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나를 지탱해 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2025.10. 일하기 싫어 땡땡이치던 날 쓰다.